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중독-Reading/문학*문사철300

오두막 편지

gowooni1 2010. 11. 8. 00:46

 

 

 

 

오두막 편지(개정판)

저자 법정  
출판사 이레   발간일 2009.07.22
책소개 강원도 산골 오두막에서 보낸 편지! 우리가 어디를 향해 가야 하는지 일깨워주는, 법정 스님의 산문...

 

죽은 자들의 글을 읽고 있으면 그 현존감이 너무 생생하여 마치 아직 그들이 내 옆에 살아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사람의 생명은 영혼이 육체를 떠나고 떠나지 않음에 있는게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쉽게 소환될 수 있느냐에 있는건 아닐지. 그러므로 글을 쓰는 사람의 생명은 그가 쓴 글에 얼마만큼 자신의 영혼을 불어넣었느냐에 있다. 문장 하나하나에서 그 사람의 생명을 느낄 수 있는 글을 읽을 수 있다면, 그리고 그 생명이 좋은 생명이라면 참으로 행복한 일이다.

 

법정 스님의 글에서는 향기가 난다. 수행자로서, 쉽기보다는 어려운 삶을 선택한 그는 생활 방식에서도 보다 손이 많이 가는 쪽을 고수했다. 전기도 수도도 들어오지 않는, 겨울이면 영하 20도 아래를 도는 산자락에 오두막을 손수 지어 산 사람이다. 스님의 글에서 향기가 나는 이유는 그의 삶의 방식이 향기로웠기 때문이리라. 새벽에 일어나 예불을 드리고, 산 속을 거닐어 물을 길어 온 후에 아침을 지어 먹는 삶. 겨울이 다가오면 장작을 패는 단순 노동으로 즐거움을 누리고, 밤이면 촛불 하나 켜놓고 경전을 읽으며 스스로를 경계하는 마음을 놓지 않은 삶. 산 속의 생명들과 함께 이 땅의 한 자락을 빌려 자연을 즐기는 소소한 행복에 감사할 줄 아는 삶.

 

하지만 법정은 그저 사람 좋은 스님은 아니었다. 세상에 대한 열린 눈을 가지고 같은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항상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니 좋은 일은 좋다고 말할 줄 알고 나쁜 일은 냉정하게 비판할 줄 아는, 말하자면 대쪽같은 선비의 꼬장꼬장한 기질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이 싫은 일에서 벗어나기 위해 혼자 사는 삶을 택한 그 까다로움에서 이미 그 기질은 짐작할 수 있겠지만, 그의 글을 읽고 있다보면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첫번째 목적이어야 할 종교적 귀의자인 사람치고는 외부세계에도 날카로운 눈길을 거두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다. 어쩌면 스님은 이미 마음을 다스리는 단계는 어느정도 거쳐왔기 때문에 오히려 자신이 속한 거시적 사회에 더 많은 관심을 쏟을 수 있었던 거다.

 

스님이 오두막 편지를 쓴 시기는 십여 년 전 우리 나라의 IMF 경제위기 시기, 온 국민이 무척이나 어려웠던 시기인데 마침 그런 상황은 다른 어느때보다도 검소라는 미덕이 돋보일 수 있는 때이기도 했다. 지나치게 소유적 삶을 영위하려 했던 우리에게 소비를 줄이고 내면적 부를 쌓는 삶의 방식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 시간이었다. 어려운 시기가 오지 않으면 반성의 필요도 느끼지 못하는 인간적 기질이 우리에게 있어서 위기가 기회라는 전제가 성립되는 것이다. 지난 날을 돌이켜보고 후회를 반성으로 바꿀 수 있었던 시기에 법정 스님의 글이 조금이라도 더 큰 위안이 되지 않았나 한다.

 

법정 스님의 산문집들을 읽다보면 수행자로서 긴장을 늦추지 않은 엄숙함을, 신과의 약속은 물론 자신과의 약속-적어도 그는 항상 자신만의 글쓰기 숙제를 짊어지고 있었다-을 반드시 지키는 경건함을, 그러면서도 유유자적하게 산속 생활을 즐기며 홀로 자연을 만끽하는 방랑을, 또 자신만의 세계에 틀어박히지 않고 세계를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늘 우리 사회에 열어두었던 마음과 비판 정신을 고루고루 볼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의 글을 매번 찾게 하는 건 산 속에서의 소소한 생활을 묘사하는 데서 나오는 분위기의 고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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