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선덕여왕>의 영향으로 한동안 다시 각광을 받았던 제1회 세계문학상 수상작품인 <미실>은 단순하고 간결한 것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영 와닿지 않는 작품이었다. 복잡다단한 기교적 수사를 잔뜩 부려 화려하게 보일지는 몰라도 금방 사람을 물리게 만드는 그 문체가, 1000년의 역사를 간직한 신라의 전성기를 적절하게 묘사하고 있었는지는 몰라도 쉽게 질릴만한 것이기도 했다. 편식적 독서를 하는 독자에게는 인내심을 발휘할 관용조차 허용될 수 없었다. 이 작가는 나와 맞지 않군, 하고 한 사람의 글에 대한 마음이 닫혀버리는 순간이었다.
시간이 흘러 작가가 변한 건지 독자가 변한 건지(아니면 둘 다 변한 건지) 모르겠지만, 혹은 톨스토이처럼 죽고 싶다는 작가의 끊임없이 어제와 다른 모습을 추구하는 발전적 자세에서 기인한 건지도 모르겠지만, 이 작가의 <가미가제 독고다이>는 좀 달랐다. 어제의 편견이 오늘의 편견과 늘 같을 수는 없다. 또 다시 미실을 읽으면 덮어버릴 것 같다. 가미가제 독고다이가 미실에 섞여 있는 작가적 성향과 문체가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다고 말하기도 불가능하다. 한 사람이 이룩한 문체가 하루아침에 바뀐다는 것 자체가 애초에 불가능하다. 게다가 이 작가는 우리나라 역사에 흠뻑 빠져서 동시대인들이 잘 사용하지 않는 단어로 글을 짓기 때문에 동시대인 공감대에 크게 알랑거리지도 않는다.
가미가제 독고다이는 우리 말로, 신풍특공대, 정도다. 신풍<神風;가미카제>을 설명하려면 역사가 필요하다. 옛날 고려를 침공해 부마국으로 만든 몽고족 원나라가 대영토 무적제국을 꿈꾸기 위해 일본을 정복하려 하던 때 몇 차례의 원정 계획이 있었다. 그런데 실제로 실행을 하려 할 때마다 대한 해협에서는 태풍에 의해 거대한 바람이 불어 번번히 실패했고 우리로서는 쓸데없는 국력만 소모하게 되었다. 일본에서도 이 엄청난 대국의 공격에 맞서 온갖 준비를 하느라 국력을 소모하기는 마찬가지였고 결국 가마쿠라 막부가 몰락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지만 어쨌거나 일본에서는 이 태풍을 가리켜 신풍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자신들의 나라는 신이 지켜준다는 믿음으로 국민들을 지배하였다.
어떤 일에서나 맹목적인 믿음은 무서우면서도 한편으로는 필요한 것이다. 종교 지도자들에게는 맹신도가 필요하고 나라 지배자들에게는 맹목적 애국주의가 필요하다. 민주주의에 자본주의인 오늘날에도 쇼비니즘을 찾아보기가 어렵지 않은데 제국주의 시대에는 말할 것도 없었을 것이다. 신풍특공대는 일본제국이 자폭을 자촉하여 멸망의 지름길로 폭주하던 제2차 세계대전 말 만들어진 특공대다. 자신들의 나라는 신이 지켜주기 때문에 걱정할 것 없다는, 말은 번지르르한 특공대지만 실상은 자살특공대였다. 무지한 국민의 맹목적 믿음에 근거하여, 나라를 위해 죽지 않으면 너는 반역자다, 라는 논리가 판을 치고 있던 그 시대에 자살특공대는 영광의 특공대였다.
작품의 배경은 구한말 무렵부터 제2차 세계대전이 종식되기 직전까지다. 서양 열강으로부터 각종 이권을 침탈당하고 일본에게는 주권을 빼앗기고 한 나라가 다른 나라의 종이 되어버렸던 암울한 시대에, 나라가 다른 나라에 넘어갔는지도 모르는 시골 백정 마을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조상 대대로 천한 직업을 물려 받는 것이 운명으로 당연시 여겨지던 사람들이 운명의 굴레를 벗어버릴 수 있는지도 모르고 여전히 어제와 같은 오늘을 살아간다. 그 와중에 백정의 피를 거부하던 한 남자가 무단가출을 감행하여 서울로 올라오면서 한국 근현대사의 초상에 색을 칠한다. 양반 자제들의 겁탈로 생긴 씨앗인 자신은 법적 아버지인 백정보다 진짜 자신의 피는 양반이라고 믿으며 신분상승을 꿈꾼다.
그렇다고는 해도 무일푼에 거지와 다를바없던 그가 처음부터 상류사회에 진입할 수는 없었다. 막일꾼으로 한강 인도교를 만드는 데 투입되어 돈을 모으기 시작한 그는 격변하는 시대의 흐름을 파악하는 혜안이 있어 무난히 상류층으로 진입하는데 성공한다. 일자무식으로 글하나 읽고 쓸줄 몰랐지만 조선어와 일본어를 무난히 구사하고 미곡투기시장에서 적당한 이문을 보고 빠져나오는 동물적 감각에 애국심보다 출세 의욕이 다분해서 세속적 성공은 문제도 아니었다. 진짜 문제는 자신이 친일파라는 감각조차 전혀 없었다는 것에 있었다.
그 만을 나무랄수는 없다. 그 시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변절을 하고 전향을 했는지는 이제와서 새삼스럽지도 않다. 머리가 있다는 사회 지도층들도 그렇게 일본을 향해 충성을 맹세하던 판국에 단순히 남들보다 잘 살아보겠다는 출세 의욕이 '나는 친일파'라는 자각에 기초하였다고 보기가 더 문제다. 하지만 남자에게도 아들이 둘 있었으니 첫째는 우등생에 법대생의 엘리트고 둘째는 오입질을 일삼는 못말리는 구제불능이다. 친일파로서 어지럽던 시대 속에 편히 살던 대가는 아들 중 하나를 그 자살 특공대에 바쳐야 했던 것이다.
이 둘째가 주인공인데에는 작가의 눈물겨운 의도가 담겨 있다. 웃으려야 웃을 수 없던 우울한 역사적 상황 속에서 그래도 웃음을 선사할 수 있는 화자는 시대를 심각할 것 없이 대충 살아가는 어릿광대여야 했기 때문이다. 이 어릿광대가 과연 가미가제 독고다이에서, 그리고 그 시대에서 살아 남았을지는, 비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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