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중독-Reading/문학*문사철300

노르웨이 숲의 정서-말 도둑놀이

gowooni1 2010. 2. 7. 18:53

 

 

 

말 도둑놀이

저자 퍼 페터슨  역자 손화수  원저자 Petterson, Per  
출판사 가쎄   발간일 2009.09.01
책소개 노르웨이의 숲에서 펼쳐졌던 그 시절의 기억! 인생과 역사적 비극의 진실을 전하는 소설『말 도둑놀이...

 

사람들에게 오래오래 읽히는 책은 특별한 이야기를 상상천외한 기법으로 엮은 책이 아니다. 우리 주위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을 보통의 구성으로 덤덤하게 서술한 것, 길게는 몇백년부터 짧게는 몇십년동안이나 읽히는 책들이 바로 그런 작품이다. 만약 이런게 고전의 공통점이라면 분명 '말도둑놀이'도 같은 특징일 가지고 있으니, 여러 문학상을 휩쓸었다는 것도 이해는 간다. 하지만 어째 뭔가 보여주기만 했지 풀어주지는 않고 입을 다물어버린 작가가 조금 밉다.

 

스웨덴과 국경을 가까이 두고 있는 노르웨이 시골 숲에서 아버지와 보낸 15살의 여름과, 인생을 살만큼 다 살고 여생을 보내기 위해 장만한 겨울 산속 오두막의 67살의 나의 기억이 마구잡이로 번갈아 서술되며 이야기는 진행된다. 시간적 구성은 산만한데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약해지기 시작한 노인이 서술자라는 것을 생각하면 그런 산발적 구성이 조금은 불친절해도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다행히 연도만큼은 정확히 기억하는 노인은 기억력이 그리 나쁘지는 않은것 같다.

 

열다섯살의 트론은 아버지와 함께 오두막에서 여름을 보내러 오슬로를 떠나온다. 트론에게 있어 아버지는 그리 쉽지않은 사람이다. 항상 말없이 집을 떠나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몇달씩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라서, 여름마다 아버지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오두막에서의 삶은 기쁘다. 게다가 오두막과 가까운 곳에 살고 있는 친구 욘은 매일 아침마다 놀러와 문앞에서 서서 기다리고 있고, 욘과 함께 보내는 시간은 즐거우며 공기는 숨쉬는 기쁨을 매번 안겨줄만큼 맑아서, 이래저래 그곳에서의 여름은 즐거운 것이다.

 

여느때와 다름없이 아침일찍 찾아온 욘과 함께 집을 나서며 오늘은 무엇을 할거냐고 물어본 주인공은 되돌아온 욘의 대답에 깜짝 놀란다. 이웃 바르칼의 말농장에서 말을 훔칠거란다. 잠깐 훔쳐 타보는 것 뿐이긴해도 그런 행동이 범죄라는 사실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날따라 욘은 이상하고 말을 한번 타보는 것도 나쁜것 같지 않아 둘은 결국 말도둑놀이를 감행한다. 말 위로 잘못 떨어진 트론은 끔찍한 고통을 겪으며 겨우 도망치다가 나무위에 있는 새둥지의 자그마한 알을 발견한다. 이 작은 것에서 새 생명이 탄생하다니, 하며 자연의 놀라움에 감탄하고 있는 트론 앞에서 욘은 알을 전부 꺼내 나무 아래로 떨어뜨리고 둥지까지 짓이겨버린다. 그러고나서 욘은 얼마 후 자취를 감춘다.

 

집으로 돌아온 트론은 아버지로부터 욘의 집안에 벌어졌던 사건 하나를 듣게된다. 사냥을 하고 돌아온 욘이 총의 탄환을 빼두지 않은채 식탁에 놓아두고 쌍둥이 동생을 찾아 밖으로 나갔는데, 집 지하실에서 놀던 어린 두 동생이 식탁의 총을 발견하고 놀다가 그만 한명이 다른 한명을 쏘아 죽이고 만 것이다. 욘의 가족의 불행은 거기서 시작된다. 욘은 사라지고, 욘의 아버지는 일을 하다 뼈 몇군데가 부러져 다시는 집에 돌아오지 못하고, 남은 쌍둥이 한명 라스는 자책에 빠지고...거기다 주인공이 새벽에 숲길을 거닐다 우연히 보게 된 장면은 욘의 어머니가 어떤 남자와 정열적인 키스를 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어떤 남자는 바로 자신의 아버지였다.

 

말도둑놀이에는 말도둑놀이가 한번밖에 나오지 않는다. 다만 그 일이 출발점일뿐이다. 모든 사건은 딱히 연결고리 없이 벌어지고 작가는 딱히 그 사건들을 연결지으려 하지 않는다. 아버지가 욘의 어머니와 키스를 한 후 오두막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본 것까지만 이야기할 뿐 그 이상은 말이 없다. 욘이 집을 떠나 더 이상 볼 수 없게 된 것까지만 말하지 그 후에 재회를 하게 되었다거나 하는 우연도 일어나지 않는다. 무슨 일을 하는지 알수 없어도 항상 집에 넉넉하게 돈을 가져다 주던 아버지의 진짜 정체가 무엇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정체라는 것이 아예 없는 사람일수도 있고. 그리고 그해 여름 자신의 뒤를 따라오겠다며 오두막에 남았던 아버지가 자신과 누나와 어머니를 떠난 이유에 대해서도 작가는 말이 없다. 뭔가를 잔뜩 보여주어 기대하게 만들어놓고 뒤로 발을 빼버린 작가에게 뒷통수를 맞은 느낌이다.

 

작가에게 뒷통수를 맞은 사람은 나만이 아니라 다행이다. 트론도 아버지에게 두대나 맞은 모양이다. 아무 이유없이 자신들을 떠나버린 아버지한테 이미 한대 맞았는데, 그들 앞으로 날아온 짧은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아무 이유없이 떠나서 미안하오. 이번에 벌목수송으로 벌어놓은 돈을 스웨덴 은행에 맡겨두었으니 찾아 쓰시오.' 다음날 당장 국경을 넘어 이웃 나라 은행에 가 확인한 액수는 터무니없이 작았던데다가, 그 돈은 노르웨이로 가져갈 수 없다는 것. 결국 양복하나 해입고 저녁을 먹으니 다쓸수 있던 돈으로 그의 아버지는 다시 한번 더 뒷통수를 쳤다.

 

다행히 작가는 트론의 아버지만큼 무책임하지 않다. 적어도 북유럽 특유의 자연이 안겨주는 정취를 흠뻑 느낄 수 있도록 해주고, 조용한 숲속 생활로 독자를 안내하여 사건뿐만이 아닌 분위기에까지 감염되도록 만든다. 자연에 압도되어 인간으로서의 자아가 한없이 작아지는 듯한 기분에다, 춥고 해가 짧은 북유럽 사람들의 심리저변에 자연스레 깔려있는 우울함이 차분한 평화로움을 자아내어 이상스러울만치 작품의 분위기를 즐기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