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중독-Reading/문학*문사철300

영원한 것은 없기에

gowooni1 2010. 2. 10. 18:41

 

 

 

영원한 것은 없기에

저자 로랑스 타르디  역자 이창실  원저자 Tardieu, Laurence  
출판사 문학동네   발간일 2008.11.05
책소개 빛을 눈부시게 하는 건 어둠이야 아름답고 슬픈 사랑 이야기를 그린 로랑스 타르디외의 소설『영원한 ...


 

오랜 방황 끝에 겨우 한 여자와 평온한 삶을 이어가고 있는 오십대 중반의 남자 뱅상. 그런 그에게 어느날 갑자기 편지가 하나 날아든다. 난 죽어가고 있어 뱅상 난 죽어가 보고싶어 뱅상. 편지는 잔잔한 수면 위로 던져진 돌맹이처럼 진한 파문을 그리며 다시 한번 그의 삶에 흔들림을 낳는다. 2년간 동거해온 파스칼과의 현재까지도 삐걱거리게 만든 편지의 주인공을 만나기 위해 남자는 곧장 자동차키를 집어들고 현관을 나선다. 파스칼은 불안한 눈빛으로 남자를 말린다. 당신은 죽어가는 사람이 어떤 모습인지 몰라. 하지만 이미 뱅상의 마음은 십오년이라는 긴 시간을 건너 주느비에브에게로 달려가고 있었다.

 

죽어가는 주느비에브에게로 차를 몰고 가는 뱅상의 머릿속에는 온통 주느비에브에 대한, 그리고 클라라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하다. 십오년 전 주느비에브, 이십년 전 주느비에브, 삼십년 전 주느비에브의 모습이 뱅상의 머릿속에 스쳐지나간다. 그리고 클라라도. 자신들과 함께 한 시간이 겨우 십년도 채 안되는 아이이긴 하지만 뱅상과 주느비에브는 클라라의 부모였다. 엄연히 한 아이의 아버지였던 그가 어떻게 그 오랜 시간동안 그 모든 것들을 생각도 하지 않으며 버텼는지 새삼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리고 자신이 지금 주느비에브의 죽어가는 모습을 보러 가는 것이 맞는 건지도 잘 모르겠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사건이나 시간은 극히 일반적이고 또 짧다. 주느비에브의 편지를 받은 뱅상이 4시간 걸려 남프랑스의 시골집으로 달려가 그녀와 재회한다. 남자는 죽어가고 있던 주느비에브와 이야기를 하며 그녀 인생의 마지막 밤을 곁에서 지켜본다. 주느비에브의 부탁으로 그녀가 오래전, 클라라의 실종 때 썼던 일기장을 갖고 다시 파스칼이 있는 자신의 현재로 돌아온다. 주느비에브는 흙으로 돌아갔지만 뱅상에게 남겨진 시간은 그를 다시 일상으로, 그를 기다리고 있는 한 여자에게로 돌려보낸다. 결국 변한건 하나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뱅상에게는 하나도 변한게 없는게 아니다. 모든 것이 변했다. 주느비에브와 함께 같은 곳에서 살고 있지 않아도 그녀가 같은 프랑스 하늘 아래 어딘가에서만 살아있기만 한다면 그에게는 생의 위안이었다. 주느비에브는 한때 자신의 모든 것이었으며 십오년이라는 기간을 부부로서 함께 살아온 동반자였고 자기 딸의 어머니였다. 그들을 갈라지게 만든 건 끝내 돌아오지 않았던 사랑하는 딸 클라라의 실종사건이었지만 그 결과를 파멸로서만 받아들일수 있었던 뱅상은 십 오년 전과 다를게 하나도 없었다. 사건의 본질에서 회피하고 그저 목숨을 부지하는 인생을 살아온 뱅상은, 사건을 직시하고 모든 것을 받아들이며 고통도 함께 감내했던 주느비에브보다 어렸다. 그녀의 인생 마지막을 함께 하고 나서야 비로소 그는 십오년 전에서 한걸음 더 나아갈 계기를 얻게 된 것이다.

 

작품은 매우 짧으며 구성 또한 간결하다. 3부로 구성된 작품의 1부는 주느비에브에게로 가는 뱅상의 생각으로, 2부는 십오년 전 클라라를 잃고 슬픔을 견디기 위해 썼던 주느비에브의 일기로, 3부는 두 사람이 만나고 다시 죽음으로 헤어지는 상황으로 그려진다. 이 짧은 소설은 특히 마지막 부분에서 기나긴, 끝내 책의 마지막 장을 덮기에는 뭔가 아쉬울만큼의 긴 여운을 남긴다. 쉽게 분석되지 않는 이 여운의 원인 중 하나는 주느비에브가 죽어가는 모습을 독백한 뱅상의 문장일 것이다. 그는 주느비에브가 죽어가고 있다고 하지 않는다. 주느비에브가 떠나가고 있다고, 그는 말한다. 그리고 우리의 안도는 여기에 있다. 우린 각자 자신이 떠나가기엔 좀 이른 때라고 생각하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