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중독-Reading/문학*문사철300

달의 궁전 Moon Palace

gowooni1 2011. 3. 8. 23:39

 

 

 

폴 오스터의 작품을 읽고 있다보면 그가 문장 하나하나를 마치 수련을 한다는 각오로 써 나갔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데 그런 면에서 보면 약간 하루키와 닮기도 했다. 매일을 한결같이 반복하다보면 수양한다는 마음가짐이 들게 되는 건 당연하다. 문장을 갈고 닦는 수양을 엄청나게 하다보니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결과 때문인지 작품의 내용이 길기도 하고 많기도 하다. 그 때문에 처음에 그의 세계에 익숙해지지 않을 때에는 기나긴 문장의 나열과 반복에 지루해지기도 하지만 거기에 익숙해지다보면 한 작가가 오랜 시간을 들여 빚어낸 것이 무엇인지 맛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오스터의 소설에는 꼭 이런 인물들이 있다. 더 이상은 비참해질 수 없을 정도로 밑바닥까지 내려가고 내려가고 또 내려간 사람들. 특이한 건 그들이 밑바닥까지 내려간 것이 가난의 세습이나 보잘것 없는 배움의 경험 때문이 아니라는 거다. 마음만 먹으면 세상의 기준에 맞추어 적당히 타협하고 어느 정도의 부를 축적하면서 살 수 있는 사람들이, 자신만의 기준을 중시하고 타인들의 기준을 무시한채 홀로 고고하게 살아가는 그 기질 때문에 거리의 부랑자, 유랑자, 미친자가 되어간다. 작가의 기질이 극단적이기 때문인지 등장인물들의 기질은 작가의 그것을 다들 조금씩 물려받고 작품속에서 숨을 쉰다.

 

달의 궁전은 이 극단적 기질을 가진 사람들의 극과 극을 오간 인생을 3대에 걸쳐 서술한다. 미혼모에게서 태어나 어릴적 어머니를 잃고 삼촌에게서 자라는 마르코 포그의 첫 배경은 일단 그리 밝지만은 않다. 아버지는 누군지 알 수도 없고 스무살에 자신을 낳은 어머니는 시카고의 길을 걷다 버스에 치여 숨진다. 그러나 포그는 외삼촌 빅터 포그의 극진한 사랑을 받으면서 유년시절을 보내고 또 어머니를 치여 죽인 버스 회사에서는 포그가 대학을 졸업하고 날 때까지의 생활을 할 수 있을만큼의 충분한 금전적 보상을 해준다. 포그는 컬럼비아 대학교를 어찌되었건 졸업은 하지만, 그 이후의 인생은 또 순탄하지 않다. 빅터 삼촌이 죽었다는 요인도 작용하긴 했지만 포그는 점점 미쳐가며 자발적 실업자로 자신을 몰아가고 그것에 부족해 센트럴파크의 부랑자, 거지, 광인으로 만들어 버린다.

 

친구들에 의해 죽기 일보 직전 구출된 포그는 겨우 몸을 추스리고 다시는 그런 미친 방식으로 시간을 낭비하지 않겠다고 생각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현실적인 문제부터 해결해야 했다. 잘 곳과 먹을 것을 얻기 위한 일자리를 얻는 것. 그는 자신이 졸업한 학교의 구인 게시판에 꽂힌 메모를 하나 발견하는데 자신에게 꼭 맞는 일자리임을 대번에 알아챈다. 한 노인의 비서로 고용되어 숙식을 제공받는 동시 약간의 금전적 보상까지 얻을 수 있는 자리였고, 포그는 그 미끼를 덥썩 문다. 그건 비교적 쉬웠는데 이유는 그 자리에 지원한 사람이 오직 한사람, 포그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포그는 괴팍하고 눈이 멀고 걷지도 못하는 다 죽어가는 노인 에핑의 비서가 되어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다. 그의 임무는 아침 여덟시가 되면 에핑의 방에 들어가 그의 요구사항을 들어주어야 하는 것이다. 책을 읽어달라면 하루 종일 책을 읽어주어야 하고 자신의 글을 받아 적으라면 곧장 받아적어야 하며 산책을 요구하면 노인의 몸을 각종 코트와 담요로 무장시키고 도시의 블록들 사이로 휠체어를 끄는 산책을 해야 했다. 정상이지만은 않은 포그였기 때문에 정상이지만은 않은 에핑의 요구를 들어줄 수 있었던 거지만 포그는 나름대로 에핑에게서 배우게 되는 점도 많았다. 예를 들자면, 에핑은 눈이 멀어 사물을 볼 수 없었고 포그는 그를 위해서 가능한 모든 단어들을 동원하여 설명을 해야 했다. 이는 이 세상의 것들을 언어로 바꾸어 나타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작업인가를 말해주었고 그래서 언어는 정확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덕분에 많은 가능성이 내재되어 있다는 것 들을 배운 것이다. 이건 오스터가 독자를 위해 살짝 언급하는 그 자신이 깨우친 지혜에 대한 서비스다.

 

그 이후로 서술되는 에핑의 삶과 나중에 등장하는 바버의 삶 역시 풍부한 영혼을 가진 그러나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이고 역시 극단적 인생에 대한 스토리다. 달의 궁전은 후반부까지 읽어나가다보면 앞부분을 읽어내리느라 투자한 시간과 인내에 대한 보답을 확실히 받을 수 있는 식으로 플롯이 짜여 있다. 아무런 인과관계도 없는 이 세 남자들의 인생을 과연 무엇이 잇고 있는지, 죽기보다 힘든 인생을 살아간 마르코와 에핑과 바버의 인생 뒤에는 어떤 것이 남는지, 더 이상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어보이는 와중에도 무엇이 남아있는지 등등을 내 인생에 반영해서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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