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중독-Reading/문학*문사철300

심각하지 않아-상류층의 흥미로운 하류적 본보기

gowooni1 2010. 11. 25. 23:17

 

 

 

현존하는 프랑스 대표 지식인 앙리 레비의 첫번째 딸-이라 함은 첫번째 부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첫번째 자식-주스틴 레비는 그 아버지 못지 않게 화려한 인생으로 세간을 장식하며 그 삶을 소재로 작가가 된 젊은 여자다. 아버지의 절친한 친구인 장 폴 앙토방의 아들이자 미래의 지식인, 정치인으로서의 야망으로 앞날이 밝은 라파엥 앙토방과 일찍 결혼하여 남들에게 부러운 상류층 여자로서의 본보기를 보여주었지만, 시아버지의 새 아내에게 남편을 빼앗겨 이혼을 당하고 비참의 나락으로 떨어진 그녀이기도 하다.

 

주스틴 레비가 '심각하지 않아'를 통해 고백문학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열었다고는 해도 말이 그럴싸하지 실은 실명을 가명으로 치환했다는 단촐한 꾸밈만 있고 나머지는 전부 실제상황이다. 제목과 달리 상황은 상당히 심각했다. 서로에 대한 소유욕으로 미친듯이 사랑하여 결혼을 하였지만 시아버지보다 몇십 살은 젊은, 슈퍼모델이자 가수인 여자가 남편의 새 아내로 집에 군림하면서 상황은 바뀐다. 성형으로 인위적인 마스크를 지닌 그녀는 그 누구보다 뇌쇄적인 눈빛으로 '세상 모든 남자들은 내 거야'라는 주파수를 사방에 송신하여 '남자 사냥꾼'으로 유명한 카를라 브루니였고 과정이야 어찌됐든 결과적으로 남편은 주스틴을 버리고 새어머니를 택한다.

 

남편이 떠난 이후 주스틴의 삶이란, 고상하고 품위있다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경해마지 않던 상류층 사람들마저 얼마나 저속하고 나약한지, 어느 정도까지 비참해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거울의 역할을 충실히 한다. '심각하지 않아'는 거의 처음부터 끝까지 정신적으로 피폐해진 여주인공의 짤막짤막한 독백으로 이어진다. 호흡이 짧은 대신 그녀의 정신 상태가 어떠한지 더 실질적으로 와닿는다는 장점과, 상처입은 내면의 묘사에만 치중되어 있어 너무 자기중심적이라는 단점이 있다. 만약 그녀가 문학적 재능이라는 것이 별로 없었다면 이것은 고백문학이 아니라 일기라고 해도 무난했을 법하다.

 

그녀가 이 소설을 쓰면서 자기 치유의 과정을 거쳤다는 것은 이 작품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느끼겠지만, 그녀 역시 이 소설을 통해 세상에, 자신에게 상처를 입힌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통쾌한 복수를 했다고 공공연하게 인정한다. 그녀는 주변 사람들이 오히려 이 작품을 써보라고 했다고 당당히 말하고, 그 결과-프랑스에서는 출간되자마자 엄청난 베스트셀러로 기록되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프랑스를 대표하는 자들의 스캔들과 내면이 속속들이 드러나있어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결코 알지 못하는 세계를 너무도 쉽게 엿볼 수 있는 장치였으니-에 대해 또 '어느 정도' 만족했다고 말한다.

 

겨우 이십대 후반의 그녀가 엄청난 매력으로 무장한 카를라 브루니에게 대적한다는 것이 무리였을지도 모른다. 상황이 진행된 과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오직 결과만 보고 승자는 카를라, 패자는 주스틴이라고 명명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사실이기도 하다. 하지만 만약 주스틴이 이 책을 통해 자신의 정신적 고통을 치유했고 인생에 대한 즐거움과 사랑에 대한 가치를 한 번 더 찾을 수 있었고 그래서 행복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면 그걸로 된 것이 아닐까. 어쨌거나 그녀의 소설속에 등장하는 강력한 캐릭터들과 실제 상황들은 처음부터 잘 팔릴 수밖에 없는 것들이었고, 마음의 상처를 가장 많이 받았다 하더라도 그 상황을 또한 가장 자기쪽으로 유리하게 전환해 제일 큰 이득이 보기도 했으니 말이다.

 

모르는 사람들을 위한 코멘트. 소설 속에 등장하는 남편을 빼앗은 그녀 카를라 브루니는 현재 프랑스 대통령 사르코지와 2008년도에 결혼하여 영부인으로 군림하고 있는 이탈리아 출신의 여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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