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중독-Reading/문학*문사철300

길 위에서[On the Road]

gowooni1 2010. 4. 3. 00:50

 

 

 

길 위에서. 1

저자 잭 케루악  역자 이만식  원저자 Kerouac, Jack  
출판사 민음사   발간일 2009.10.23
책소개 길 위에 펼쳐지는 자유로운 청춘들의 초상! 비트 문학의 선구자인 잭 케루악의 소설『길 위에서』제1...

 

잭 케루악은 '길 위에서[On the Road]' 작품 하나를 통해 일약 대 스타작가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는데, 그런 겉보기 화려한 명성 뒤에는 흔히 그렇듯 반전적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그는 이 작품을 각성제와 커피에 의존하여 잠도 자지 않고 불과 삼주 만에 완성하지만 정작 출판해 주겠다는 곳이 하나 없어 7년 동안이나 세상에 내놓지 못했다. 이미 7년 전에 써 그 자신은 작품의 가치를 생각해 볼 생각조차 하지 못하던 때에 갑자기 비트 세대의 상징이니 현 미국 젊은이들을 가장 잘 그려낸 작가라니 하며 여기저기서 떠받들어주니 그 자신도 당황스러웠을 거다. 하지만 한 인터뷰에서 명성을 좋아하느냐는 물음에 '그건 거리 바닥에 쓸려 다니는 날짜 지난 신문 조각과 같다'는 대답을 한 걸 보면 당황스럽긴 했어도 태연했던 모양이다.

 

잭 케루악(Jack Kerouac, 1922~1969)

 

자전적 소설이라고 말하기도 좀 그런 '길 위에서'는 거의 잭 케루악 본인과 그를 길로 이끈 친구 닐 캐시디가 미국을 열심히 횡단하며 겪은 이야기를, 사실 그대로 술술 말하듯 풀어나간 소설이다. 그가 출판을 거절당한 이유 중 하나도 실명이 그대로 반영되었기 때문이라던데, 그가 나중에 소설을 얼마나 고쳤는지는 모르겠지만 잭 케루악 본인은 '샐 파라다이스'로, 그의 길 친구 닐 캐시디는 '딘 모리아티'로, 기타 다른 인물들도 실명과 살짝 스펠을 바꿔치기 하는 식으로 해 현실과 약간의 거리를 두었다. 하지만 대개의 사건은 길 위에서 있었던 사건이고 시간적 순서도 그렇다. 케루악은 몇년 전에 있었던 1시간 분량의 이야기도 생생하게 재현해 낼 수 있는 놀라운 기억력을 가지고 있었고 그 능력을 자신의 소설에 잘 써먹었다.

 

운전, 여자, 두서도 없고 결론도 없이 몇 시간 동안 줄창 떠들어대기. 이것이 샐 파라다이스를 길로 내몬 친구 딘 모리아티의 인생을 구성하는 주요소다. 길에서 태어난 딘은 이미 스무살도 되기 전 몇백 건이나 되는 자동차 절도죄로 소년원과 감방을 전전하며 살았지만 그 누구보다 자유분방한 영혼을 가졌다. 자유분방함이 도를 훨씬 넘어 일반인들의 상식으로 미쳤다고 판단될 수밖에 없는 딘은 그 엄청난 삶에 대한 열정을 여자, 여행, 말하기로 푼다. 감옥에 있을 때 철학자가 되기로 결심한 그는 밤새도록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나름의 논리를 들어 말할줄도 알지만 정작 실속은 하나 없다. 미래에 대한 계획이나 야망 없이 삶에 대한 열정으로만 가득한 딘은 카르페 디엠을 외치며 지금 당장 하고 싶은 것들만을, 지금 당장 누릴 수 있는 쾌락만을 그 누구보다 한껏 누린다.

 

이혼의 아픔을 글쓰기로 치유하던 샐은 딘의 걷잡을 수 없는 영혼의 무게에 이끌려 그가 살아온 삶의 방식에 휩쓸린다. 그는 고작 몇십 달러를 손에 들고 히치 하이크를 하며 뉴욕에서 샌프란시스코로 대륙 횡단을 감행한다. 그가 가는 여정 속에는 딘을 만나야겠다는 일념으로 가득하다. 솔트레이크 시티(서부와 가까운)에 있는 딘을 만나기 위한 샐의 여정을 쫓아가다 보면 어느새 66번 도로 한가운데를 달리고 있는 이미지에 빠져든다. 돈이 별로 없는 샐,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술 한잔을 포기하지는 않는 샐, 그러다가 마음에 드는 여자가 있으면 마지막 돈까지 탈탈 터는 샐, 아무 것도 없어도 어떻게든 길 위로 흘러가는 샐이 보인다. 그리고 그런 자유로운 영혼의 잭 케루악이 보인다.

 

 

 2001년 5월 22일 미식축구 구단주 제임스 이스레이에게

243만 달러에 낙찰된 '길 위에서' 친필 원고

(친필 원고 사상 최고 가격)

 

엄청난 속도와 엄청난 몰입도로 재빠르게 타자기를 두드리며 단숨에 집필해 나가던 케루악의 집필 방식은 그의 건강을 좀 먹게 만들었지만, 그 끊어지지 않는 집필 스타일과 즉흥적이면서도 간결한 문체가 매끄럽게 조화된다. 작품 자체의 서사가 엄청난 속도로 진행되는데도 도저히 끝이 보일것 같지 않는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샐이 겪었던 길 위에서의 것들이, 그 문체의 가벼움과는 대조적으로 문장에 진하게 농축되었다는 기분이 든다. 그는 실제로 집필 중 타자기에 종이를 갈아 끼워야 하는 번거로움이 짜증나서 몇 미터 짜리 종이를 테이프로 길게 붙여 40미터로 만들어 연속적으로 쓸 수 있도록 했는데, 그가 쉼도 단락도 없이 써내려 간 '길 위에서'는 36미터를 넘는 한 단락의 글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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