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정육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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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란 게으르고 더럽고 타락한 동물이므로 사육하거나 먹어서는 안된다는 코란의 가르침을 아는지 모르는지 돼지고기를 직접 썰어 파는 무슬림이 하나 있다. 하지만 배경은 이슬람 국가가 아니라 정 반대의 땅끝 한반도, 그리고 쓰러지기 일보직전의 가옥들이 겹치기로 쌓아올려진 산동네 달동네 정육점이다. 하산 아저씨는 이 쓰러져가는 집과 쓰러져가는 정육점을 오가며 돼지고기를 통해 생계를 유지하는, 하지만 시간과 때만 되면 기도와 금식을 하는 독실한 무슬림이다.
종교 자유의 대한민국에서 하산 아저씨는 언제나 이방인이다. 검은 피부에 움푹 패인 눈과 짙은 눈썹, 그리고 무슬림의 상징처럼 느껴지는 콧수염. 동네 사람들은 이 이방인을 언제까지나 이방인 취급한다. 돼지고기가 아쉬운 동네 사람들이 정육점에 들어올 때가 그들이 하산과 대화하는 유일한 시간이고, 문턱을 넘어선 순간 다시 철저한 이방인으로 남겨지는 하산 아저씨. 그는 돼지고기를 판다는 이유로 무슬림들의 사원에서도 소외되고, 무슬림이라는 이유로 극성스러운 기독교신자가 득실대는 이 사회에서 또 한 번 소외된다.
그런 그가, 이제 할아버지라도 불려도 좋을 그가 고아원에서 한 아이를 데려온다. 기억에도 없는 흉터가 온 몸에 남아 있는 '나'는 하산 아저씨가 처음으로 고아원에 왔을 때부터 그리 달갑지 않았지만, 이 세상에 고아원보다 더 나쁜 곳은 없을 거라는,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그를 따라 이 달동네의 일원이 된다. 그리고 '나'는 이미 날때부터 온 몸에 흉터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이 동네와 더없이 잘 어울리는 구성원으로 자리잡는다.
달동네에는 흉터 투성이인 사람들만이 존재한다. 그 흉터가 외적이건 내적이건 다들 하나같이 상처를 받은 사람들. 하지만 그들은 억지로 자신의 흉터를 드러내며 동정을 구하려 하지 않는다. 어차피 다들 감당하기 힘든 흉터를 가진 상황에서 서로 내 흉터가 더 크다고 내세울 필요는 없는 것이다. 강원, 전라, 경기, 경상을 거쳐 겨우 제대로 이름잡은 충남식당의 여주인 안나 아주머니나, 안나 아주머니에게 항상 핍박을 받으면서도 밥 한끼 얻어먹으려고 뻗대는 야모스 아저씨, 한국전쟁 3년동안의 기간이 기억에 전혀 남아있지 않아 가짜 기억을 자신의 과거라고 믿는 대머리 아저씨 등등. 그들이 한데 모일수 있는 연대는 오직 하나, 그들 전부 이 사회의 이방인이라는 이유다.
그리스와 터키가 한국 전쟁 당시 우리측 참전군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는 것처럼 야모스 아저씨와 하산 아저씨 역시 사람들에겐 뜬금없는 외국인일 뿐이다. 야모스 아저씨와 하산 아저씨는 서로 맞지는 않는 사람들이지만 그들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공통점, 한국 전쟁 참전 후 자신들의 나라로 돌아가지 않고 이 땅끝의 땅끝 나라에서 여생을 마감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점이 그들을 한 가족같은 사이로 남게 만든다.
작가는 한국 단어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았던 게 분명하다. (그리고 그리스와 이슬람 문화에 매료되었던 것으로 분명해 보인다) 비참하고 괴로운 나날로 연명하는 달동네 사람들의 '나름' 인간다운 나날들을, 터키식 단어와 그리스식 단어까지 섞어서 '나름' 아름다운 동네로 승화시켰다. 이방인들이 득실한 동네를-사실 이 세상에 이방인이 아닌 사람이 있을까 싶지만- 대륙의 동쪽 끝과 서쪽 끝을 교묘하게 뒤섞어 놓아서, 아무리 힘들어도 인생은 살만한 것이라는, 진부하지만 언제나 매력적인 메시지를, 상당히 흡인력 있게 설파한 작품이다. 이슬람 정육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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