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과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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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무엇 하는, 무엇무엇 하는데, 무엇무엇 해서, 무엇무엇 하기도 그렇고, 무엇무엇 하자니, 무엇무엇 하기도 좀 그런.
무명 가수 출신인데다, 남동생의 생계를 위해 호스티스도 해본 경력의 여자가, 일본 최대의 신인문학상 아쿠카타와 상을 수상했다는 말은, 지나치게 시장을 노렸다는 상商스러움이 묻어나오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당기는 뭔가가 있어서, 자기도 모르게 그 소설을 손을 뻗어 집고 나서는, 단 한번에 주욱 읽어내려가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이런 식의 문체가 처음부터 끝까지 지치지도 않고 계속되는데 심사위원이던 무라카미 류는 이 작품을 보고 "아슬아슬한 곳에서 제어된 훌륭한 문체가 일품'이라고 했단다. 반면 정치가 출신 소설가 이시하라 신타로는 "죽어도 반대일세"라고 끝까지 인정을 하지 않았다 하는데 이말에 대한 역자의 평도 흥미롭다. 문학은 정치를 끌어안지만 정치는 문학을 끌어안을 수 없다는 말이 있다나 없다나.
가와카미 미에코,1976년 8월 29일, 일본
작품은 짧은데 문장이 길다. 끊임없이 행도 바뀌지 않고 쉼표만으로 숨이 끊어질락 말락 이어지는 문장은 길다 싶으면 두페이지도 훌쩍 넘긴다. 아니 무슨 이런 문체가 다 있나 싶어 어디까지 이어지나 두고보자는 심정으로 읽다보면 소설같기도 하고 노래 가사같기도 하고 시 같기도 한 야릇한 마력에 빠져 페이지를 술술 넘기고 있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저자의 다양한 이력 중 하나가 가수인걸 보니 약간 시적인 감성이 들어가 있는 부분도 그럴듯하게 수긍이 간다. 우리나라에서야 역자가 독자들의 편의를 위해 쉼표를 적당하게 마침표로도 바꾸고 행간도 바꾸고 표준어로 번역을 했다지만 일본에서는 행간도 거의 바뀌지 않는데다가 처음부터 끝까지 오사카 사투리로 쓰여져 있어 한 독자는 '이렇게 불친절한 작가는 본적이 없다'고 혹평을 했다니 이 말에도 왠지 수긍이 간다.
소설의 야릇한 매력은 야릇한 제목에서부터 시작되니 뭔가 심상치 않다. 乳과 卵. 우리 식으로 해석하면 유와 란 정도 인데 이런 식으로 제목을 갖다 붙였다면 한자보다 고유어가 더 생활을 잠식하고 있는(적어도 일본보다) 우리 입장으로서는 별로 와닿지 않았을듯 하다. 가슴 확대수술이 현 인생 최대 관심사인 서른 아홉 미혼모 마키코와 초경을 앞둔 초등학생 딸 미도리코의 생리에 대한 거부감-어른이 된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등장인물이니, 어떻게 보면 가장 적당한 제목인듯도 싶다. 사춘기에 접어든 반항아 미도리코는 벌써 6개월째 엄마와 말도 하지 않고 있는데 자신의 의사는 전부 글씨를 써서 전달한다. 물론 자신의 생각도 부지런히 기록을 통해 확인한다. 卵子의 '子'자는 정자의 '子'와 맞추기 위해서일뿐이니 난자가 아닌 난세포가 하는 게 옳다며 부조리함에 모두 바보같음을 외치는 미도리코의 심정은, 까다로운 사춘기를 겪은 모든 여성들의 마음이다.
도쿄에 살고 있는 여자에게 언니 마키코와 그의 딸 미도리코가 2박 3일 일정으로 놀러왔다가 다시 돌아가는 것 까지가 소설의 시간적 배경이다. 오롯이 여자 세명만 등장한다. 결혼도 하지 않고 아이를 낳은 여자. 결혼도 안하고 아이도 안낳은 여자. 아직 생리도 시작하지 않은 여자. 여자들만의 이야기인데다가 자신의 여성성을 지키고 싶은 여자와 여자가 되고 싶지 않은 여자의 대립이 있으니 여자의 육체에 대한 묘사의 적나라함이 드러난다. 가슴확대수술을 할 생각으로 머리가 가득 찬 마키코가 여탕에 들어가니 당연히 눈에 들어오는 것이라고는 가슴밖에 없을터인데, 이 묘사부분이 너무 기막히게 유머러스하고 리얼하여 다른 성姓의 사람이 보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도 살짝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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