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중독-Reading/문학*문사철300

모텔 라이프-희망을 노래한 플래니건 형제

gowooni1 2010. 1. 21. 18:51

 

 

 

모텔 라이프

저자 윌리 블로틴  역자 신선해  원저자 Vlautin, Willy  
출판사 미디어2.0   발간일 2009.09.25
책소개 비루한 청춘이지만 그래도 희망은 있다!'모텔 라이프' 형제의 희망 찾기 여정을 그린 작품『모텔 라이...

어느 독일 시인이 그랬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어린 시절의 소중한 추억을 간직하고 있으면 그 무엇보다 풍부한 재산을 가진 것이라고. 그 시인이 내건 전제가 맞다면 그마저도 못가진 너절하고 더러운 인생을 살아가는 영혼들은 확실히 가난하고 불쌍하다. 그러나 이 세상에 그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설령 그 풍부한 재산을 가지고 있다 해도 시간의 압박속에 서서히 잃어버리고 마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으니 말이다.

 

프랭크와 제리는 어린 시절을 생각해봤자 좋은 기억이 별로 없다. 도박에 빠져 식구들 고생만 시키다가 결국 감옥에 다녀와서는 집을 나가버린 아버지에 대한 기억, 프랭크와 제리를 먹여 살리려다 병에 걸려 일찍 죽어버린 엄마, 일찍 자퇴를 해버리고 일을 하다 어머니가 죽은지 6주만에 기차사고로 다리 한쪽을 잃은 형 제리, 그리고 역시 자퇴를 하고 아무 일이나 닥치는대로 하며 하루벌어 하루먹고 사는 프랭크. 그나마 2년동안의 집세를 마련해두고 간 엄마의 유산도 제리의 다리 수술로 몽땅 날려버렸으니 제리와 프랭크는 어디 갈 곳도 없다. 그들의 삶은 이 모텔에서 저 모텔로 전전하며 장기 투숙객으로 살아가는 '모텔 라이프'다.

 

그렇지 않아도 시원찮은 형제의 삶이라고 해서 불행이 그냥 지나치는 법은 없다. 끔찍하게 추운 겨울 밤, 여자와 싸우고 술에 취해 의족을 절뚝거리면서 차를 몰던 제리는 그만 십대 소년 한명을 치어 죽이고 만다. 소년은 즉사하고 놀란 제리는 아이의 시신을 뒷좌석에 옮겨 놓은 후 프랭크의 모텔로 도망간다. 숙취로 속이 뒤집힐것 같은 프랭크는 질질짜고 있는 제리와 그가 저지른 뒷좌석의 '기이하게 비틀어진 팔뚝의 시체'를 보고 한가지 결심을 한다. 그러나 그 결심은 형이기 때문에 내릴수밖에 없는 그릇된 결심이다. 도망.

 

인근 병원에 시체를 내려놓은 형제는 현금인출기에서 각자의 전재산을 꺼내어 마트에서 맥주와 먹을거리, 세정제, 휴지를 잔뜩 사고 돌아와 뒷좌석에 흥건하게 묻어있던 피를 닦아내고는 도망을 간다. 멀리 멀리. 자신들을 절대로 찾을수 없는 다른 주로. 하지만 뺑소니범 제리는 끊임없이 죄책감에 시달리면서 눈물을 멈추지 못한다. 아무것도 아닌 자기가 그 무엇인가가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한 아이와 그 가족 전부의 인생을 망쳐버렸다는 회한, 그러나 감옥에는 죽어도 들어갈 수 없는 본능. 이 두 감정에서 제리는 점점 이성을 잃어가고 프랭크는 형을 끝까지 지켜야겠다는 결심을 한다.

 

하지만 제리는 프랭크가 잠시 산책을 나간 사이에 그의 짐을 전부 내려두고 어디론가 도망가버리고, 프랭크는 얼마 남지 않은 돈을 전부 써서 겨우 자신의 집-그래봤자 모텔방이지만-리오로 돌아온다. 돌아온지 얼마 안되어 제리의 여자가 찾아오고 형의 소식을 알려준다. 제리가 총으로 자신의 다리를 쏘고 지금은 병원에 있다는 말에 프랭크는 침대에서 총알같이 튀어나와 형에게로 간다. 왜 그런 미친 짓을 했냐는 아우의 말에 형은 이렇게 말한다. 도저히 살아갈 수가 없어 자살을 하려고 했는데, 머리에 쏘는게 너무 두려워서, 그래서 다리에 대고 쐈다고.

 

그런 그들의 인생에서 자기만의 은신처가 없었다면 어떻게 그 무한한 시간을 버틸수 있을까. 자기만의 은신처는 프랭크가 어릴척 일했던 중고차 매매가게의 사장 얼이 가르쳐준 인생의 지혜였다. 자기만의 은신처를 만들라는 얼의 말에 프랭크와 제리는 크게 공감을 하고 각자의 은신처를 만들어두었던 것이다. 프랭크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마구 지어내는 능력으로, 제리는 그림 속으로 각자의 현실을 잊고 몰두할 공간을 마련했다. 제리의 그림은 얼이 자신의 집에 액자로 만들어 둘만큼 사람의 마음을 풍요롭게 해주는 것이었고, 프랭크의 이야기는 그들 주위에 살아가는 비루한 인생의 주인공들에게 잠깐이나마 행복한 삶을 누릴수 있게 해주었다. 프랭크는 자신의 이야기로 제리를 위로하고, 옛 여자친구를 위로하고, 주변 모든 사람을 위로한다.

 

자신이 촌 총알의 상처와 죄책감으로 서서히 죽어가는 제리. 그는 죽기 전 마지막으로 들어가는 병원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 사랑에 빠지고도 싶고 나한테 푹 빠진 누군가도 있었으면 좋겠어. 그런 걸 월하면 안 되는 거냐? 그런 일이 생겨 버렸는데 말이야..." 가진것이라고는 젊음밖에 없던 그들이 원한건, 사람이라면 누구나 누릴 수 있던 평범하고 소소한 행복일 뿐이다. 결국 제리는 죽고, 프랭크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길에서 주운 개 한마리. 그러나 제리가 가진것이 아무것도 없어보이지 않는건, 그에겐 인생에 크게 기대하는 것도 좌절하는 법도 없는 능력이 있었고, 항상 뭔가를 희망할 줄 알았기 때문인가 보다.

 

"나는 희망했다. 왜냐하면 희망, 그것은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 것보다 차라리 낫기 때문이다."

 

 

 

 

윌리 블로틴(Willy Vlautin)

그룹 '리치몬드 폰테인' 멤버(작사.보컬)

모텔 라이프로 2006년 데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