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중독-Reading/문학*문사철300

운명의 딸

gowooni1 2010. 5. 26. 20:58

 

 

 

운명의 딸. 1

저자 이사벨 아옌데  역자 권미선  원저자 Allende, Isabel  
출판사 민음사   발간일 2007.12.14
책소개 영혼의 집의 작가, 이사벨 아옌데의 장편소설. 19세기 중엽 골드러시를 배경으로, 황금 열풍에 사로...

 

'백 년 동안의 고독'으로 유명한 가르시아 마르케스와 더불어 라틴 아메리카 문학을 대표하는 현시대의 아이콘이 한 명 더 있다. 첫 소설 '영혼의 집'으로 일약 세계 작가 반열에 오른 이사벨 아옌데가 그 주인공인데, 그녀는 작가 이전에 몰락 정권의 피해자 중 한 명이었다. 칠레 출신인 그녀는 성에서 보이듯 세계 최초 민주적 선거를 통한 마르크스 대통령 살바토레 아옌데 대통령의 조카였는데, 피노체트의 쿠데타로 삼촌이 죽고 공산당이 실각되자 그녀는 베네수엘라로 망명한다.

 

이사벨 아옌데(1942~)

 

라틴 아메리카의 대부분의 나라들이 그러하듯 칠레 역시 스페인의 식민지였다. 이사벨 아옌데의 작품 역시 스페인어로 쓰였는데 그녀에게 있어 스페인어는 영어로는 감히 표현하지 못할-가령 사랑이라든지-것을 표출하게 해주는 도구라고 한다. 만약 그녀가 스페인어가 아닌 영어로 작품을 썼다면, 그녀 스스로도 자신의 작품이 우스웠을(ridiculous) 거란다. 조국에서 편히 살지 못해 여러 나라를 전전했어도 그녀에게 칠레는 자신의 정신적 기반을 세워준 곳이며 그녀 문학의 근본인 나라다.

 

'운명의 딸'은 비교적 최근 작품이다(1999). 마술적 리얼리즘이니 뭐니 하는 그녀의 작품에 대한 사전적 지식이 전혀 없어도, 그리고 그녀의 이전 작품을 한 번 읽지 않았다 하더라도, 운명의 딸이 자아내는 라틴 아메리카 작품 특유의 환상적이고 이국적인 분위기에 몰입되지 않을 수가 없다. 아옌데는 작품 속에서 이국적 분위기가 풍기는 마법 같은 흡입력을 누구보다 잘 인지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운명의 딸에는 지구의 극과 극인 곳에서 태어난 두 사람이 함께 등장하여 이 쪽과 가까운 사람에게나 저 쪽에 가까운 사람에게나 모두 막연한 동경의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

 

우리 기준으로 저 쪽에 가까운 사람인 주인공 엘리사는, 칠레 인디오의 피를 가진 부모에게서 태어나자 마자 버려진 여자 아이다. 하지만 운명은 그녀를 길거리에서 죽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그녀를 낳은 친부모는 그녀가 제대로 된 밥이라도 먹고 자랄 수 있도록 그나마 부유한 외국인 거주지의 영국인 저택 앞에 낡은 비누 상자에 담아 버렸다. 그리고 마침 그 저택의 주인 중 한 명인 미스 로즈는 아이가 가지고 싶어 미칠 지경인 스무 살의 영국 귀족 여성이었다. 그리하여 길거리의 사생아로 거칠게 살다 짧은 생을 마감했을 엘리사는 영국식 최고급 교육을 받으며 요조 숙녀로 자란다.

 

한편 이 쪽에 가까운 사람인 또 다른 주인공 타오 치엔은 광둥성에서도 걸어서 한 나절 반이나 가야 하는 깡촌 출신이다. 시골 떠돌이 의사의 넷째 아들로 태어난 그는 인간의 목숨에 별 가치를 두지 않던 가난한 중국인 부모를 두어서 열 살이 넘도록 제대로 된 이름조차 같지 못했지만, 항상 호기심 많고 웃음을 잃지 않는 소년이었다. 떠돌이 의사인 아버지 덕택에 약초와 민간 요법에 대한 지식을 풍부하게 터득했다. 그러나 그의 막내 여동생이 두 살 때 끓는 물에 뒤집어 쓰여 죽고 그 충격으로 어머니마저 죽자, 자신을 부양할 둘째와 셋째 아들로만 충분했던 그의 아버지는 넷째 아들을 유랑 상인들에게 10년 노예로 팔아 넘긴다.

 

이 칠레 여자와 중국 남자가 만나게 되는 것은 다름 아닌 엘리사의 남자 호아킨 때문이다. 캘리포니아 금광 열풍에 휩쓸려 호아킨은 사랑하는 엘리사를 남겨 두고 떠나지만 이미 그녀의 뱃속에는 새 생명이 자리잡고 있었다. 하지만 영국식 요조 숙녀로 자란 엘리사가 이 사실을 공포하면 그녀는 지금껏 자신을 돌봐준 모두를 배신하는 것이기 때문에, 차라리 그 가족의 명예만이라도 지켜줄 겸 자신의 하나뿐인 애인도 찾을 겸 가출을 하기로 한다. 마침 발파라이소에 들어와 계약 기간이 종료되어 자유인이 되었던 티오 치엔에게 그녀는 자신을 캘리포니아로 향하는 범선에 밀입시켜 달라고 부탁하고, 그렇게 그들의 인생이 겹치게 된다.

 

현재 67세인 작가는 미국인과 결혼,

캘리포니아에 거주 중이다

 

지구의 극과 극인 칠레와 중국을, 그것도 백 년도 더 전인 두 나라의 상황을 기가 막히게 잘 그녀낸 아옌데의 역량에 그저 감탄할 뿐이다. 1800년대 중반의 칠레와 중국 사회를 엘리사 소머스와 타오 치엔 두 영혼, 그리고 그 주변 인물들을 통해 그린 운명의 딸 속에는 태생적 핸디캡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한 작가의 의도보다 시대적 세계 정황을 제대로 묘사해 낸 작가의 능력이 훨씬 흥미롭다. 운명의 딸 안에는 그 시대 세계가 돌아가는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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