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 탐정 김전일이나 명탐정 코난 같은 추리 만화의 압권은 뭐니뭐니해도, 명석한 두뇌를 가진 주인공들이 각종 단서와 추측 끝에 '범인은 바로 당신이야!'하고 외치는 그 한마디다. 보통 범인은 사건이 일어나기 전부터 스토리 안에 들어와 있어 독자들에게 '누가 범인인지' 생각해보게 만든다. 무엇보다 재미있는 순간은 작가가 거짓으로 뿌린 단서들에 넘어가 A가 범인일 거라고 지레짐작하고 있는데 난데없이 C가 범인임이 드러나는 반전의 순간이다. 그래서 매번 작가에게 속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꺼이 그 속임수에 넘어가기 위해 다음 시리즈를 기다린다.
그런 면에서 봤을 때, 모린 제닝스의 '머독 미스터리' 시리즈는 조금 밋밋하다. 깜짝 놀랄만한 반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과연 누가 그녀를 죽였을까' 하는 추측을 하기에 무리가 있는 플롯이라서 그저 작가가 펼쳐놓은 스토리에 수동적으로 따라가는 것만이 범인을 알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미스터리물에서 수동적인 독서가 얼마나 의미있고 재미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를 굳이 미스터리의 범주에만 국한시키지 않는다면 그럭저럭 즐길 수 있는 소설이다. 무엇보다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없는 100 여년 전 캐나다 토론토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것부터 새롭다.
머리카락은 물론 눈에 보이지도 않는 혈흔이 눈꼽보다 적게 떨어져 있어도 쉽게 범인을 잡아낼 수 있는 현대 사회의 각종 미스터리 극에 익숙해져있는 우리에게 100년전 토론토의 범인 추적은 원시적으로 보인다. 형사 머독은 오로지 직감과 발품에 의존하여 사건을 해결해 나가야 한다. 그리고 머독의 발길이 닿는 모든 곳이 바로 소설의 무대다. 직접 발품을 팔아야 하는 곳이 워낙 많아서 소설 속에는 한 세기 전 캐나다 사회의 상류층 사회부터 최하계층의 사람들이 사는 모습까지 전부 나온다. 상류층과 하류층의 빈부 격차는 물론 그 당시 캐나다 사회가 겪었던 신교도와 구교도 사이의 종교적 갈등도 엿볼 수 있다.
눈이 내리는 추운 겨울날 15살 안팎의 어린 소녀가 시체가 되어 발견되는 것으로 머독 미스터리 1 시리즈의 막이 오른다. 소녀의 사인은 동사이지만 수상한 것이 많다. 지나치게 수축되어 있는 동공과, 죽음의 직접적 원인에 별 상관 없어보이는 자그마한 멍들 빼고는 외상도 전혀 없다. 그리고 소녀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상태에서 발견이 되었다는 것도 문제다. 소녀를 죽인 사람들이 옷까지 벗긴 것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부검 후에는 더 수상한 점들이 추가된다. 소녀의 피 속에는 아편이 함유되어 있었고 또 자궁에는 6주 된 태아가 그녀와 함께 죽어 있었던 것이다.
모든 것을 귀찮아 하면서도 자신의 공 하나는 확실하게 챙기려 하는 상사와 갈등이 없지는 않지만 그래도 머독은 자신을 잘 따르는 믿음직한 부하 크래브트리와 함께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살인이 가능한 모든 사람들을 용의자 선상에 놓고 조금씩 범위를 좁혀 나간다. 소녀가 발견되었던 골목 집에 살던 매춘부 자매들부터 소녀가 가정부로 일하고 있던 로즈 부인의 저택까지 샅샅이 수사하며 사건의 진상이 조금씩 드러난다. 과연 범인이 누구인지 하는 두근거림보다, 죽은 소녀 테레즈 주위로 포진되어 있던 인간들의 이중적인 면과 추악함에 더 흥미진진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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