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서북부 시골 지방에서 나고 자란 하오위엔과 즈챵은 죽마고우이다. 반에서 일 이등을 다투던 사이에서 서로 모르는 것을 물어보고 알려주는 동안 우정이 싹텄다. 함께 같은 목표를 향하여 시간을 보내며 열심히 공부한 둘은 열 명 중 한 명이 들어갈까 말까한 대입고사를 치르고 같은 대학에 합격하였다. 두 명의 집 전부 농사를 지어 간신히 먹고 사는 형편이었지만 지식인 아들의 탄생을 기뻐하는 부모님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시골을 떠나 대학이 있는 도시로 상경한다.
아무 것도 걱정하지 않고 오직 강의를 듣고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는 대학생활은 너무나 행복했다. 둘은 공부만 같이 잘 한 게 아니라 시를 좋아한다는 지적 감성적 취향까지 같았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호숫가를 돌며 중국의 시를 외우고, 중국의 시가 떨어지면 영시를 외웠다. 소리를 지르며 맴도는 와중에 울부짖는 촌스런 늑대들이라는 비아냥 어린 별명도 얻었지만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둘은 시를 외우면서 그 감상에 젖어 가슴벅찬 감동을 느끼는 것이 좋았다.
둘은 깐 교수의 강의가 가장 좋았다. 그는 시를 입으로가 아니라 마음으로 낭독하는 사람이었다. 학생들은 깐 교수가 강의 중에 낭독하는 시를 듣고 있으면 목소리의 미묘한 떨림까지 놓칠까봐 불안했다. 공산당 독재정권 치하에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었지만 나라를 사랑하는 것은 굉장한 애국지사로 존경을 받던 시절이었다. 그런 시절에 깐 교수는 사람을 사랑하는 시와 개인적 감정을 존중하는 시를 거리낌없이 낭독하며 장려할 줄 아는 이상적 사상가였다. 아직 책임질 것도 없고 미래에 대한 정열만 가득한 학생들 사이에서 깐 교수의 강의와 시 낭독과 사상은 학생들의 이상 그 자체였다.
하오위엔과 즈챵은 깐 교수의 사상에 매료되어 있는 한 편,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던 호숫가에서 만난 여학생에게도 매료된다. 영혼이 너무나 닮은 두 사람은 반하는 여자도 같을 수 밖에 없다는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녀는 잉루라는 이름의 같은 대학 학생이자 깐 교수를 지지하는 또 한명의 아군이었다. 깐 교수가 자유 민주주의 중국을 만드려는 운동을 지휘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학생들을 소집하는 모임에 가면 늘 그녀가 있었다. 그녀는 깐 교수의 열정적인 표정까지도 그대로 복사하며 눈에 빛을 내뿜는 소녀였다. 즈챵은 시원스런 성격으로 그녀와 점점 가까워지고 소심한 하오위엔은 질투와 부러움이 섞인 감정으로 그들 곁은 맴돌며 지켜보는 수밖에 방법이 없었다.
몇 달간의 시위가 계속되었다. 학생들은 조만간 중국도 미국처럼 자유와 민주의 나라가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강의에 참가하는 대신 시위와 행군에 참가하며 자신들의 사상을 위해 온 몸을 불사르고 있는 자신들의 청춘과 정열에 심취했다. 처음에는 반독재를 표방하던 학생들의 시위는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시위로 성격이 변질되었지만 온 국민이 자신들의 편이라 믿던 그들은 무서울 것이 없었다. 하지만 학생들은 그저 평화와 먹을거리가 족하면 지배자들이 누구든 상관없던 대다수의 심중을 파악할 길이 없었다. 오래되는 시위에 학생과 국민과 정부 모두가 지쳐가고 정부는 시위대의 요구를 받아준다며 그들의 해산을 종용했다. 자신들이 성공했다던 자부심과 축적된 피로에 곤히 자던 하오위엔과 즈챵은 그날 밤 자신들을 깨우는 깐 교수를 통해 천안문 사태에 대해 듣는다. 그 날로 깐 교수와 잉루는 행방불명이 되고 하오위엔과 즈챵은 다시 예전의 생활로 돌아간다.
정열을 다 바친 생활 뒤에 온 일상은 공허했다. 예전과 같이 강의를 듣고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기숙사에 돌아와 자는 생활을 반복할 뿐인데도 뭔가 부족했다. 실패감이 주는 무력감을 벗어나기 위해 술을 마시다가 패싸움을 한 하오위엔과 즈챵은 퇴학을 당했다. 미래 중국을 이끌어갈 전도유망한 엘리트에서 내일 당장 먹고 살 것을 걱정해야 하는 날품팔이에 거지로 전락하는 순간이었다. 즈챵은 시골로 돌아가는 대신 어떻게든 도시에서 살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하오위엔은, 그런 즈챵을 따라 도시에 남기는 했지만 그 무렵 얹혀 살던 집의 여자와 결혼을 해서 일본으로 건너간다.
일본에서도 중국의 민주화를 위한 하오위엔의 개인적인 투쟁은 계속된다. 하지만 이미 결혼을 한데다 아이까지 있는 하오위엔은 예전처럼 모든 걸 불사르고 조국의 민주화를 위해 시간을 쓸 수 없었다. 이미 고급인력이 될 수 없는 그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대부분의 시간을 투자하고, 남은 시간에는 재일 중국민주회 모임에 참가하여 동지들과 함께 의지를 불사른다. 하지만 그 모임에 나오는 대부분의 중국인들은 하오위엔의 경제적 사정과 크게 다르지 않아 일단 먹고 살고 봐야 하는 자들이었다. 제대로 된 비자를 얻기 위한 명목을 유지하기 위해 나오는 사람도 있었고, 조금이라도 인맥을 만들어 장사를 해보려는 사람도 있었다. 단지 같은 말을 사용하는 자들끼리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오위엔처럼 조국의 민주화를 성사시켜야한다는 높은 이상을 품고 오는 사람은 없었다.
하오위엔은 홍콩의 중국반환에 대한 반대 서명 운동을 펼치고, 올림픽의 중국 유지 반대 서명 운동도 펼친다. 처음에 사람들은 그런 하오위엔의 의지에 호의를 가지며 기꺼이 서명을 해주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그의 행동이 소용없음을 시사한다. 민주화가 가능했다면 진작에 되었다며, 이미 중국이 경제적으로 잘 굴러가고 있으니 언젠가는 민주국가가 될 것이라 위로도 해 준다. 점차 하오위엔도 자신이 진정으로 조국에 홍콩이 반환되는 것을 반대하는지, 진짜 올림픽이 중국에 유치되는 걸 반대하고 있는지 알 길이 없어진다. 그러다 홍콩이 드디어 중국에 반환되던 날, 하염없이 텔레비젼을 바라보며 자신이 홍콩반환을 정말 기뻐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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