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중독-Reading/문학*문사철300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gowooni1 2010. 10. 22. 00:22

 

 

 

자신이 선택한 길은 어찌됐든 한 번 걸어보았으니 후회되고 아니고를 떠나서 궁금할 건 없지만, 선택하지 않은 길에 대해서는 동경을 품지 않을 수 없다. 걸어온 길에 대해 후회가 클수록 걷지 못한 길에 대한 갈망은 점점 커져 끝내 미화의 경지에 이른다. 가지 못한 길에 대한 애착은 수없이 반복된 선택의 과정 속에서 더 커지고 그 종류도 다양해진다. 인생이 선택의 연속이니까 해야만 했던 선택이 많을수록, 즉 인생을 점점 더 살아갈수록 못 가본 길에 대한 감정은 더 애틋해지는 것도 같다.

 

어쩌면 이루지 못한 옛사랑이 시간이 지날수록 기억속에서 더욱 예쁘게 남는 것과 그 과정이 비슷해 보인다. 옛사랑은 곱씹으며 행복한 추억에 도취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소중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애잔하다. 내가 선택해 함께 살고 있는 사람과 비교 대상이 될 가능성도 짙다. 내가 이 사람을 선택하지 않고 저 사람을 택했더라면 내 인생은 과연 어떻게 바뀌었을까, 하는 생각은 내가 이 길이 아닌 저 길을 걸었더라면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 하는 생각과 비슷하다.

 

하지만 가지 못한 길에 대한 감정이 크다고 과연 좋을 수 있을까? 옛사랑이 너무 그리워 현재 사랑을 버리고 그에게 돌아가는 것이 정당한지에 대해 생각해보자. 현재 사랑에 아무런 문제도 없는데 단지 그리움과 미련 때문에 그런 행동을 취하는 건 문제다. 자신의 선택으로 인해 한 사람을 반려로 삼고 가정을 꾸리고 아이까지 낳아서 살고 있다는 행위 이후에 그 모든 것을 단지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겠다는 이유만으로 버린다는 건 별로 좋아보일 수 없다. 선택에는 책임이 따르고 책임 안에는 자신이 포기한 것에 대한 미련까지 포기할 줄 아는 인격이 요구되는 것이다.

 

비슷한 논리로, 내가 가지 않은 길을 단순한 동경에서 끝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선택한 길을 꿋꿋이 가다가 가끔 힘들고 고독할 때, 예전에 선택가능했던 다른 길을 회상하며 마음의 위로를 받는 선에서 그칠 줄 아는 것. 그것도 하나의 지조이고 용기이다. 힘든 순간이 왔다고 다른 길을 처음부터 시작한다는 건 인생과 자신에 대한 도피이다. 비겁한 자세다. 하나의 길을 끝까지 밀고 나간다는 건 다른 것에 대한 동경을 동경에서만 멈출 수 있는 자제력까지 함께 짊어짐을 포함하는 것이다.

 

여기서 걱정이 하나 앞선다. 가지 못한 길이 과거에만 있는 게 아니라 앞으로 살아갈 미래에서도 수탁하게 나타나면 어쩌지. 앞으로 나타날 길이 내가 걷는 길보다 훨씬 강력하게 다가오면 어쩌지. 그 때가 오면 자신의 내면이 끌리는대로 의지를 맡기는 것도 괜찮을 것같다. 지조라는 것을 외부로부터의 시선에 두지 않고 자기 내면에 있는 무언가에 바친다면. 인생은 변수의 연속이기도 하므로.

 

 

* 이 글은 책 제목에 대한 개인적 단상으로, 책의 내용과는 다소 상관이 없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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