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중독-Reading/문학*문사철300

소망 없는 불행

gowooni1 2010. 3. 12. 19:07

 

 

 

소망없는 불행(세계문학전집 65)

저자 페터 한트케  역자 윤용호  원저자 Handke, Peter  
출판사 민음사   발간일 2002.06.15
책소개 피터 한트케의 장편 소설. 1971년 수면제를 다량으로 복용하고 자살한 어머니의 죽음을 겪은 후 씌...

 

사람은 책을 읽으면서 유독 공감이 되는 말이나 자신에게 위로되는 말을 한 작가를 잊지 못한다. 내 생각이 남들과 다르다는 생각은 남들과 같아야 정상인이라고 평가받는 이 세상에서 은연중 죄책감을 불러 일으키고 그렇지 않더라도 최소 자신의 생각을 남에게 표현하지 않는 길을 택한다. 괜한 불화를 일으키는 건 둥글게 살아야 서로 편하고 좋은 세상에서 바보같은 짓이다. 하지만 그 바보같은 짓을 하지 않으면 결국 남들과 다르게 생각할 줄 모르게 되는, 진짜 바보가 되어버리니 가끔씩은 책이나 작가들로부터 위안을 받아도 괜찮을 듯싶다.

 

노벨 문학상에 노미네이트 되는 페터 한트케는 '나 밖의 모든 것에는 관심이 없다'는 말로 많은 사람들을 위로한다. 사람들은 자신 외의 것에는 기본적으로 큰 관심도 없으면서 관심을 갖지 않으면 차갑다거나 쌀쌀맞다는 평이 두려워-물론 정말 자신의 삶에 별 가치를 느끼지 못해 남들에게만 관심을 쏟아붓는 사람도 많지만-끊임없이 주변 세계에 관심을 보인다. 페터 한트케는 작가로서, 자신 외의 모든 것에 관심을 가져도 시원찮을 판에 자기 외의 모든 것에는 관심이 없다 말을 하니 참 시원스럽다. 작가라면 이 사회에 일어나고 있는 여러 심각한 문제들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 아니냐는 사회적 책임을 그는 훌훌 털어버린다. 애초에 책임의 무게를 인식하지도 못한 사람처럼 보인다.

 

그런 이유로 그는 자신의 주변에 일어난 것들에만 관심을 가지고 소설을 쓴다. 그런 이유로 자신의 생각과 감정과 심경의 변화들이 세밀히 묘사된다. 그런 이유로 그의 집요한 '내면의 파고듦'에 감탄하게 된다. 미묘하게 느끼던 감정들에 모두 단어와 의미를 부여하여 표현하고, 사건에서 자신이 어느 정도 멀어졌다고 느껴질 때에야 비로소 그것을 지면 위로 옮긴다. 자기 주위에 일어난 사건들에 의미를 부여하고 언어로 정립한 다음 거기서 초월할 수 있는 그의 작가적 자세가 마음에 든다. 보통 사람들은 몇십 년이 지나도 자신에게 일어난 사건들에 대해 객관적 거리를 유지하는 법을 터득하지 못한다.

 

한 개인의 삶에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는 것은 무척 끔찍한 일이다. 기대할 것 없이 몸의 생물학적 수명이 다하길 기다리며 어제와 똑같은 오늘을 살다 죽는 건 이성을 부여받은 인간에게 괴로운 삶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과거는 물론 현재에도 그렇게 살다 죽고 있는지. 어쩌면 인간도 동물의 한 종이기 때문에 그런 삶의 방식에서 아무리 발버둥쳐도 벗어날 수 없는지도 모르겠다. 페터 한트케는 그런 삶을 살다가 죽은 자신의 어머니의 이야기를 '소망 없는 불행'에서 꽤나 담담히 그린다.

 

그는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죽음에서 감정적으로든 이성적으로든 거리감을 둘 수 있을때까지 몇주 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어머니가 죽고 나서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써야겠다는 강렬한 욕구에 사로잡힌 그는 마침내 칠 주가 지나고 펜을 들었다. 사건의 인력으로부터 겨우 헤어나와 그가 상당한 객관적 입장을 취하며 시작한 첫부분은 짤막한 신문기사로 시작된다. 51살의 한 가정 주부가 수면제 과다 복용으로 자살했다는 지역 신문의 보도. 그리고 그 보도의 주인공은 바로 한트케의 어머니다.

 

한창 청춘 나이에 세계대전을 겪은 세대의 여자들의 삶이란 다 비슷해보이고 그의 어머니도 마찬가지의 삶을 살았다. 배움에 대한 욕구를 채우지도 못하고 사랑에 대한 갈망도 한 번 시원스레 풀지 못한 그녀는 그저 주어진 삶을 살았다. 그녀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간다는 건 끊임없이 소망을 포기한다는 의미였고 고로 언제나 불행을 선택해야만 한 삶이었던 것이다. 아무것도 없는 것보다 고통을 선택하는 편이 행복한 삶. 그래서 마지막으로 소망해야할 불행마저 사라졌을 때 그녀는 생의 의미를 잃어버렸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