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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루다의 우편배달부

gowooni1 2010. 5. 1. 00:30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세계문학전집 104)

저자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역자 우석균  
출판사 민음사   발간일 2004.07.05
책소개 칠레의 국민 시인 네루다를 통해 문학의 진실과 감동, 시의 본질을 일깨워 주는 소설. 파블로 네루다...

 

안토니오 스카르메타는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를 통해 '이 세계에서 자기 자신만의 시적인 언어를 가진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고 싶다'고 했는데, 그랬다면 그의 의도는 대성공했다. 문장마다 압축되어 있는 스카르메타만의 언어 놀이는 그만의 유머, 풍자, 해학, 에로스, 긍정 등을 유감 없이 보여주고 있어, 길지 않은 작품의 분위기에서 가능한 한 늦게 벗어나기 위해 고의적으로 읽는 속도를 늦추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도 모자라 작품의 분위기가 자아내는 유쾌한 행복감의 정체가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보게 만들었으니 작품보다 작가가 더 매력적이다. 그 분위기는 단순한 명랑함이, 절묘하게 묘사되어 있는 메타포 넘치는 에로틱함이, 시대적 우울함이, 우울함 속에서도 보이는 일상의 행복이 한데 어우러져야 우러날 수 있는 것으로, 가벼우면서도 결코 가볍지만은 않고 무거우면서도 아주 무겁지도 않다. 극적으로 보이는 두 요소를 한가지로 뒤섞은 그의 문장 전면에서 발견되는 전술 중 하나는 천박함을 고품격으로 교묘하게 위장시킬 수 있는 유일한 것, '메타포'다.

 

칠레는 1970년 세계 역사상 처음으로 국민 투표로 인해 공산당이 집권한 나라다. 공산당과 민주당이 한 국가 내에 존속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분단국가 국민의 입장에선 충분히 놀라운데 공산당 집권이란 결과가 국민적 일치에서 나온 결과였다니, 아마 칠레의 공산주의자들은 진정으로 만인의 평등을 위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칠레에서도 역사는 공산당을 외면했고, 1973년 민주당 피노체트의 쿠데타에 의해 공산당은 붕괴되었다. 여기서부터는 우리와 비슷하다. 민주주의이라는 허울을 쓰고 아옌데(공산당이던) 대통령을 죽인후 권력을 잡은 피노체트는 이후 17년간 지독한 독재를 했으니, 대한민국 3,4공화국 대통령의 20년 가까운 독재와 이미지가 겹친다.

 

이야기는 이즈음, 공산당이 집권하기 직전에서 시작된다. 칠레의 국민적 시인이던 파블로 네루다는 태평양이 맞닿은 바닷가 마을 이슬라 네그라에 집 한채를 지어 놓고 거주하며 시인으로서의 삶을 만끽하곤 했다. 이슬라 네그라에 살던 많은 남자들이 그러하듯 그들의 생계수단은 고기잡이였다. 그러나 마리오만은 조금 달랐다. 그는 파블로 네루다 전용 우체부였던 것이다. 시인에 대해 그가 가지고 있는 경외감은 거의 신에 대한 것과 맞먹을 정도여서, 그는 네루다만의 우편 배달부라는 것에 자부심을 느꼈다. 네루다가 고작 하찮은 우편 배달부에게 관심을 보일리 만무 하더라도 그는 언젠가 시인과 한번 대화를 해볼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에 매일 아침 기쁘게 그의 집을 방문한다.

 

시인과 친구가 되고 싶은 마리오는 시라고는 전혀 모르던 남자였지만 네루다의 사인을 받아놓기 위해, 그리고 주변 여자들에게 있는 척 좀 해보기 위해 그의 시집을 구입했고, 그러는 사이에 (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맙소사! 그의 시를 전부 외워버리는 사태가 발생했다. 그렇게 시라고는, 메타포라고는 아무것도 모르던 맹문이 마리오는 시적 감수성에 대해 조금씩 눈을 뜨게 된다.

 

그러다 기회는 왔다. 국민 시인이자 마리오의 절대 우상이던 네루다는 시인에게 말 붙일 곁을 주기 시작한 것이다. 마리오는 그 영광적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에게 시에 대한 여러 말을 붙이기 시작했을뿐더러, 그와 한 마디라도 더 하기 위해 일부러 우편물을 두번씩 배달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시인에게 시에 대해 알려달라고 하여 적당한 대답을 해준 시인에게 마리오는 이렇게 되묻는다. 아니 그럼 선생님은 이 세상 모든 것이 무언가의 메타포라고 생각하세요?

