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중독-Reading/문학*문사철300

그녀에 대하여

gowooni1 2010. 9. 21. 00:41

 

 

 

단어도 단아하고 문장도 친절하고 읽는 속도감에 재미도 붙어서 술술 읽히기는 하는데 어, 이건 아닌데, 하는 순간에 끝나버리는 소설들이 있다. 굳이 이미지를 비유하자면, 쉽게 마음을 여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결정적인 것은 몰래 숨기는 사람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친절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이기주의를 위한 이타주의고 영업용 미소를 아무에게나 보이지만 진실된 미소는 잘 보여주지 않는 사람들과도 그 이미지는 약간 겹친다.

 

하루키와 바나나는 그런 면에서 좀 닮았다. 문장이 어렵지 않아 모든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간다는 점과 끊임없이 서사가 이어져 독자에게 긴장감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책장을 넘기는 속도가 빨라지므로 제법 허영적인 양적 포만감도 누릴 수 있는데 이게 아무것도 아닌 듯 하면서도 대중적인 독자들에게는 상당히 중요하다. 이는 하루키나 바나나의 책이 아무리 두꺼워도 결코 질리거나 두려움으로 다가오지 않도록 만들고, 책장을 한장 한장 넘길수록 남은 양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절박한 아쉬움을 제공한다. 그리고 이는 곧 중독으로 이어진다. 이 작가가 만들어낸 또 다른 세계에서 그 작가만이 창조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끽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기꺼이 중독에 감염된다.

 

열심히 스피드를 내서 책장을 덮은 후 어, 이건 뭐지? 라는 어리둥절함. 그건 배신감을 느끼게 하고 한편으로는 읽다가 뭔가 놓친 것은 없나 하는 숙고를 하게 한다. 친절해서 말하고자 하는 걸 다 설명해줄 줄 알았는데 갑자기 작가의 목소리는 끝나버리고 우리는 지금껏 들었던 화자의 목소리에서 각자 자신이 건지고 싶은 것들을 찾아 건져올려야 한다. 정 없으면 읽는 동안 그 분위기만으로도 좋았어, 라고 만족하며 숙고를 마쳐도 상관은 없지만 왠지 그러기에는 좀 아쉬운 감이 든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그녀에 대하여'도 어처구니 없음을 동반한다. 마지막에서 작가는 독자의 뒤통수를 한 대 치고 유유자적하게 사라진다. 매번 같은 패턴으로 당하면서도 늘 그녀의 작품에 손이 가는 첫번째 이유는 그녀가 말하고자 하는 게 뭔지 기필코 파악해보리라, 하는 치기어린 마음보다 그녀가 또 한번 조합해 낸 문장의 바다에 빠지고 싶기 때문이다. 잰척하지 않는 깔끔한 문장들은 꾸미지 않고 소박한 모습을 대중들에게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작가의 모습과도 일치한다. 비록 친절하지 않을지 몰라도 이중적이지 않기 때문에 믿음이 가는 사람이고 작품이다.

 

'그녀에 대하여'를 읽다보면 자신이 인생을 대하는 삶의 자세에 대해 곰곰히 생각하는 시간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아침에 눈을 떠 잠이 덜 깬 머리로 맛있는 커피를 마시고, 정신이 조금 개면 오늘이라는 하루가 또 한 번 주어진 것에 대해 감사하고, 그 하루를 어떤 일을 하며 즐겁게 보낼지 기대하고, 마음에 드는 사람들과 함께 웃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 기뻐하고, 건강한 몸으로 식사를 하며 잘 소화시키고, 좋아하는 술도 조금 마실 수 있으면 더 좋고, 그리고 마지막에 하루를 마무리하는 잠자리에서는 오늘 하루도 몸을 편하게 뉠 곳이 생겨 감사할 수 있으면, 그것이 바로 인생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 대체 인간은 자신이 뭐라고 동물과 스스로를 분리시켜놓고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하며 살다 죽겠다고 아등바등하고 있는지. 그리고 자신은 또 얼마나 대단한 인물이 되겠다고 하루하루를 고군분투하며 살아보려 기쓰는지. 뭐 이런저런 생각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