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중독-Reading/문학*문사철300

매일 떠나는 남자

gowooni1 2010. 4. 25. 00:38

 

 

 

매일 떠나는 남자

저자 로랑 그라프  역자 양영란  
출판사 현대문학   발간일 2005.08.12
책소개 『행복한 나날』의 작가 로랑 그라프의 네번째 장편소설. 어디론가 떠나고자 하지만 아무 곳으로도 떠나...

 

이것만 다 하면 저것을 하겠다는 생각은, 다들 하는 생각이니만큼 평범해 보인다. 모두 이것만 마치면 저것을 하겠다는 생각으로 살고 있고 또 사실 저것보다는 이게 지금 당장 더 중요할 수도 있기 때문에, 이 생각의 패턴이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여기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하지만 이 안이한 생각이 사실은 얼마나 무섭고 섬뜩한지 아무도 모른다.

 

이 세상에서 가장 우울한 도시 캉에 사는 서른 일곱살의 남자 파트릭은 평범한 남자다. 다른 사람들처럼 돈을 모아서 차를 사고, 집을 사고, 결혼을 해야지, 하는 평범한 인간으로서의 생활을 원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좀 독특하지만, 그것만 빼고는 평범하다. 카지노 경호원으로 일하고, 매트릭스에 짐 몇가지만 있는 작은 원룸에서 사는 파트릭에게 있어 계획된 미래는 오직 하나다. 이 도시를 떠나는 것. 문제는 어디로 떠날지 구체적인 계획이 없다는 거다.

 

그래서 파트릭은 여행을 떠날 계획을 세운다. 말라리아 위험이 있는 지역을 여행할지도 모르므로 각종 예방주사를 맞고, 빨간 트렁크를 사고, 여행 책과 다목적 칼도 구입한다. 언제 떠날지 모르므로 집에 살림은 최소화 되어야 한다. 집에는 매트릭스 하나와 옷가지 몇 개 뿐. 그의 직장 캐비닛에는 늘 사직서가 구비되어 있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퇴직하고 긴 여행을 갈 수 있다. 그의 목적은 긴 여행이 아니라 아주 떠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긴 준비기간이 필요하고, 그래서 파트릭은 항상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하는 중이다.

 

그런 파트릭에게 사람들은 이렇게 인사한다. '헤이, 파트릭. 언제 떠날거야? 아직도 계획을 조율중인가?' 또 다른 사람은 파트릭을 이렇게 평한다. '저 사람은 평생 캉에서 살다 죽을 사람이야.' 항상 떠나고자 하는 파트릭에겐 좀 더 완벽한 여행자금이 필요하기 때문에 당장 카지노를 그만 둘 수도 없다. 그는 대신 일상 속에서 작은 여행을 떠난다. 수영을 다니면서, 이웃 남자의 아내와 사랑을 나누면서, 그리고 또 다른 여행 계획을 세우면서.

 

그러는 사이에 시간이 흘러 파트릭의 신변에도 여러 변화가 생긴다. 외로운 옆집 남자는 결혼을 해서 처자식과 함께 이사를 가고 카지노의 운영자도 몇 번 바뀐다. 그가 사랑을 나누던 이웃 남자의 아내도 아이를 낳고 다른 곳으로 떠나버리고 결국 파트릭은 혼자 남게 된다. 그 사이 파트릭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다면 그건 사직서의 맨 꼭대기 이름을 몇번 바꾼 것과 그 역시 은퇴를 한 것, 그리고 그 사이 40년의 시간이 흘렀다는 것이다.

 

결국 파트릭은 이웃 사람들의 예상대로 캉의 에스페랑스 호텔 방 11호에서 죽는다. 평생 떠나기 위해 모아두었던 돈은 자신이 평생 일했던 카지노에서 (단지 자신이 11호에 머물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11에 올인하고, 언제나 같은 하루를 영위하다가 죽었다. 그에게 떠나겠다는 생각은 오늘 하루를 더 연장시켜주는 훌륭한 희망이었을지 모르나 그가 정작 떠난건 이 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이었다.

 

아무것도 세상에 남긴 것이 없어보이는 파트릭도 남긴 게 하나 있었는데, 그건 바로 이웃 남자의 아내와 파트릭 사이에 생겼던 아들. 그리고 그 아들이 마지막 파트릭의 소원을 들어준다. 달로 연구여행을 떠나는 아들은 그의 유해를 가지고 달로 가서 뿌려주었고, 평생 떠나겠다던 파트릭의 목적은 지구보다 더 먼 곳에 종착함으로써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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