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작품 속에 그가 추구하는 일관적인 메시지를 알게 모르게 녹여내기도 하지만 매력은 다른 곳에 또 있다. 만약 미야자키 감독의 팬이라면 작품의 분위기를 빼놓고서는 그를 이야기하지 못한다는 말에 전적으로 공감할 것이다. 분위기는 대체적으로 조용하고, 차분하고, 몽환적이고, 명랑하고, 끝내는 즐겁다. 정적인듯 하면서도 쉼없이 흐르는 서사는 동적이다. 사람들은 미야자키 감독이 창조해 낸 또 하나의 허구 세계에 그렇게 몰입되고 만다.
친자연적인 메시지를 마구 내뿜는 동시에 전쟁에 대해 적대적인 미야자키지만 그는 기계에 대한 애착도 어느 정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미래소년 코난, 나우시카, 라퓨타에는 항상 기계문명이 등장한다. 물론 자연에 대비되는 효과도 있으니 그가 즐겨 사용하는 아이템일 수밖에 없겠다. 붉은 돼지에서도 어김없이 기계들이 등장하는데 이 작품이 다른 작품들과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그간 애매모호하던 시대적 배경이 여기선 제법 명확하다는 것. 붉은 돼지의 배경은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 이탈리아를 포함한 지중해 일대다.
붉은 돼지는 메시지도 메시지지만, 그보다 분위기가 더 매력적으로 다가와서, 강렬한 햇빛에 눈이 아득해지는 지중해 연안의 나른한 분위기가 그리울 때마다 보게 되는 애니메이션이다. 프랑스와 합작으로 만들어서 그런건지, 아리송한 프랑스 영화의 분위기도 물씬 풍겨 더욱 이국적이다. 게다가 늘 어린 아이들을 염두에 두고 작품을 만들던 감독치고는 어른을 더 겨냥하였다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더 상승. 하지만 늘 그렇듯 지나친 폭력이나 피투성이 전투따위는 찾아볼 수 없다.
포르코는 1차 세계대전 이후 사람과 사람을 죽여야 하는 비극적인 인간 운명의 굴레에 신물이 나서 스스로 돼지가 되어버린 인물?이다. 포르코는 자신의 사랑하는 붉은 비행기와 함께 이탈리아 지중해 무인도 섬에서 라디오를 듣고 와인을 마시며 공적(공중도적)을 소탕하며 생계를 유지하는데 만족한다.
포르코가 돼지가 된 것은 현실 도피다. 하지만 인간이 되어 끔찍한 운명을 다시 밟느니 차라리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자신이 선택한 길을 가겠다는 주인공의 의지이기도 하다. 아름답고 우아하고 기품있는 자태와 목소리로 뭇 남성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지중해 호텔 아드리아노의 마담 지나만이 포르코의 인간이던 시절을 기억하고 아쉬워 한다. 세번째 남편까지 전쟁으로 잃었어도 사람들 사이에 살며 사랑을 기다리는 지나는, 인간을 기피하는 포르코와는 조금 대조적인 인물이지만, 지나는 돼지가 되어버린 포르코를 여전히 사랑한다.
사진의 제일 위(펜으로 그어져 잘 보이지 않는)가
돼지가 되기 전의 포르코. 아래는 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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