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중독-Reading/문학*문사철300

강남몽, 더렵혀진 한국인의 강남 드림

gowooni1 2010. 9. 2. 21:04

 

 

 

 

몽자류 소설은 재미도 있고 해서 아류작이 꽤 많이 탄생한 장르다. 주인공과 소재가 각각 다르긴 하지만 몽자류 소설의 원점은 늘 같다. 일장춘몽. 꿈이라는 건 인간이 그렇게나 바라던 인생을 살도록 도와주지만 동시에 그게 얼마나 허무한 일인지 알게 해 준다는 점에서 선이자 악이고 신이자 악마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꿈에서 깨어나 망상을 벗어버리고 자신의 현재와 본질을 직시하는 순간, 인간은 그 어떤 초인적 존재에 기대지 아니한 온전한 존재가 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우리나라의 1995년은 좀 특별한 해가 되었을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십오 년 전의 그 해엔 정말 많은 일이 일어났다. 성수대교가 붕괴되었고 삼풍백화점이 무너져내렸다. 김영삼 정부의 보다 민주주의에 근접했던 정부가 출범했고 지방자치가 본격적으로 실시되었다. 대중을 우롱하고 민중을 한없이 짓밟던 군사정부는 물러가고 국민들 스스로의 의지로 대통령을 뽑았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한국은 한바탕 꿈에서 깨어난 것이다.

 

강남몽에는 직접적으로 몽자류 소설적인 면은 없지만 대개 그 제목에 수긍할 수 있다. 한국 전쟁이 일어나고 장면 내각의 경제개발계획이 수립되던 때만 해도 강남은 다리가 별로 놓여져 있지않아 오지나 다름없던 깡촌 마을이었다. 그랬던 강남이 고작 삼사십 년 사이에 최고의 땅값을 자랑하는 부호들의 갖가지 상징이 되었고 그간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같은 꿈을 꾸었다. 강남에 있는 땅을 사서 일확천금을 얻고 떵떵거리며 사는 꿈. 꿈이 이상과 달리 단지 허황되기만 한 것이라면 그 꿈에서는 언젠가 깨어나야 한다는 법칙이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눈 깜짝할 사이 뭔가가 붕괴되던 그 해에 조금씩 꿈에서 깨어났다.

 

성수대교가 붕괴되던 것이 정경유착이 불러일으킨 부실공사의 문제라면 삼풍 백화점이 무너져내린 것은 거기에 경제적인 이유까지 첨가된다. 당시 강남 잘 사는 사람들이 가장 선호한 쇼핑몰이던 삼풍백화점의 붕괴사건은, 폐허가 되어버린 건물 잔재 속에서 사치품을 사러 나왔던 사모님이건 식구들 먹여살리려 애쓰던 앳된 여점원이건 인생의 종착역 앞에 돈이란 게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를 극적으로 보여주던 사건이었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지면서 사람들이 함께 꾸던 강남몽도 무너져내렸고 그랬기 때문에 꿈에서 깨어날 수 있었다. 꿈에서 깨어난 대한민국은 무조건 돈을 신격화 하던 몽매함에서 벗어나 민주주의라는 대중 스스로에게서 뿌리를 찾을 수 있는 나라로, 그런 온전한 존재로 진화할 수 있었던 것이다.

 

군사독재에서 민주주의로의 터닝 포인트를 어째서 삼풍백화점 붕괴사건으로 선택했는지 작가의 의도를 충분히 이해하고 수긍을 했다면, 강남몽에는 그러한 작가의 설득은 별로 없다는 걸 알고 놀랄 것이다. 단지 황석영은 (늘 그랬듯) 보여줄 뿐이다. 오늘의 강남을 형성하기까지 어떤 사람들이 있었는지, 그들이 꾼 꿈이 어떤 꿈이었는지, 그들이 만들어간 한국 근현대사의 모습이 어떠했는지 아낌없이 보여준다. 이제와서 부끄러운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지고 싶은 사람들의 진면모를 '까발린다'는 표현이 부족할만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1퍼센트도 되지 않던 사람들의 욕망으로 한 국가의 최대 부호단지가 창조되기까지는 어떤 식의 세상 돌아가는 이치가 필요했을지 궁금한 사람들의 호기심을 부족함없이 채워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