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중독-Reading/문학*문사철300

두려움과 떨림

gowooni1 2011. 3. 4. 14:52

 

 

 

 

벨기에 인인 아멜리는 어렸을 적 태어난 곳 일본에 대한 환상을 품고 어른이 되어 다시 돌아온다. 일본에 있는 대학을 졸업하면서는 자신의 꿈까지 이루어지는 듯 했다. 유창한 일본어 실력과 프랑스 어 실력, 일본 비지니스 영어 등의 능력을 가진 고급 인력 아멜리가 그토록 원하던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자격을 공식적으로 부여받은 것이다. 바로 일본 대기업 취업. 세계적인 규모의 광범위한 무역을 하는 유미모토 사 경리부에서 1년간 계약을 하고 근무를 하게 되었다.

 

꿈으로 가는 한 과정처럼 보였던 그 문은 들어서자마자 지옥으로 바뀌고 만다. 신분이나 나이에 관계없이 인간은 근본적으로 평등하다는 사고방식을 가진 그녀와, 나이는 당연하고 계급 하나에 따라서도 주종관계를 맹세해야 하는 일본의 위계질서적 사고방식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아멜리는 가시적으로는 보이지 않는 위계질서의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단 하나의 기름방울 같은 존재가 되어 표면에 둥둥 뜨는 하루하루를 이어나간다. 윗 사람에게는 목숨이라도 바칠듯한 충성을 각오하며 애완견처럼 살랑거리는 작자들은 아랫사람들을 대하는 순간 세상의 모든 권위의식을 쓴, 회사의 권위를 자신의 권위로 착각하는 작자들이 되어버린다.

 

하지만 아멜리가 그런 일본의 기업문화를 전혀 모르는 것도 아니었고 그 곳에 들어오기 위한 나름의 치열한 과정을 겪었으니 자신과 맞지 않는다고 해서 당장 그만둘 것도 아니었다. 그곳에서의 아멜리의 생활이 일본인의 눈으로 보았을 때에는 회사를 그만두어야 할만큼 수치스러운 일이었어도 그녀가 보기엔 그 정도는 아니었다. 자신의 실책을 자신의 인격과 동일시 하며 할복이야말로 최고의 영예로 아는 일본인의 미학은 서양인의 눈에 비록 신기하고 나름의 고결함으로 보였을지는 몰라도 뼛속까지 동일시 될 수 없는 관점이었다. 다행히 자신이 처한 비참한 입장을 우스꽝스러움으로 볼 수 있는 낙천적 성격까지 가지고 있던 그녀였다.

 

차 나르기에서부터 시작하여 일 밀리미터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완벽한 복사, 회사 사무실에 있는 달력의 날짜 칸 맞추기 등등 그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업무의 영역을 만들어가는데 온갖 노력을 다 한다. 그녀는 자신이 그동안 쌓아왔던 능력을 인정받아 유미모토에 입사하였지만 회사는 그녀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전혀 제공하지 않는다. 그런 와중에서 아멜리가 찾아낸 자신의 업무영역은 공교롭게도 사람들이 그녀를 더욱 우습게 여길수밖에 없는 일들이었고, 아멜리는 그러거나 말거나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해 나가는 데 열심이었다. 사람들은 점점 아멜리에게 아무것도 시키지 않는 것이 가장 사고를 적게 만드는 일이라는 것을 파악하고 더욱 그녀를 업무의 영역에서 떨어뜨렸다.

 

아멜리에게는 스펙터클한 회사 생활을 더욱 스펙터클하게 만들어주는 최대의 적이 존재했다. 그 적은 아멜리의 책상 건너편에 앉아 일본의 미적 감각을 최대한 살린 아름다운 외모로 시각적으로는 최대의 기쁨을 선사했다. 숲이라는 뜻을 가진 모리는 유미모토 내에 유일하게 존재하는 간부급 여성으로 그 실력을 인정받아 승승장구 하고 있었는데 그 능력과 아름다움에 비해 그녀가 너무도 평범한 일본여성이라는 점은 안타까움이었다. 자신보다 어린 사람은 자신에게 충성을 다해야했고 눈을 똑바로 마주치며 대꾸를 해서도 안되었고 무엇보다 자신의 업무영역을 넘보아서는 절대 안되었다. 아멜리가 다른 부서 부장의 권유로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한 완벽한 보고서는 그랬기 때문에 모리가 아멜리의 적이 될 수밖에 없던 극적이고 예외없는 이유가 될 수밖에 없었다.

 

신이 되고 싶었지만 불가능함을 알고 예수로 꿈을 낮추었고, 그것 역시 과한 꿈이었다는 것을 알고 유미모토사의 경리로 정했지만, 아멜리의 추락에는 끝이 없다. 자신의 외부적인 조건이 끝도없는 추락을 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냉정하고 객관적인 시선을 잃지않아 더욱 독자의 웃음을 유도하는 아멜리의 코믹함이 문체 곳곳에서 막강하게 흘러나온다. 서양 대 동양, 일본 대 벨기에, 권위의식 대 평등의식의 대면이 아니라, 일본사회에 스며들지 못한 서양인이 바라본 일본 기업사회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아니라, 그저 아멜리가 말하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서술이 가장 큰 즐거움으로 느껴지도록 한 것이 백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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