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중독-Reading/문학*문사철300

11분

gowooni1 2011. 3. 31. 12:55

 

 

 

 

브라질 시골 마을에서 나고 자란 마리아는 비교적 평범한 여자아이였다. 공부를 그렇게 잘하는 것도, 친구들 사이에서 리더쉽을 발휘하는 것도 아니었다. 좋아하는 남자 아이가 생기면 말 한 번 제대로 건네보지 못하고 친해질 기회마저 놓쳐버리는 흔한 소심함을 가지고 있었고, 남자친구가 생기면 보통의 관계는 지속했다. 마리아가 다른 아이들과 비교했을 때 유일하게 가지고 있는 강점은 빼어난 미모였는데 이 덕분에 보통 이상의 미래는 보장되었다. 그녀가 일하고 있는 가게의 주인이 마리아에게 푹 빠져있어서 그녀에게 청혼을 할 예정이던 것이다.

 

그러나 마리아는 좀 더 큰 미래를 바라는 여자였다. 시골 마을 가게 주인의 아내가 되어 아이들을 낳고 살다 죽는 것은 너무 식상했다. 마리아는 아직 펼쳐지지 않은 인생이 가져다 줄 여러 모험을 기대하는 여자였고 그에 따른 위험도 기꺼이 감수할 준비가 되었다. 1년을 꼬박 일 해 모은 돈이 나라의 수도에 가서 일주일의 바캉스를 즐길 수 있을 만큼 되었을 때 그녀는 과감히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일주일의 휴가이긴 했지만 가게 주인은 마리아가 이대로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고 사실 마리아가 바라는 바도 그것이었다. 그 짧은 휴가 기간에 어떻게든 기회를 잡아서 모험 가득한 미래로 가는 티켓을 얻는 것이 그녀의 진짜 목적이었던 것이다.

 

고작 일주일이라는 말로 주인을 설득시키며 겨우 도착한 대도시였지만, 마리아는 자신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현실에 실망했다. 저급 호텔에 머물고 싸구려 비키니를 입으며 하루종일 해변에 누워 만인에게 틈을 보였는데 그녀에게 다가오는 남자들이라곤 별 볼이 없는 사람들 뿐이었다. 이러다 그냥 고향으로 돌아가 가게 주인과 결혼하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하던 무렵 드디어 젠틀한 외국인 남자가 마리아에게 다가왔다. 그는 마리아가 꿈꾸는 미래를 보장해 줄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그녀가 가게에서 십년을 일해도 사지 못할 비싼 원피스와 고급 레스토랑에서의 식사를 선물하고는 자신이 브라질에 온 목적을 밝혔다. 자신은 스위스에서 연예 에이전트를 하고 있으며 그녀를 자기 나라로 데려가 스타로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게 해주겠다고 했다.

 

온갖 달콤한 말로 그녀를 자국에 데려가는 데 성공한 외국인의 태도는 급변했다. 연예 에이전트가 아니라 브라질 여자들을 데려와 쌈바 춤 공연을 내세우는 클럽의 주인이던 남자는 그녀에게 자신의 클럽에서 일을 하게 했다. 엄청난 고수입을 보장하겠다던 그의 말도 거짓이었다. 앞으로 마리아가 클럽에서 일하며 번 돈은 그녀를 데리고 오느라 사용한 비행기 값을 공제하고 숙식제공에 대한 비용을 빼는데 쓰일 것이라고 통보했다. 마리아는 처음으로 세상의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맛보면서 자신의 인생을 제대로 개척해야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다행히 스위스는 법적 보호가 외국인에게도 충분히 허용되어 있는 나라였고 그녀는 어쭙잖은 프랑스어 실력을 내세워 '변호사'라는 말을 내뱉는 데 성공했다. 클럽 주인은 마리아에게 온갖 욕을 해대며 변호사와의 소송에서 싸울때보다는 적지만 마리아가 혼자 낯선 외국땅에서 살아가기에는 충분한 돈을 주며 내쫓았다.

 

이제 본격적으로 모험이 가득한 삶이 시작되었다. 마리아는 현재 자신의 위치를 냉철하게 파악하고 앞으로 무엇을 하며 인생을 채워야 할지, 자신의 목표를 이루려면 어떤 방식으로 중간 단계를 헤쳐나가야 하는지 직시했다. 아직까지 그녀의 목표는 못사는 나라의 시골마을에서 큰 포부를 가지고 외국에 나온 여자들이 대부분 가지고 있는 것과 비슷했다. 엄마한테 멋진 집을 사드리고 고향에 내려가 큰 농장을 사서 남은 삶을 안정적으로 보내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첫째, 프랑스 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줄 알아야 했고 둘째, 그만큼 충분한 돈을 벌어야 했다. 그녀는 클럽 주인에게 받은 돈으로 지내면서 프랑스 어를 배워나갔다. 그리고 남은 돈이 얼마 없을 때, 고수입이 보장되는 일을 시작하였다. 마리아는 베른 가에서 가장 고급한 매춘 클럽에서 일하는 아가씨가 되었다.

 

비록 스스로 창녀의 길을 걷기로 했으나 클럽의 다른 동료들과 달리 마리아는 책을 많이 읽는 창녀였다. 동료들은 각자의 사정을 가지고 있었다. 결혼을 한 여자도 있었고 아직 하지 않은 여자도 있었다. 필리핀이나 브라질 출신도 있었고 현지 스위스인 여자도 있었다. 그렇지만 아무도 마리아처럼 농장 경영에 관한 책을 읽으며 더 나은 삶을 스스로 개척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게다가 마리아는 기왕 창녀가 될 거라면 확실히 남자를 파악하고 공부해서 더 나은 서비스 정신으로 손님에게 최대 만족을 선사해야겠다는 프로 정신까지 겸비하고 있었으므로 금방 입지를 다지고 많은 단골손님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러기 위해 마리아가 스스로에게 정한 룰이 하나 있었는데 절대 사랑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인생은 늘 계획한대로만 흘러가지 않아서 사랑하지 않겠다는 마리아의 의지를 깡그리 무시하게 될 남자가 등장하고 말았다. 랄프는 이미 세상에 널리 이름을 알린 화가였고, 마리아가 일하는 고급매춘클럽 코파카바나 같은 곳에 자주 드나드는 남자였고, 스물 아홉밖에 되지 않았지만 섹스에 대한 흥미를 많이 잃어버렸고, 두 번이나 이혼을 한 남자였다. 즉 명성 빼고는 흠이 많은 예술가였다. 그러나 랄프는 금방 마리아의 영혼에 깊숙히 들어와 그녀에게 사랑의 감정을 일깨웠고, 그녀에게 11분 그 이상의 의미를 알게 해주었다. 1년이나 창녀로서 일을 하면서도 그녀가 한번도 제대로 도달해보지 못한 그 경지를 마리아에게 선사했다. 시계 시간으로 11분 밖에 되지 않는 그 짧은 순간은 경지에 도달했을 때 영원으로 치환되는 시간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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