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릿을 무척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 단 맛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중독의 길로 접어든다. 그런데 단순한 맛은 질리기 쉬우므로 여러가지 변형 또는 응용이 필요하다. 그래서 초콜릿이 들어간 다양한 음식이 생겨나는데 코코아에서부터 초콜릿 케잌, 초코 쿠키, 초코볼, 초콜릿이 코팅된 비스켓, 초코 아이스크림, 초코 크림 샌드 등등이 있다. 즉 이 세상에는 초콜릿이라는 맛에 중독된 사람들을 위한 다양한 레시피가 존재하고 그 달콤함의 찬양자는 더욱 늘어나게 된다. 초콜릿의 신이 있다면 세상에서 가장 많은 신도들을 가진 종교집단이 창출되었을 거다. 물론, 이는 초콜릿을 사랑하는 자의 개인적 소견일뿐이다.
바나나의 소설들이 이와 비슷하다는 기분이다. 그녀의 소설은 확실히 중독성이 있어서 자꾸자꾸 읽게 되는데, 같은 소설을 여러번 읽는다는 것엔 한계가 있으므로 그녀의 또 다른 소설들을 계속 찾게 된다. 그런데 다른 소설이었다 해도 읽고 나면 이전에 읽었던 작품의 맛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이전 번에 읽은 소설이 순수 초콜릿이었다면 요번에 읽은 것은 다크 초콜릿, 또 다음에 읽은 것은 화이트 초콜릿 같다. 하긴 어디 바나나만 그럴까 싶긴 하지만, 유독 바나나의 작품만이 그런 맛이 더욱 강하다.
데이지의 인생은, 뭐랄까, 압축되어 있다. 그녀의 작품은 원래부터 긴 것은 없지만-하지만 혹시 모르지, 있을지- 유달리 압축되어있고 복잡하게 꼬인 플롯없이 스트레이트로 진행된다. 좋게 말하자면 작가다움을 가장 단순하게 보여주어 독자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고, 평범하게 말하자면 너무 쉬워서 동화같은 분위기가 강하다. 거기에 나라 요시모토의 약간은 섬뜩한 삽화까지 가세해 유아틱한 분위기를 더욱 강하게 자아낸다. 스물 다섯 먹은 데이지가 어릴 때부터 친하게 지냈던 달리아와의 기억을 더듬으며 진행되는 스토리인데, 이 역시 과거와 자주 오버랩되는 바나나의 플롯 진행 기법에서 어긋남이 없다.
어릴 적부터 친하게 지냈던 달리아는 엄마의 재혼과 동시에 브라질로 이민을 가게 된다. 떨어져 본 기억이 별로 없을 정도로 친하게 지냈던 데이지와 달리아지만 열 한 살이라는 나이로 생이별을 하게 된다. 그 이후로도 데이지는 종종 달리아의 꿈을 꾸면서 그리움을 달래왔다. 그리움을 느끼지 않을 나이가 되어서도 달리아 꿈을 꾸면 마음이 편해지곤 했는데 어느 순간 살펴보니 한동안 달리아 꿈을 꾸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챈다. 그러고 나서 어느날 이상한 꿈을 꾸는데 벼랑 중턱에 위태하게 서 있는 집 안에 들어가게 되고, 꿈 속에서지만 직감적으로 그 집이 달리아의 집이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달리아는 보이지 않고 악몽에 가까운 기분으로 잠에서 깨어난 데이지는 친구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는 걸 예감한다.
며칠 후 데이지는 달리아의 엄마에게서 소포를 받는다. 소포를 받는 순간 그녀는 자신의 직감이 맞아들었다는 걸 느낀다. 달리아가 이상한 꿈을 꾸었을 때, 데이지는 이 세상에 없는 존재로 되어갔던 것이다. 친구의 엄마로부터 온 편지에는 달리아가 데이지를 늘 그리워하고 있었다는 것, 브라질에서 배다른 동생과 사이좋게 지냈다는 것, 그리고 얼마 전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것, 언젠가 달리아가 엄마에게 자신의 물건들을 데이지에게로 보내줬으면 좋겠다고 말을 했었다는 것 등이 적혀 있다. 달리아가 더 이상 살아있는 인간이 아니라는 것 때문에 데이지는 크게 상심하지 않는다. 열 한 살 때 헤어진 이후로 이미 달리아는 데이지에게 삶과 죽음을 넘은 존재로 자리매김하고 있었으므로. 달리아가 죽어서 자신에게 온 소포처럼, 자신도 언젠가 죽었을 때 데이지의 상자로 소박한 존재의 흔적을 남기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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