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중독-Reading/문학*문사철300

앙테크리스타

gowooni1 2011. 2. 22. 21:20

 

 

 

대학에 진학한 블랑슈는 친구를 사귀는 데에는 소질이 없다. 고독과 홀로 있음을 즐기기는 하지만 그것이 스스로 선택한 것이라면 전혀 문제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고독은 선택한 것이 아니라 사람을 사귀지 못한다는 성격상 어쩔 수 없는 결과였기 때문에 문제가 되었다. 블랑슈는 늘 친구를 사귀고 싶었고 사람들 사이에서 존재감 있는 아이가 되고 싶었다. 자기가 가지지 못한 것에 끌리는 본능에 기인한 것인지, 그래서 블랑슈는 자신과 정 반대처럼 보이는 크리스타에게 남모를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크리스타는 그야말로 블랑슈와 완벽한 반대를 상징하는 존재였다. 그녀가 들어가는 공간에는 늘 눈부심과 환한 존재감이 가득 채워졌고 주위에는 이성 친구들 무리가 늘 붙어다녔다. 예쁘고 몸매도 좋은데다 공부까지 잘하고 인기도 좋은 크리스타에게 블랑슈는 마음이 끌릴 수 밖에 없었다. 그녀의 친구가 되고 싶었지만 보이지 않는 격의 차이로 인해 크리스타가 먼저 블랑슈에게로 다가오지 않는 이상 둘이 친구가 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친구도 하나 없고 존재감마저 없던 블랑슈의 어떤 면에 이끌렸는지 크리스타가 먼저 접근해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상적일 것으로만 생각되었던 크리스타와의 관계는 처음부터 뭔가 이상했다. 남들 앞에서는 처녀의 싱그러움과 수줍음과 명랑함과 환한 웃음으로 호감을 사는데 열심인 크리스타였지만 블랑슈 앞에서는 그 모든 가면을 벗어버렸다. 처음부터 블랑슈의 호감을 사는 데 관심이 없었던만큼 크리스타는 그녀 앞에서 자신의 본성을 그대로 드러내었다. 억지로 블랑슈의 옷을 벗긴 다음 자신의 몸매와 비교시키면서 블랑슈가 보잘것 없는 몸매를 가졌음을 강조함과 동시에 몸매와 블랑슈의 가치를 일체화 시키기도 하고, 블랑슈 부모의 호감을 사 그녀의 집에서 숙식을 해결하면서도 고마워하기는 커녕 그녀의 공간을 하나하나 침략해가는가 하면, 자신이 있음으로써 블랑슈 같은 사회성에 문제가 있는 아이가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해야 한다고 은연중 블랑슈의 부모에게도 세뇌시켰다.

 

그러니까 블랑슈의 입장에서 말할 것 같으면 미칠 것 같은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친구인 줄 알고 끌어들인 여자애는 사악하기 그지 없는 데다가 지독한 나르시시스트였다. 모든 사람들의 호감을 사는 방법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지만 그 호감도 결국은 자신 스스로를 사랑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에 불과할만큼 지독하게 자기애가 심한 크리스타였다. 오직 한 사람 앞에서, 블랑슈 앞에서만 그 추잡하고도 사악한 본성을 드러냈는데, 블랑슈의 말을-혹은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그것은 마치 남들 앞에서는 잘 보이기 위한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으면서도 오래 된 남편 앞에서는 추잡한 몰골을 그대로 드러내는 늙고 못된 아내와 같았다. 블랑슈가 늙은 남편과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늙은 아내와 함께 오래 산 추억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살아야만 하는 처지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상황은 점점 나빠졌다. 초대된 손님이었던 크리스타와 주인집 딸이었던 블랑슈의 관계는 역전되어서, 오히려 크리스타가 딸처럼 보였고 블랑슈가 하숙하는 여자아이로 전락되어 가고 있었다. 블랑슈의 부모님들은 사람들을 초대해서 아름답고 매력적인 여자아이를 이 집에 머물게 하는 자신들의 관대함을 이용해서 주가를 높였고 크리스타는 그런 부모님의 기대에 철저히 부응했다. 오히려 사람들은 블랑슈를 보고 누구인가 할 정도였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블랑슈는 그럭저럭 참을만 했다. 그러나 크리스타가, 자신에게 호의를 듬뿍 주면서 모든 편의를 제공하는 블랑슈의 부모님을 무시하고 욕하기 시작하자 우리의 주인공 역시 가만 있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나아갔다가는 모든 것을 이 사악한 처녀, 앙테크리스타에게 침범당하고 선에 훨씬 가까운 블랑슈 가족의 모든 영역이 붕괴될 지경에 이를 것이기 때문이다.

 

드디어 블랑슈는 행동을 개시한다. 최소한 자신의 영역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 아래에서, 모든 것이 모순 투성이이고 거짓으로 점철된 앙테크리스타의 진실을 밝혀 내야만 했다. 그토록 오랫동안 블랑슈의 집에 머물면서도 크리스타는 집주소와 전화번호를 남기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고 그때문에 블랑슈의 탐정질은 더욱 짜릿하고 흥미진진하게 진행된다. 크리스타가 주말마다 돌아가는 집이 있는 마을이 프랑스 동부에 있는, 기차로 2시간이나 걸리고 독일과 매우 가까운 작은 마을이라는 사실 하나만 알고서 블랑슈는 아침 일찍 크리스타의 마을로 찾아간다. 과연 블랑슈가 찾아낸 진실과 크리스타가 치밀하게 엮어온 거짓말들의 차이가 얼마만큼인지, 악의 대명사로 보이는 크리스타가(소설의 전개상 당연히 몰락의 길을 걸어야 한다고 여겨지므로) 어떤 식으로 자멸하게 되는지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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