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중독-Reading/문학*문사철300

가고 싶은 길을 가라

gowooni1 2011. 1. 21. 13:24

 

 

 

어떤 사실을 나타내는 말에는 이중성이 존재한다. 직업에는 귀천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에는, 그것이 설령 절대적인 사실이라 하더라도 사회 구성원들의 생각은 상대적이라, 직업에 귀천은 엄연히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음을 의미한다. 돈이 전부는 아니다는 말 역시, 돈이 전부는 아닐지 몰라도 인간의 삶에서 돈이 미치는 영향력이 절대 작지 않다는 사실을 한 번 더 부각시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다. 가고 싶은 길을 가라, 라는 책의 제목에 사람들이 꽂히는 이유도 같은 논리이다. 이 세상에 가고 싶은 길을 걷는 사람이 별로 없기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사람이 별로 없기 때문에, 심지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이 제목이 마케팅에 있어 유용한 것이다.

 

누가 내 치즈를 훔쳤을까, 마시멜로 이야기, 선물, 미스터 애버릿의 비밀, 경청 같은 책들과 같은 부류라고 보면 무난하다. 전달하는 메시지가 비슷하다는 뜻이 아니다. 작은 교훈이 책의 전체적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메시지인데, 적당한 스토리와 플롯, 문학적 표현으로 대중들에게 쉽고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자기계발서라고 보면 된다는 말이다. 읽는 도중에는 나름 스토리를 쫓아가는 매력과, 나름 권위있는 등장인물들의 입에서 빌려나온 삶의 소소하고 큰 지혜들 덕분에 금방 읽을 수는 있지만, 읽고 나면 감동에 비해 건진 메시지가 부족해서 뭔가 허전한 느낌이 없지않아 드는 그런 책. 하지만 이런 책에 늘 사로잡히는 이유를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어떤 숨겨진 매력이 더 있든지 하겠지.

 

이 책의 메시지는 그러니까, 한 눈에 보아도 알겠지만, 정말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라는 거다. 독신 남자이고 학교 교사인 줄리앙은 휴가를 맞이하여 인도네시아 발리에 4주차 머물고 있다. 관광객들이 득실거리는 곳에서 조금 벗어난 외곽 지역에 바다가 바로 내다보이는 오두막을 빌려 지내고 있는 줄리앙은, 세계 유명 인사들이 다녀갔다는 정신적 스승이자 현자인 삼탕 선생을 만나보고 싶어 찾아간다. 자신의 오두막에서 수 킬로미터 떨어진 우부드라는 지역에 머물고 있는 그 선생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은 앞으로 학교가 개학할 때까지 남은 닷새. 처음에는 단지 호기심으로 그를 찾아 가고, 무엇 때문에 자신을 찾아왔냐는 현자의 말에는 장난 삼아 몸이 불편해서 치료를 하러 왔다고 무성의하게 대꾸한다. 하지만 그런 줄리앙의 반응에 무심한 샴탕은 정말로 그의 몸 구석구석을 마사지하며 치료해주기 시작하고, 새끼발가락을 지압했을 때 엄청난 고통을 느끼는 자신의 환자에게 현자는 '너는 불행한 사람이다'라고 진단해버린다.

 

그 말에 줄리앙은 필이 꽂힌다. 자신이 정말, 진정으로 불행한 사람이라고 무의식중에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교사라는 안정적이고 존경받는 직업을 가지고 있고, 휴가때에는 지구의 반바퀴를 돌아 한 달 동안이나 외국에 머물며 바캉스를 즐길 수 있는 여력을 가진 줄리앙이 왜 스스로를 불행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이유는 늘 간단하다. 아이들이 좋아하지도 않는 과목을 정부의 방침에 따라 지겨운 방식으로 가르쳐야만 하고 그래서 일은 늘 재미가 없다.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한 번 생각해보라는 샴탕의 숙제에 줄리앙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들른 식당에 앉아 공상에 빠진다. 줄리앙이 생각하는 환상적인 인생이란, 자신이 유일하게 열정을 드러낼 수 있는 사진을 찍으면서 돈을 버는 것이다. 사람들의 미묘한 행동 변화와 심경을 포착할 수 있는 살아있는 사진을 찍고 싶었다. 인생의 가장 행복한 순간들을 찍는 웨딩 스튜디오를 차리고 싶었다. 자신이 찍은 사진들로 명성을 얻으면서 잡지에도 몇 페이지씩 실리고 많은 돈을 벌고 싶었다. 휴일에는 아늑한 저택에서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시간이 나면 그동안 그토록 배우고 싶었던 피아노도 쳐보고 싶었다.

 

자신이 진정 바라는 것을 생각해보고 있자니 줄리앙은 당황스러워졌다.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삶이라는 것이 가만히 살펴보니 그리 터무니없는 일도 아니었던 것이다. 엄청난 백만장자가 되고 싶은 것도 아니고 할리웃 스타처럼 어마어마한 명성을 바란 것도 아니었다. 그저 자신이 조금만 용기를 가지고 구체적인 실행계획을 세워 실천에 옮기기만 하면, 물론 운도 따라주어야 하겠고, 성실하고 훨씬 자신의 일에 열정과 시간을 많이 쏟아부어야 하기는 하겠지만, 아주 불가능한 꿈도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직 줄리앙에겐 부족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마음의 준비. 이 마음의 준비에는 선택이라는 기회비용이 따랐다. 실패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에 맞서 싸울 준비도 되어 있어야 했고, 올바른 선택과 판단을 할 수 있는 능력도 필요했다. 막연히 구체적으로 꿈만 꾸다가는 자신이 생각한 것을 아무것도 이루지 못할 거라는 메시지가, 그저 꿈만 꾸면 저절로 이루어진다고 말하는 론다 번의 시크릿과는 조금 대조적이다. 어느 쪽이 옳은 지는 글쎄, 과연 누가 판단 할 수 있을지. 아무튼 줄리앙에게 마지막으로 알려주어야 할 것이 있다고 말하는 샴탕이 준비해 놓은 것, 현자가 마련해 놓은 것에서 줄리앙에 과연 어떤 메시지를 끄집에 낼 수 있을 것인지. 그리고 만약 내가 그 상황이라면 나 역시 그런 현자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생각해 봐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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