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중독-Reading/문학*문사철300

마음가는 대로(follow your heart)

gowooni1 2009. 12. 24. 20:55

 

 

 

XY유전자를 가진 종족은 아이였다가 남자가 되고 아버지가 된 다음 할아버지가 된다. XX유전자를 가진 종족 역시 마찬가지다. 아이로 태어나서 여성이 되고 어머니가 된 후엔 할머니가 된다. 시간의 법칙 아래 있는 우리들은 이런 자연의 흐름에서 벗어날 수 없으므로 언젠가 이해하지 못할 사람이란 결국 존재하지 않는다. 어릴 때 어머니를 이해하지 못했던 사람들은 어머니가 된 후에 그들의 어머니를 이해하고, 할머니가 된 후에 그들의 할머니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시간은 모든 연령대의 사람들을 서로 이해하고 보듬어 안을 수 있게 만들어 준다. 거대한 우주의 무한한 시간 속에서 그들은 우리보다 약간 먼저 태어나서 약간 먼저 죽을 뿐인 나와 다름없는 사람들이다.

 

허나 그렇기 때문에 어쩔수 없는 현상이 발생하고 만다. 그건 어른이 아이들을 이해하고 포용해주려는 만큼 아이들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다. 아이들이 어른들을 이해하려면 시간이 좀 더 필요한데 시간은 현재성을 띠지 않기 때문에 항상 지금 이순간 서로를 오해하고 밀쳐낸다. 이는 곧 후회라는 감정을 낳는다. 그리하여 시간이 지난 먼 훗날 우리는 '내가 왜 그때 엄마한테 그렇게 대했을까, 왜 아빠한테 그렇게 말했을까'하며 후회하고 죄송스러워하고, 또 그런 마음을 전달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고통스럽기까지 하다. 그게 바로 시간이 필요한 자와 아닌 자가 같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관계를 맺을 때 겪어야만 하는 아이러니다.

 

하지만 그게 꼭 나쁠까? 후회는 반성을 낳고 고통은 성숙을 낳는다. 우리가 후회하고 고통스러워한만큼 다른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진다. 아무런 반항없이 사춘기를 보낸 사람들은 반항기인 사춘기 자식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고 이별의 고통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실연에 눈물 흘리는 사람들을 바보스럽다고 여길 것이다. 인생을 풍요롭게 살기 위해서는 슬프고 견디기 힘든 감정도 인생의 밑거름으로 감사히 받아들일줄 아는 마음이 필요하다.

 

이탈리아의 작가 수산나 타마로의 '마음가는 대로(follow your heart)'의 화자는 이 세상 웬만한 여성들을 이해하고 너그럽게 받아들일 줄 아는 경지에 이른 여성이다. 80살이 넘는 화자 올가-작품 중 오직 딱 한번 나오는 이름-는 늙은 자신과의 삶을 참지 못하고 집을 뛰쳐나가버린 스무살의 손녀딸에게 편지를 쓴다. 편지는 손녀딸에게 보내지지 않을 예정이다. 늙은이와 한 집에서 인생을 보내야 하는데 답답함과 짜증을 참지 못하고 나간 손녀는 편지는 커녕 전화조차 하지 말라고 부탁을 했고, 그래서 올가는 단지 자신의 편지를 남기기 위해 일기 형식으로 글을 남긴다. 그녀가 이 편지를 쓰는 이유는 간단하다. 손녀딸에 대한 그리움을 달랠겸, 언젠가 손녀가 자신에게 대했던 행동들 때문에 후회하고 슬퍼하는 삶을 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자신의 인생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예감하고 쓰기 시작한 일기 속에는 자신의 인생 어느 부분에서는 그리움을, 또 다른 부분에서는 겉잡을 수 없는 후회를 드러내지만, 인생 자체를 후회하는 목소리는 아니다. 오히려 그녀는 80살이 넘는 인생을 살았으면서도 항상 삶 속에서 무언가에 놀라고 호기심을 가지며 인생을 사랑하며 살아온 여자의 자세를 보여준다. 이 편지는 모든 연령대의 여성이 읽어도 공감될 부분이 반드시 있는데, 그게 바로 나이 많은 화자의 목소리에서 나오는 매력이다. 간혹 지나치게 미신적인 부분이 있어 받아들이기 힘든-어미의 죄는 자식에게, 할머니의 죄는 손녀에게 전해진다-늙은이의 생각도 있지만 대부분은 가슴속에 새겨가며 읽고싶은 지혜들이 구석구석 녹아 있다. 자신이 인생을 살아오고 경험한 만큼 독자들은 책 속의 올가의 인생 속에 공감대를 찾아낼 것이며 그래서 지금 이 책을 읽은 것보다 십년이 지난 후에 읽었을 때의 감정이 더 풍부하지 않을까 싶다.

 

여성이 대학을 다니면 사치라고 여겨졌던 시대 사람인 올가와, 여성도 전세계일주를 마음껏 할 수 있는 손녀딸의 입장을 비교하는 부분에서는 작가의 페미니즘적인 성향이 약간 느껴진다. 시대는 변했고 여성의 인권은 신장되었다. 하지만 크게 봤을때 여성의 삶과 그 여정 속에서 겪는 감정들이 아주 다를까? 올가는 말한다. 자신의 시대에 여성은 개성을 버리고 인격을 쌓도록 요구되는 시대였다고. 하지만 그건 21세기를 사는 우리도 마찬가지고 22세기를 살 미래의 사람들에게 있어서도 여전히 지속될 것 같다. 몰개성하지만 인격이라는 대중적 예절의 강요는 기원전 2000년의 사람들에게나 기원후 2000년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니까. 그러므로, 그러거나 말거나 상관없이 우리는 작품의 제목에 따라 살아야 할것이다. 인격보다는 개성을, 이성보다는 자신의 마음이 이끄는대로 풍요로운 감정을 누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