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중독-Reading/문학*문사철300

소매치기의 정당성-쓰리

gowooni1 2010. 7. 27. 18:23

 

 

 

쓰리

저자 나카무라 후미노리  역자 양윤옥  원저자 中村文則  
출판사 자음과모음   발간일 2010.06.09
책소개 천재 소매치기, 최악의 남자를 만나다!제4회 오에 겐자부로 상 수상작『쓰리』. 천재 소매치기가 어느...

 

부자인 부모를 둔 아이가 공짜로 얻은 비싼 장난감과, 가진 게 없는 아이가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해 자신의 손으로 훔친 편의점의 삼각김밥 사이에는 정당함에 있어 계층 구조가 가질 수밖에 없는 모순이 있다. 부자 부모 아이는 자신의 힘으로 한 것이 아무 것도 없는데도 사치품이라 할 수 있는 좋은 물건을 마음껏 가질 수 있다. 가진 게 없는 아이는 자신의 힘으로 생활 필수품인 음식을 손에 넣었다. 정당함의 기준이 '자신의 손으로 직접' 쟁취했느냐에 있다면 삼각김밥을 훔치는 데 멋지게 성공한 아이가 옳다. 훔치는 것도 기술이고 들킬 때 감당해야 하는 일들과 훔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여러 리스크를 감당하면, 훔치는 데 성공해 삼각김밥을 먹는 행위는 일종의 보상일 것이다.

 

하지만 사회적인 기준으로 보았을 때 정당함의 기준은 '자신의 손으로 쟁취했느냐' 보다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았느냐'이므로 소매치기는 불법이다. 부자 부모 아이는 자신의 손으로 얻지는 않았어도 그 장난감을 소유하는 데 있어 피해자가 발생하지는 않았다. 여기서 또 한 번 생각해 볼 게 있다. 부자 부모 아이가 불로소득으로 얻은 장난감으로 인해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장담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그 장난감을 갖고 싶지만 가질 수 없는 수많은 아이들은 '부자 부모 아이'의 존재 만으로도, 그리고 그가 가지고 있는 장난감의 존재 만으로도 피해의식을 가질 수 있다. 그러니 피해자의 기준은 '경제적인 피해자'가 발생했느냐로 한정지어야 한다.

 

'쓰리'는 사회 밑바닥 계층인 소매치기가 '나'로 등장하는 작품이다. 부모도 없고 아무 연고도 없는 내가 어릴적부터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해 습득한 소매치기 기술로 성인이 될 때까지 먹고 산다. 소매치기를 하는 데 있어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도 않는데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이 돈에 든 돈 몇 천엔, 몇 만엔 없어진다 해서 먹고 사는데 지장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또 '나'는 부자들만 노리는 게 그 타당함의 근거다.

 

전문 소매치기인 '나'는 '일' 하면서 같은 소매치기 동료를 만나고, 가짜 이름을 사용하고, 일부러 좋은 옷과 구두를 신어 사람들의 경계망을 느슨하게 만든다. '나'도 소매치기가 좋지 않다는 것쯤은 기본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지만 도저히 그만 둘 수가 없다. 경제적인 이유가 첫번째고, 할 줄 아는 게 그것밖에 없다는 게 두번째 이유고, 소매치기를 하는 도중 느끼는 스릴감과 성공했을 때의 희열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게 세번째다. 기분의 기복이 심할때는 예외지만, 대체적으로 부자들만 노린다는 것이 자신의 직업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한다. 여기서 그는 부의 재분배를 실현한다고, 알게 모르게 느끼는 거다.

 

평범한 인생을 사는 한명의 보통 사람도 일생을 살아가면서 꽤 많은 인격을 입고 벗는다. 어제의 인격과 오늘의 인격이 조금씩 달라진다면 1년에 약간씩 달라진 365가지의 인격을 소유하게 된다. 소매치기들은 우리보다 더 드라마틱하게 인격의 옷을 갈아치워야 할 지도 모르겠다. 어제까지의 소매치기 인격으로 오늘을 영위하다 죽을지도 모르는 인생에서 오늘의 인격은 어제와 조금 다른 정도가 아니라 판이하게 달라야 한다. 그들에게 인격과 외모를 끊임없이 바꾼다는 건 살아남기 위한 본능이자 투쟁이다.

 

나카무라 후미노리(1977~)

 

사람마다 끌리는 것이 다르듯이 작가들도 자신이 끌리는 분야와 주제가 다를 터인데, '쓰리'의 작가 나카무라 후미노리는 '사회 반항아'들에 끌린다고 솔직히 털어 놓는다. 사회에 불만이 없는 사람이 좋은 글을 쓸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그리고 나카무라 후미노리는 사회에 대한 불만에서 조금 더 깊이 들어가 사회에 불만이 있는 계층에 애착을 느낀단다. 그가 세상에 내놓는 작품들의 주인공들을 무조건적으로 옹호하는 것은 문제가 있겠지만 적어도 '하급 계층','반항 계층'의 생각과 감정, 그들이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유와 환경등을 생각해볼 기회를 얻게 된다면 그것도 좋다. 그들을 무조건적으로 배척하는 것 역시 무조건 옹호하는 것만큼 치명적으로 나쁜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마찬가지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