문자중독-Reading/문학*문사철300

살인자의 건강법

gowooni1 2011. 3. 12. 22:41

 

 

 

아멜리 노통브는 25살에 '살인자의 건강법'으로 세상을 들썩이며 자신만의 위치를 확실히 정립했다. 끊임없는 생산력을 가진 작가들의 세계를 알아가는 것은 늘 즐거운 일이고 특히 그들이 세상에 내놓은 첫작품은 더욱 흥미롭다. 살인자의 건강법으로 천재소녀의 탄생이라는 극찬을 받는 아멜리도 이제 벌써 불혹을 넘긴 나이가 되었다. 그러나 그녀가 지금 와서 자신의 첫작품을 읽더라도 당당할 것이라는 것에는, 살인자의 건강법을 읽어보면 의심할 나위가 없다. 그녀는 항상 비슷비슷한 주제와 미덕들에 매료되어 왔고 그것들은 늘 그녀 작품을 구성하는 근간이다. 그녀의 작품 세계는 일관성이 있고 그래서 조금은 극단적이고 따라서 사람들의 호불호는 확실히 갈린다.

 

살인자의 건강법이 시작되는 스토리는 이러하다. 83세의 노작가 프레텍스타 타슈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고 22편의 작품을 세상에 내놓은 대문호다. 철이 들기 시작하면서 밥 먹고 글만 써온 그에게 세상은 관대해서 작가로서 타슈의 삶은 상당히 성공했지만, 남자이고 인간이라는 몸뚱이를 가진 사람으로서 타슈의 삶은 우스꽝스럽다. 의자가 넘칠만큼 뚱뚱해서 쉽게 이동하지도 못하고 얼굴은 내시처럼 허옇고 매끄러운데 살덩이 때문에 이목구비가 파묻혀 돼지 같은 타슈는 결혼을 하지도 않아 가족도 없다. 그의 뒤를 봐주는 건 같은 아파트 다른 호수에 살고 있는 비서 그랑블랭과 가끔씩 와서 청소와 세탁을 해주는 가정부, 그리고 간호사가 전부이다. 게다가 그는 이름도 희귀한 이상한 암에 걸려서 앞으로 두달 밖에 살지 못한다는 진단을 받았다.

 

괴팍하고 뚱뚱한 타슈는 사실 24년 전에 절필을 하고 오랜 시간 무료함에 지쳐 살아가는 중이었다. 그가 최근에 내놓은 작품이라는 것도 실은 절필하기 전에 잔뜩 써둔 작품들 중 하나를 출간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타슈는 앞으로 두달 남은 자신의 인생을 즐겁게 보내고 싶은 마음에 인터뷰를 계획했다. 듣도 보도 못한 이름의 희귀한 암에 걸려 앞으로 2달 밖에 살지 못하는 대문호 노작가 프레텍스타 타슈의 인터뷰, 라는 미끼에 세상의 모든 기자들은 콧구멍을 벌렁거리며 달려들었고 심지어 다른 언어권의, 지구 반대편에 살고 있는 사람들까지도 인터뷰를 신청했다. 그러나 타슈는 자신이 처한 특수한 상황에 따라 인터뷰할 기자들의 자격을 철저히 제한했고 그래서 불어권 기자들 중 극히 일부만이 타슈와의 인터뷰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자신이 직접 계획한 인터뷰임에도 불구하고 타슈는 기자들을 제발로 방에서 나가게끔 만든다. 말이 통하지도 않고 논리도 통하지 않는 궤변의 늙은이를 자청하고 연기하여 사람들을 넉다운 시킨다. 타슈를 인터뷰한 기자들은 자신의 자질에 근원적 의심을 품거나, 뚱보 타슈의 구역질나는 식습관에 대한 이야기 혹은 변태성에 진저리를 치며 인터뷰를 중단하고 도망친다. 그들이 생각하는 존경할만한 한 인간으로서의 노작가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고 그 자리엔 식탐이 성욕에 대한 압승을 거둔 채 하루하루 엄청난 음식으로 연명하며 살아가는 변태 늙은이가 앉아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다섯 번째 기자가 타슈의 방에 들어선 순간 상황은 달라진다. 여자를 인간 이하로 취급하는 발언을 일삼는 타슈의 악질적 도발에도 여기자는 눈썹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대신 기자는 작가의 궤변을 궤변으로 맞서며 자신이 의도한 대로 인터뷰를 몰고 가기 시작한다. 외로움과 무료함에 치를 떨던 작가의 나약함을 꿰뚫고 들어가는 인터뷰는 기자의 의도대로 진행되고 타슈는 마치 이런 인터뷰를 고대하기라도 한 듯 거기에 이끌려 들어간다. 다른 기자들과 달리 이번 기자는 타슈의 스물 두 작품을 모두 읽은 희귀한 독자인데다 베일에 싸인 작가의 과거를 알아내기 위한 조사를 이미 모두 마친 상태의, 그야말로 완벽한 기자정신을 가진 인터뷰어였다. 작가의 미완성 작품 살인자의 건강법에 대한 진상이, 드디어 규명되는 순간이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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