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보내지마(Never let me go)로 특히 유명한 가즈오 이시구로이긴 하지만, 오히려 그래서 이시구로에 대해 잘 모를 사람이 꽤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네버 렛 미 고의 잔잔하다 못해 밋밋하기까지 한 그 전개 때문에 지루함을 이기지 못하고 책장을 덮었던 경험이 있다면 더욱 그러하다. 이시구로가 인터내셔널한 작품 세계를 추구한다고 하는데, 이게 굳이 비유하자면 밥과 같은 것이다. 특별한 맛이 있진 않아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밥을 거부하지는 않는다. 이시구로의 문체는 맵고 짜고 단 강렬한 맛보다 담백한 맛에 더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이시구로의 녹턴은 녹턴답다고 말하기엔 뭐랄까, 좀 어울리지 않는다. 부족하다고 말하는 편이 적합할지도 모르겠다. 녹턴은 야상곡夜想曲, 밤과 같은 몽상적 분위기를 말하니까 이시구로의 밥과 같은 담담함에서 몽상을 끄집어낸다는 게 왠지 억지스럽지만, 그럼에도 이시구로의 녹턴에는 녹턴이 흐른다. 녹턴에 담긴 다섯 개의 단편에는 모두 음악이 흐르고 저녁의 몽환적 분위기도 흐른다. 하지만 그것의 분위기에 흠뻑 취해있다가 하나를 끝까지 읽고 나면 마음엔 바흐를 들은 것 같은 신실함이 남는다. 청중을 생각하기보다 하늘에서 들을 단 한 사람을 위해 경건함을 연주에 담았던 바흐와, 특정한 사람을 염두에 두지 않고 범세계적인 사람들을 위해 작품을 쓰는 작가의 마음이 어쩌면 조금 비슷하기 때문인가보다.
굉장한 화려함이나 눈이 돌아갈 것 같은 기교로 취향이 없는 대중을 현혹하는 것은 어찌보면 쉬운 일이다. 더 어려운 건 어느 정도의 경지에 이른 사람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분위기를 자아내는 것이고 또 그것을 알아챌 수 있을 만큼의 내공을 쌓은 사람에게 존경을 받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봐도 바흐와 이시구로는 닮았다. 지나치게 도덕적이지 않은 음악으로 신실함을 추구했던 바흐인 것도, 지극히 세속적이고 대중적인 주제로 우아함을 자아내는 이시구로인 것도 비슷하다.
녹턴에 있는 다섯 개의 작품은 레퍼토리도 비슷비슷하다. 음악을 하거나 음악과 관련이 있었던 화자가 등장한다. 이 화자들은 대체로 현실적이고 성실하며 자신의 생활이 극적으로 바뀔 것을 기대하지도 않고 그저 묵묵히 해야 할 일을 다 하는 소시민에 가깝다. 별로 드라마틱 할 것도 없는 하루하루를 보내던 화자이지만, 누구에게나 인생에 특별한 순간은 한 번 씩 있는 법. 그 화자들에게도 인생에 특별히 기억에 남을만한 날들이 찾아오고 그것을 회상하는 식으로 이야기를 꾸려나간다. 거리의 음악사에 가까운 직업의 화자가 굉장히 유명한 사람과의 인연을 하루 혹은 얼마간 맺는다. 그것을 이용해서 명성을 얻으려는 생각들은 하지 않지만, 그 특별했던 순간을 굳이 부정하거나 외면하려 하지 않고 기억할 만한 일로 간직한 채 이야기한다.
화자가 성실하니 이야기의 흐름도 딱히 어수선하거나 스펙터클 할 리도 없다. 잔잔한 발단에서부터 승과 전을 차곡차곡 올라가 결까지 잔잔하게 막을 내리는 것이 꼭 인벤션이나 평균율 같다. 그 잔잔한 여운이 끝까지 남아 분위기를 다시 느껴보고 싶은 것마저 그러하다. 이시구로 문체의 덤덤함은 어쩌면 일상의 덤덤함에 지쳐 특별함을 원하는 사람들에게나, 전개부터 흥미진진함으로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할 대중적 장편소설에는 별로 적합하지 않는 듯도 하지만 글쎄, 가즈오 이시구로가 자아내는 분위기에 한 번 맛을 들린 사람에게는 그런 말들이 귓등으로 흘려질 것 같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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