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중독-Reading/문학*문사철300

모래의 여자

gowooni1 2010. 6. 19. 22:38

 

 

 

모래의 여자(세계문학전집 55)

저자 아베 코보  역자 김난주  원저자 安部公房  
출판사 민음사   발간일 2001.11.10
책소개 요미우리 문학상, 프랑스 최우수 외국문학상 수상작. 곤충 채집을 하러 떠났다가 여자 혼자 사는 모래...

 

곤충 채집이 유일한 낙인 서른 한 살의 남자가 어느 날 갑자기 실종되었다. 남자는 조금 외곬이었지만 학교 선생이라는 어엿한 직업도 가지고 있었고 인간 관계도 원만했으며 우울증 같은 기미도 전연 보이지 않았으므로 사람들은 그의 실종에 대해 딱히 이유를 대기 힘들었다. 납치라고 하기도 자살이라고 하기도 사고라고 하기에도 근거가 부족했다. 결정적인 증거인 그의 시신이 절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의 실종을 단순 실종으로 처리할 수밖에 없었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난 후 남자는 사회적으로 '사망'으로 인정되었다.

 

남자는 자신의 존재 이유를 다른 사람보다 깊이 탐색했고 또 그걸 스스로 증명해 보이고자 노력하는 부류의 사람이었다. 학교 선생이라는, 자유를 찬양하되 자유로운 삶을 살아서는 안 되는 직업을 가진 그는 곤충 채집이라는 자신의 취미 속에서 그 존재의 이유를 찾아내고자 했다. 인간 사회에서 자신의 이름을 남겨보고 싶었던 그는 이 세상에 아직 밝혀지지 않은 곤충을 채집하여 학계에 올리면 자신의 이름이 그 곤충과 함께 반영구적으로 남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곤충 채집을 떠난 것이었다. 흔하지 않은 곤충은 생명체가 존재하기 힘든 곳일수록 더 존재 가능성이 큰 법이었다. 그래서 그는 온통 모래로 뒤덮인 '그 마을'에 이르게 되었다.

 

그 마을에서 남자는 한 여자가 살고 있는 모래 구덩이 속의 집에 갇히게 된다. 엄밀히 말하자면 납치에 감금이지만 자신들만의 룰로 지배되고 있는 '그 마을'에서 남자의 절규는 통하지 않는다. 그 곳 생활에 적응해 살아갈 것인지 아니면 그냥 죽든지 선택은 남자의 몫이다. 게다가 남자가 그 모래 구덩이에 갇히게 된 것이 합법적이든 아니든 사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더 중요한 건 남자와 함께 살게 된 모래의 여자다.

 

여자는 매일 자신의 구덩이로 흘러 들어오는 모래를 파 낸다. 쉴 새 없이 밀려 들어오는 모래를 파내지 않으면 집이 파묻혀 버리기 때문이다. 여자는 오로지 모래를 파 내기 위해서만 존재한다. 여자만 그러한 것이 아니다. 그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이 그러하다. 그들은 모두 자기만의 깊숙한 구덩이를 가지고 있고 매일 밤 모래를 파내면서 산다. 아무 생각도 없이 기계적인 반복 동작으로만 가능한 그 일을 하기 위해 사는 사람들을 보고 남자는 외친다. 그런 일이라면 원숭이를 데려다 시켜도 할 수 있을 거라고, 자신은 인간으로서 보다 보람있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말이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그런 자신들의 삶의 방식에 합당한 이유를 갖다 붙였다. 이건 애향 정신으로, 자신들이 이 일을 하지 않으면 마을은 없어질 것이라는 것이다. 오직 모래만을 파내기 위해 사는 삶은 나아가 자신들의 고장을 유지하기 위한 삶이고 오직 그것만이 존재 이유다. 모래를 파냄으로서 마을을 지키면 마을 조합에서 각 구덩이에 물과 음식 등 생활 필수품을 공급해준다. 그들에게 모래를 파내는 것은 생계를 유지하는 수단이기까지 하다. 물론 남자는 이해를 하지 못한다. 마을을 떠나라고 다그치는 남자에게 여자는 되묻는다. 떠나서 무엇을 하나요? 걸어봐야지. 이미 실컷 걸어봤는 걸요. 걸을 자유를 가지라는 남자 앞에 있는 여자는 더 이상 걷지 않을 자유를 얻고자 했던 인간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모래만 계속 파내는 '그 마을' 사람들의 모습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우리 인간의 모습과 오버랩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더 이상 걷지 않을 자유를 원하며 그저 목숨을 유지하기 위한 삶을 원하는지, 순간적으로 제공되는 달콤한 꿀과 아무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에 얽매여 인간적인 삶을 포기하고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다소 섬뜩하다. 끊임없이 탈출을 시도하다가 겨우 자유가 주어졌을 때 제 스스로 구덩이에 돌아가는 남자의 마지막 모습에서처럼, 우리는 결국 모래를 파내는 것에서 실존의 이유를 찾아내고 마는 건 아닌지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문자중독-Reading > 문학*문사철300'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안녕, 언젠가(사요나라, 이츠카)  (0) 2010.06.26
순수 박물관 - 오르한 파묵  (0) 2010.06.23
운명의 딸  (0) 2010.05.26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0) 2010.05.01
매일 떠나는 남자  (0) 2010.0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