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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의 선물

gowooni1 2010. 7. 6. 20:04

 

 

 

과거에는 자폐아라는 개념 속에서 결코 천재성을 발견할 수 없었다. 대개 사회성이 극도로 결핍된 자폐아들은 두뇌 발달이 멈췄거나 저하되었기 때문에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 힘들다고 여겨졌다. 하지만 요즘은 사정이 좀 달라져서, 자폐아들이 무조건 바보를 뜻한다고 말하기는 어렵게 됐다. 서번트 증후군. 다른 것들에서는 평균 이하지만 어떤 특수 분야에서는 천부적인 재능을 보이는 자폐증을 말하는 것이다.

 

한 번 들은 곡이라면 무조건 연주해 내는 피아노 천재, 10자리 이상의 소수(1과 그 숫자 외에는 나눠지지 않는 수)를 직감으로 알아 맞추거나 원주율을 2만 자리 이상 계산해 내는 숫자 천재, 한번 본 장면을 마치 사진처럼 기억해 내는 시각적 영상의 천재. 이런 천재들은 다른 부분들은 그 어떤 것도 제대로 해내는 것이 없음에도 유독 그 분야에서만 천재성을 발휘하는데, 이미 언론에서도 많이 다뤘기 때문에 그리 생소하지만은 않다. 모차르트는 엄마가 죽었어도 눈물 한방울 흘리지 않고 항상 하던 작곡을 했고, 아인슈타인도 저학년때는 저능아 취급을 받았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다.

 

현존하는 세계 100대 천재 중 한명, 그것도 서번트 증후군 환자로 알려져 있는 숫자 천재는 '뇌의 선물'에서 자신의 천재성이라는 것은 사실 그렇게 대단한 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무언가를 좋아하는 사람이 그것에 대해서만 몰입하고 생각을 하듯, 숫자를 좋아하는 숫자 서번트들 역시 항상 숫자와 그 연관성들만 생각하기 때문에 남들이 봤을 때 천부적이라고 느껴지는 능력이 사실은 좋아해서 반복한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과거 사람들은 천재성이라는 것이 뇌의 크기, 즉 용량과 관계가 되었다고 믿었다. 이 가설은 얼핏하면 그럴듯하게 여겨진다. 오스트랄로 피테쿠스보다 호모 사피엔스의 뇌 용량은 3배 이상 크고, 다른 영장류보다도 신체 대비 큰 두뇌는 인간을 신세기의 신으로 만들어 놓았다. 하지만 이런 어설픈 가설은 엄청난 인류의 비극을 낳았다. 백인종보다 평균적 두뇌 용량이 작았던 흑인종들은 백인의 노예로 전락하는데 매우 타당한 근거까지 제시해 준 것이었다.

 

물론 이 가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오류임이 밝혀졌다. 천재 시인 바이런은 보통 사람보다 1.5배가 넘는 뇌 용량을 가지고 있었지만 또 다른 천재 작가의 뇌는 오히려 보통 사람보다 30%나 작았고, 그 외에도 용량과 천재성은 별 상관없다는 과학적 결과가 속속 등장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천재들의 두뇌가 범인들의 두뇌와 무엇이 다른가를 찾아내는 데 다른 식의 접근을 가능한 한 많이 해봐야 했다.

 

이 때문에 이 현존하는 세계 100대 천재이자 서번트 신드롬의 저자가 말하는 자신의 뇌에 대한 설명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후천적 훈련과 사회화 과정 속에서 어렸을 때 겪었던 서번트 신드롬은 많이 줄고, 사회성이 더 발달하여 각종 저서를 내고 왕성한 사회 활동을 하는 저자이지만 그는 아직도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고 한다. 즉, 무엇을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서번트 신드롬이냐 아니냐는, 물론 다른 병들도 마찬가지지만,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정상의 범주에 얼마나 발을 걸쳐놓을 수 있느냐가 관건이며, 타인이 허용할 수 있는 최소한의 범위는 인정받았을 때 겨우 병자가 아니게 되는 것 뿐이다.

 

보통 사람들은 왕성한 두뇌 뉴런의 연결이 성장하면서 점점 축소가 된다. 쓸데 없는 부분에 대한 연결은 약해지고 대신 필요한 부분의 연결이 집중적으로 강화되기 시작한다. 그런 과정들을 통해 사람들은 정상인이 된다. 하지만 저자는 자신이 여전히 쓸모 없는 부분의 연결이 왕성함이 느껴진다고 한다. 지나치게 왕성한 두뇌 뉴런의 활동이 자신을 정상인의 범주에서 벗어나게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훈련을 통해서 충분히 정상인이 될 수 있단다.

 

그럼 여기서 궁금해진다. 천재성을 결정하는 것이 두뇌의 크기도 아니고, 왕성한 뉴런의 활동도 아니면 과연 무엇인지. 그는 한가지에 끌리는 정도가 사람의 재능과 천재성을 결정한다고 말한다. 무엇가에 푹 빠질 수 있는 것. 그것은 아무리 왕성하게 연결된 두뇌를 가지고 있다 해도 '끌림'이 없으면 별 소용이 없다는 뜻이다. 저자가 표현한 '끌림'의 또 다른 표현이 상당히 마음에 든다. '영혼의 깊이'가 바로 재능을 결정하는 가장 중대한 요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