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상-Daily/영화-MOVIE

시라노;연애 조작단

gowooni1 2010. 9. 19. 00:30

 

당신의 사랑을 쥐도 새도 모르게 이루어 준다는 연애 조작단이 여기 하나 있는데 그 수식어가 재미있다. 쥐도 새도 모르게. 연애라는 사건이 두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감정의 줄다리기라면 쥐도 새도 모르게 이루어질수가 없다. 고로 그 수식어는 단 한 사람, 피유혹자에게만 통한다. 피유혹자는 유혹자의 유혹에 자신이 넘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절대 알아서는 안되고, 감정의 줄다리기라는 게임이 게임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빠지는 사랑의 감정이라고 착각을 해야 한다.

 

 

하지만 유혹에 능통한 사람은 몇 안 되고 상대의 마음을 사고자 하는 사람은 지구상 도처에 깔렸다. 이런 사람들을 노린 연애 조작단의 존재가 과연 사기이냐 아니냐를 논할 수 있을까? 기본적으로 사람의 마음을 얻는다는 것 자체가 도박과 비슷하므로 사기의 가부를 논하는 게 의미가 없어 보인다. 오히려 자신이 부족한 유혹의 스킬을 누군가가 대신 도맡아서 전수해주고 목표한 상대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면, 대부분의 것을 아웃소싱으로 처리할 수 있는 현대 사회 자본주의가 지닌 편리함이 극대화에 이른 것으로 판단해도 좋다. 아, 그러나 유혹에 성공한 이후의 문제는 별도지만 말이다.

 

 

시라노 연애 조작단은, 돈이 없어 공연 준비를 못하고 있지만 언젠가 자본이 넉넉해지면 다시 연극을 할 수 있는 재기의 날을 꿈꾸는 4명의 배우들로 이뤄진 조작단이다. 이 일은 기본적으로 의뢰인을 위한 것이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전 도시와 시민들을 상대로 연기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자신들이 잠시 접어두고 있는 꿈에서 많이 벗어나지도 않고, 또 돈도 꽤 벌 수 있다는 점에서 일거양득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준비한 달콤한 멘트와 기가 막히게 적절한 타이밍으로 의뢰인의 피유혹자를 완벽하게 유혹한다. 게다가 이 일은 재미까지 쏠쏠하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의뢰인이 예쁜 여자의 사진을 들고 조작단의 사무실에 찾아 온다. 너무나 예쁜 그 여자의 사진을 본 순간 조작단의 보스(엄태웅)는 이 일을 거절하려 한다. 말도 안되는 의뢰비를 요구하며 제풀에 나가 떨어지게 만들려는 보스의 속셈을 모르는 천진한 의뢰인은, 이제 드디어 자신이 오랫동안 마음만 졸이며 말도 못 붙인 여자가 자신의 애인이 될 지도 모른다는 낙천적인 기대에 부풀어 덥석 의뢰비를 지불한다. 이번의 피유혹자는 보스의 예전 애인. 이런 속 사정을 모르는 의뢰인은 싱글벙글 웃고, 조직원들은 보스의 행동이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아직 옛 여자를 잊지 못한 보스는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도 못한 채 의뢰인의 사랑을 이루어 주어야 하는 현실 속에서 괴롭다. 자신의 이기심을 내세워 일을 망칠 것인가 아니면 공은 공이고 사는 사니 의뢰인의 의뢰를 성사시키는 것이 옳은 일인가. 비교적 감정에 더 충실한 보스는 번번히 일을 망치려 작정하고 이를 눈치챈 조직원 중 한 명은 보스에게 이 일이 끝날때까지 작전에서 빠지라고 매서운 충고를 던진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자신의 마음으로 표현하지도 못한 채, 타인을 내세워 달콤한 말과 마음을 전달하는 것. 그것은 분명 마음 아픈 일이다. 여기서 시라노의 의미가 성립한다. 19세기 후반 프랑스에서 태어난 에드몽 로스탕이 지은 희곡 시라노에서, 주인공 시라노는 호탕한 기질과 문학적 소양까지 겸비한 귀족이다. 다재다능한 그는 엄청난 코 때문에 추해보이는 얼굴로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고 이 때문에 아름다운 사촌 누이 록산을 사랑하면서도 마음을 표현할 수 없다. 그러던 중 록산은 잘생긴 귀족 크리스티앙과 사랑에 빠지고 시라노는 사람은 좋지만 교양이 없는 크리스티앙을 위해 연애편지를 대신 써준다.

 

 

한국 영화에서가 아니면 절대 공감되지 않을 적당한 멘트와 아다리 맞는 대사들이 영화를 더욱 유쾌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플러스 오십 점. 끝까지 유쾌한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플러스 오십 점. 중간에 손이 오그라들게 만드는 멘트 몇개 덕분에 마이너스 십 점. 그래도 끝까지 즐거운 기분을 안겨준다는 점에서 깎인 점수는 만회되고, 그 명랑 유쾌한 기분이 그리워 다시 보고 싶다는 점에서 또 한번 점수를 주고 싶다. 연극 시라노의 결말과 이 영화의 결말을 비교해 보는 것도 약간의 재미를 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