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마음을 내려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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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모든 이들이 죽을 때까지 짊어져야만 하는 숙명과도 같은 존재다. 아무리 많이 사랑을 해도 부족하고 아무리 많은 사람을 사랑해도 그 모양이 한결같지 않다. 사랑은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 동시에 가난하게도 만들고 행복하게 만드는 동시에 비참의 나락으로 떨어뜨린다. 사랑을 하고 있는 자들은 고로 가난과 고통을 기꺼이 감수하는 용감한 자들이다. 그들의 용기는 행복으로 보상되니 기꺼이 그런 감정 쯤은 감내할 만하다.
사랑은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감정이라는 점에서 보편적이다. 아무리 친하지 않은 사이라 하더라도 사랑이라는 주제가 나오면 다들 할 말이 많아진다. 인류가 가장 공감할 수 있는 손쉬운 주제인 셈이다. 우리는 아무리 친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일단 그들의 사랑 이야기가 나오면 흥미로워한다. 그들의 이야기가 불륜이든 스캔들이든 로맨스든 어쨌거나 사랑은 사람들의 주목을 끌고, 사람에게 가장 쉽게 다가가도록 만든다. 여기서 진정한 사랑이냐 단순한 연애사건이냐를 따지기는 좀 그렇지만 짚고 넘어가야겠다.
뭉뚱그려 말하면 단순한 연애사건 마저도 사랑의 범주에 속할 수 있다. 일단 사람 사이에 보통 이상의 감정 기류가 형성되었다는 것은 자신을 잊고 잠시나마 상대방에게 매료되었음을 증명한다. 그 정도가 얼마나 깊고 얕은지 간에 상대에게 반할 수 있는 것도 능력이다. 자신이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나르시시스트들은 감히 네가 어떻게 나를 사랑하지 않을수 있어? 하고 되물을 뿐 진정 자신을 잊고 남을 사랑하는 능력이 결여되어 있는 족속들이다. 나르시시즘이 나쁘다는 게 아니다. 어느정도의 나르시시즘은 매력을 형성하는 요소중 하나일 수 있다. 문제는 타인에게 마음을 줄 수 있느냐의 여부에 있다.
부자들이 빈자들보다 기부할 수 있는 능력이 더 크고 열정적인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무언가에 몰입할 능력이 더 큰 것처럼 사랑도 내면에 사랑이 가득찬 사람이 타인을 더 많이 사랑할 수 있다. 늘 남에게서만 무언가를 갈구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내면이 형편없는 사람들이다. 물론 자기 내부의 그릇이 유난히 커서 그를 채우기 위한 갈망일 수도 있지만, 그릇이 큰 자들의 갈망과 작은 자들의 갈구는 차원이 다르다. 그릇이 큰 자들의 갈망은 자신이 무얼 원하는지 비교적 큰 줄기라도 잡아 파악하고 있는 반면에 내면이 형편없는 자들의 갈구는 길거리에서 아무에게나 적선을 요구하는 거지와 같다.
내면에 마음이 큰 사람은 자신의 중심을 잃지 않고서도 남들에게 더 큰 마음을 내줄 수 있다. 마음이 너무 커서 그 중심이 확고하면 남들에게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기기 좀 힘들어질 것이다. 그보다 훨씬 더 큰 마음의 중력을 가진 사람이 나타나면 약간 문제는 달라지겠지만. 사랑도, 인생에 대한 열정도 마찬가지다. 사랑이 풍부한 사람은 주변에 더 많은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 인생에 대한 열정이 흘러 넘치는 사람은 삶 속에서 열정을 쏟아부어야 할 것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인생이 즐거울 수 있다.
사랑, 마음을 내려놓다의 저자는 내면에 사랑과 열정이 너무도 커 스스로도 주체할 수 없는 사람이란 느낌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녀의 글에는 유난히 '나'가 많이 나온다. 수필이기 때문에 그러려니 하지만 조금 읽다보면 그녀의 자아에 눈이 질끈 감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수필을 끝까지 읽게 되는 이유는 내가 아닌 타인이 생각하는 '사랑'에 대한 가치관이 궁금해서이기도 하고, 또 그녀가 살아온 사랑의 모습이 나나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의 사랑의 모습과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비교해 볼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행히 그녀의 글솜씨는 뛰어나서 자신의 내면을 묘사하는데 제법 충실해있기 때문에 매 구절구절마다 나의 심리 상태를 세밀이 비교분석하는 것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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