 

처음의 마리오는 얼간이, 숙맥인 스무살의 어린 남자에 지나지 않았으나 메타포의 세계에 빠진 이후로는 사정이 달라진다. 그는 모든 것을 모든 것에 대입할 줄 알게 되었고 세상을 깨어있는 눈으로 보게 되었으며 사랑에 빠지게 되었고, 또 그 사랑을 쟁취할 줄 알게 되었다. 마리오는 시인으로부터 얻게 된 유일한 무기인 메타포로 시내 주점의 열일곱 살 젊고 아름다운 처녀 베아트리스의 마음을 빼앗았고, 시인의 여러 도움으로 결혼에까지 골인하게 되었다.

 

그러는 사이 세상은 부지런히 변하고 있었고, 그 세상은 국민 시인 파블로 네루다가 단순한 시인으로 머물기만을 바라지 않았다. 그와 그의 시에 대한 국민적 지지, 또 그 자신의 독특한 정치적 행보는 그를 항상 정치판으로 끌어들였다. 공산주의자이기도 한 네루다는 1970년 아옌데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공산당이 집권하자 파리 대사로 임명된다. 그것은 시인이 유일하게 마음의 안식을 얻을 수 있던 영원한 정신적 고향 이슬라 네그라와의 짧지만 긴 이별을 고할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동시에 마리오에게도 정신적 지주를 잃은 공허감에 휩싸이게 만든다.

 

놀랍게도 마리오의 정신적 공허를 채워준 건, 시인이 그에게 남기고 간 시적 감수성과 메타포였다. 그는 자신만의 언어로 시를 쓰기 시작한다. 어부들밖에 없는 마을의 남자들이 그런 마리오를 보고 네루다의 빈자리를 그가 채우려고 한다고 놀렸지만 그는 그래도 시를 쓴다. 이슬라 네그라의 자연을 돌아다니며 시적인 언어를 찾고,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면서도 메타포를 구현하고, 베아트리스와 사랑을 나누면서 끊임없는 영감을 얻는다.

 

 

시인이자, 이 소설의 등장인물

파블로 네루다(1904-1973)

 

생활의 모든 것에서 자신만의 언어를 찾아가던 마리오에게 파리에서 소포가 하나 온다. 파리 대사로 프랑스에 가 있는 시인으로부터 온 작은 선물은 일제 소니 녹음기였다. 시인은 마리오만이 할 수 있는 특별한 부탁을 하나 한다. 너무 큰 옷과 같은 파리에서 이슬라 네그라를 한없이 그리워하던 시인은 그에게 이슬라 네그라의 모든 소리들을 전부 녹음해서 보내 달라고 부탁을 했던 것이다. 자신의 집 주변에서 들려 오는 모든 소리, 언제든 규칙적으로 부서지는 파도 소리, 그의 집 주변을 늘 맴돌던 바람 소리, 갈매기 소리, 종 소리를 시인은 애타게 그리워했다. 마리오는 충실하게 그 소리들을 녹음했고 마지막으로 한가지 선물을 더 첨부했다. 마리오와 베아트리스 사이에서 태어난 파블로 네프탈리 히메네스 곤살레스군의 우렁찬 울음 소리.(파블로는 시인의 필명이고, 네프탈리는 시인의 본명이었다)

 

시인의 파리 생활은 그리 길지 않았다. 공산당은 무너지고, 쿠데타를 일으킨 피노체트는 대통령 궁을 점령함과 동시에 많은 사람들을 학살하여 국민들을 공포의 분위기로 몰아 넣는다. 그 와중에 병이 든 네루다는 이슬라 네그라의 집에 '죽으러' 돌아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죽는다. 그의 마지막 꺼져가는 눈을 바라보며 죽지 마세요 선생님,이라 외치던 마리오의 목소리는 별반 소용이 없었다. 그의 장례식은 정권을 장악한 독재자의 엄명으로 참가는 물론 우는 것조차 허가되지 않았지만 국민들은 군대들의 반짝이는 총대에 아랑곳하지 않고 묵묵하게 시인의 장례행렬을 따르며 최초로 피노체트에게 저항을 하였다. 네루다는 비록 죽었어도 마지막까지 민중을 위한 사회를 건설하려 했던 자신의 정신을 민초들에게 당기는 것을 잊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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