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중독-Reading/문학*문사철300

4월의 물고기

gowooni1 2010. 3. 27. 21:39

 

 

 

4월의 물고기

저자 권지예  
출판사 자음과모음   발간일 2010.01.12
책소개 운명이었던 사랑이 흔들리기 시작하다! 사랑에 감춰진 진실을 파헤치는 미스터리한 이야기『4월의 물고...

 

겉만 번지르르하게 장식된 문장과 현실감 없는 대화체, 비현실성으로 뜬구름 위를 걷는 듯한 느낌을 주다가도 갑자기 등장하는 지나치게 속세적인 단어들. 현실과 동떨어져 지나치게 자신만의 세계 속에 빠져있는 작가들이 보여줄 수 있는 한계가 여실히 드러나는가 싶은데다 통속 소설 중에서도 가장 별 볼일 없는 로맨스 소설이라 으레 짐작하며 시시하게 책장을 넘기고 있다보면 어느새 새롭게 등장하는 충격적 소재들이 서스펜스한 분위기를 조성해 작품의 흐름에 독자를 몰입시킨다. 시시한 듯 한데 끝까지 읽게 만드는 그 힘이 작품의 분위기만큼 묘하다.

 

4월의 물고기를 어느 장르에 소속시키려 한다면 이는 이도 저도 아닌 소설이 될 것이다. 연애소설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유치하며 등장인물들의 감정에 전혀 이입이 되지 않고 미스터리 추리물이라고 하기도 몇십 프로 부족한 감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정신이상자, 성폭행 희생자 등 사회적 약자의 처지를 대변하기 위해 작가가 작정하고 쓴 것은 더더욱 아닌 것 같다. 그저 예쁜 단어들을 엮어 현실에 지친 독자들의 마음을 정화시켜 주는 작품도 아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이 작품이 하나 확실하게 가지고 있는 것이 있다면 흡입력일 뿐. 다 읽고 나서도 뿌듯하다거나 마음이 꽉 찬 느낌이라거나 하는 포만감이 없는데 이 작품의 미덕을 하나 꼽으라면 킬링 타임용 소설이라는 것 정도다.

 

작품의 전체적인 긴장을 이끌어 나가는 것은 두 남녀 주인공 서인과 선우의 묘한 심리적 갈등이라기보다는 그 둘의 인연의 끈이 갖는 의미를 찾아가는 데 있다. 딱히 예쁜 얼굴은 아니지만 요가로 고고한 정신과 자세, 매끈한 몸매를 소유한 서른 두살의 요가 강사 서인은 사실 소설을 쓰는 것이 본업이다. 요가 강사란 자리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그녀는 어느 날 잡지 웰빙 라이프의 인터뷰를 하게 되는데 바로 그녀가 톱스타 여배우의 몸매를 재탄생 시켜준 지도 강사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인터뷰를 하기 위해 기자와 함께 따라온 사진 기사가 남자 주인공 선우다.

 

첫 눈에 이끌린 두 남녀는 그날 이후 서로만을 생각하며 시간을 보내고, 그러다가 둘은 연락을 하게 되고 급속도로 연인이 된다. 두 남녀가 다른 커플들과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서로의 과거에 대해 전혀 묻지 않는다는 건데 선우나 서인이나 서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영영 덮어버리고 싶은 과거의 소유자들이기 때문이다. 서인에게는 기억에도 없는 성폭행의 경험과 그 사건으로 인해 생긴 아이의 낙태에 대한 생생한 기억, 첫사랑의 남자와의 실수로 낳게 된 아들에 대한 과거가 그것이지만 이상하게도 선우는 과거에 대한 기억조차 전혀 없는, 어쩌면 초현실적이라 무섭기까지한 분위기가 풍긴다.

 

여자는 남자와 오랜 시간을 연인으로 지내면서 점점 하나 둘 의심을 품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의 과거를 조금이라도 알아내기 위해 먼저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고 그의 마음을 열려고 애를 쓴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좀처럼 열리는 것 같지 않다. 오히려 그녀가 다가갈수록 남자는 자신만의 세계를 지키기 위해 그녀를 피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어느 날 갑자기 연락이 되지 않다가 몇주 후 불쑥 나타나 잘못을 빌기도 하지만 여자는 그런 남자의 불안정한 심리적 경향이 단순히 예술가적 성향을 나타내는 것일뿐 더 다른 의미가 없기를 바란다. 하지만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남자의 이중인격, 정신학 용어로 해리성 정신장애라는 그 병이 드러나지 않을 수가 없다.

 

작품은 뒤로 진행되면서 급속도로 전개돼 앞뒤 아개를 맞추느라 정신이 없다. 첫부분에서 조금은 지루하게 펼쳐지는 미사여구로 뜬구름잡기식 묘사도 뒷부분에선 수그러들고 서사위주가 된다. 그로 인해 남자와 여자가 십오 년이라는 오랜 기간에 걸쳐 인연이 맺어져 있었다는 것이 밝혀지고, 그래서 선우와 서인의 만남은 운명일 수밖에 없었다는 씁쓸한 결론이 도출된다. 남자는 자기 안의 살인마가 자신이 진정 사랑하는 여자의 목숨을 앗아가지 못하도록 그 전에 스스로의 생을 마감하고, 여자는 자신이 진정 사랑했던 남자의 아이를 낳아 건강하게 키워간다는 에필로그도 지나치게 뻔하다. 뻔한데도 뻔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독자를 몰입시킬수 없었던 건, 독자가 등장인물들의 심리에 동조하기 위한 장치가 너무 부족했기 때문이다.

 

 

P.S 지나치다 싶을만큼 악평은 개인적인 느낌일 뿐이니, 너무 개의치 마시길.

      재미 위주의 소설을 원한다면 강력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