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상-Daily/영화-MOVIE

아바타, 그리고 거장이 된 제임스 카메론

gowooni1 2010. 1. 3. 11:09

 

 

러닝 타임이 3시간 가까이 육박하는 영화에는 엄청난 핸디캡이 존재한다. 2시간 이내의 영화에 익숙한 관객들의 인내심을 극복해야 한다는 것, 그러므로 조금이라도 지루해지면 제법 재미가 있어도 평가가 좋을수 없다는 것이다. 타이타닉 이후 10년이 넘는 기간동안 3시간짜리 영화를 본 기억이 없는 관객으로서 또 한번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스크린 위로 펼쳐낸 세계의 거대한 스케일은 역시 제임스 카메론이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끔 만들어버리고 만다. 그가 아니면 과연 3시간의 러닝타임을 누가 이토록 흥미진진하게 이끌어갈 수 있겠느냔 말이다.

 

 

영화의 배경부터가 엄청난 스케일을 암시한다. 인간의 무자비적인 환경파괴에 지구가 살기에 부적합한 곳으로 변해가는 시점에서 인류는 또 다른 생명체가 번식하고 있는 행성 '판도라'를 발견한다. 판도라의 공기는 인류가 숨쉴만한 것이 못되지만 방독마스크를 착용하면 충분히 살 수 있을만한 곳이다. 그러나 판도라가 인류에게 매력적인 이유는 살수(live) 있는 곳이라는 소박한 바램때문이 아니라, 인간에게 팔면 돈이 될만한 엄청난 것이 있기 때문이다. 언옵타늄이라는 광물은 뛰어난 자기적 성질때문에 스스로 공중에 부양할 수 있으며 이것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땅덩어리들이 하늘을 떠다니는 거대한 숲의 섬을 형성하고 있다.

 

 

제이크 설리는 다리를 못쓰는 해병대 출신이다. 다리를 고치고는 싶은데 퇴직해서 나오는 연금으로는 어림도 없고, 판도라의 용병으로 지원해서 많은 돈을 벌면 그나마 가능하다. 그런 개인적인 이유 때문에 판도라에 오게 되는 제이크는 그의 죽은 형이 만든 아바타에 링크되어 원주민 나비족과 접촉하게 된다. 아바타는 인간의 DNA를 조합하여 만든 현지인과 비슷하게 생긴 육체다. 짐승처럼 생긴 코와 뾰족한 귀, 3m가 넘는 거대한 신장, 파란 피부와 기다란 꼬리의 육체에 DNA가 조합된 아바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인간의 육신과 아바타 육체에 영혼을 넘나들면서 존재할 수 있다. 아바타에 성공적으로 링크된 제이크는 숲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그를 구해준 원주민 여성 네이티리의 도움을 받아 구조되고 점점 원주민의 생활 속으로 동화되어 간다.

 

 

그러나 현실로 돌아오면 제이크에게 부여된 임무는 원주민의 스파이 역할이다. 원주민의 삶과 동화되면서 그들의 상황을 정탐하지만 한편으로 제이크는 점점 나비족의 생활방식과 네이티리에게 빠져든다. 그는 인간으로서의 삶이 정상인지 나비족으로서의 삶이 진짜인지 판단하기 힘들어지지만, 인간의 탐욕과 그들이 계획하고 있는 원주민 말살작전이 부당하다는 것만은 안다. 게다가 그가 나비족의 성인 남자로서 의식을 끝내는 날에는 네이티리와 함께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사랑을 맹세하게 된다.

 

 

그가 선택한 긴장 고조의 방법은 조금만 생각해보면 쉽게 간파할 수 있다. 전형적인 인물상과 전형적인 플롯, 화려한 스크린이 그것이다. 영화 도입 부분에서 손에 잡힐듯한 리얼한 영상으로 관객을 영화 속 세계로 급히 몰입시킨다. 영화에서 제시하는 배경의 이해를 돕는 멘트를 들려주면서도 관객의 몰입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등장인물간의 쓸데없는 긴장을 유발한다.(그리고 사실 처음에 긴장이 유발된 관계는 시간이 지날수록 친밀감이 싹튼다는 고전을 따른다) 거기에 틈틈이 등장인물들의 '의외의 행동'을 통하여 '대체 쟤가 뭘 하는건가?'하는 의문을 물고 지켜보게 만들지만, 그 예상밖의 행동 역시 등장인물의 성격을 이해할 수 있는 범주 안이므로 관객들의 동조가 가능하다. 그리고 이 영화의 최고 압권, 관객이 마치 영화 속에 존재하고 있는 듯한 화면만이 안길수 있는 스펙터클한 영상의 향연 속에서 관객도 배경이나 인물을 잊고 잠시 즐거운 휴식을 취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 모든 요소를 조합한 영화 중에서도 졸작은 존재한다. 게다가 고전적인 요소들의 조합은 쉽게 예상가능하다는 점에서 지루해지기 쉽다는 약점까지 있다. 제임스 카메론의 아바타가 괜찮은 작품이라 생각되는 이유는 클래식한 요소들을 이용했어도 가장 현대적인 작품을 만들었다는 점이며 결국 대작이라 여겨질 작품은 기본기에 충실해야 한다는 점을 상기시키기 때문이다. 화면에 신경쓰느라 스토리가 부족했다는 엉성한 변명은 거장의 작품에선 통하지 않는다. 탄탄한 스토리와 치밀한 구성을 할 수 없으면 그 어떤 양념이 첨가되더라도 대작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제임스 카메론은 아주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 3시간이 시간가는 줄 모르고 볼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3시간이 훨씬 넘을 수 있는 분량의 스토리를 매우 효율적으로 압축했기 때문이다.

 

 

아바타가 전 세계적인 호응을 얻고 있는 이유는 동양적 요소와 서양적 요소를 적절하게 조합했기 때문인것 같다. 영혼을 느끼고 지배보다는 교감을 중시하며 자연친화적인 메시지는 동양적인 메시지다(동). '내가 원하는 것을 가지고 있으면 적'이 되는 이분법으로 상대를 파괴하고 지배하려는 야욕은 근대 자본주의 열강을 발생시킨 서양적 논리다(서). 하늘을 떠다니는 섬이나 원주민과 현대인의 대립, 자연과 함께 살라는 교훈적인 메시지는 일본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에 흔히 등장하는 패턴이다(동). 아바타에 등장하는 원시 우림이나 원주민 나비족들은 아마존 열대 우림과 신대륙의 토착세력이던 인디언의 모습이다(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메시지와 더불어 이런 요소들의 조합이 한 문화권을 뛰어넘어 전세계적인 호응을 얻게 만들지 않았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