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상-Daily/영화-MOVIE

솔로이스트, 정신 분열증 천재의 슬픈 감동

gowooni1 2009. 11. 25. 20:55

 

 

흥미진진하고 긴박감 있는 전개, 예상치 못한 반전, 카타르시스를 주는 통쾌한 결말. 흥행에 성공한 대부분의 영화, 소설의 공통점이지만 여기에는 허가 있다. 대부분의 관객이 이 뻔한 공식에 너무도 익숙해져 있다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관객은 영화 제작자들에게 웃음의 타이밍이나 감동의 눈물을 흘려야 할 타이밍까지 조종당하고 있는 셈이며 조금 더 과격하게 표현하자면 대중은 이 뻔한 공식을 매번 창출해내는 제작자들에게 조롱당하고 있는 것이다.


솔로이스트는 정직하게 실화에 충실한 영화다. 엔딩 크레딧 직전 화면에 뜨는 문구에는 이 영화에 등장한 인물의 실존 모델이 어디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고 있는지까지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이를 통해 우리는 영화의 내용이 진짜 있었던 일들이라는 것을 더욱 믿을수 있게 된다. 동시에 관객이 느끼는 감동의 질도 달라진다. 철저한 픽션에서 느끼는 계산된 감동이 아니라, 진짜 있었던 사건과 인물이 선사하는 감동은 내용을 넘어 제작자의 의도를 다시 한번 더 생각해보게 만든다. 가슴벅참 대신 깊이가 느껴진다.

 

 
베토벤을 사랑하고, 첼로 연주에 신동의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주인공 나다니엘은 다만 첼로 연주에만 능한게 아니었다. 나다니엘은 아마 현악기 전반에 재주를 가지고 있던 모양이다. 그가 영화의 화자이자 칼럼니스트인 스티브에게 발견된 곳은 베토벤의 동상이 있던 어느 공원이었는데 그때 나다니엘이 켜고 있던 악기는 두줄 뿐인 바이올린이었다. 단지 두 줄뿐인 악기로 그는 사람을 매료하는 연주를 한 것이었다. 마트에서나 볼수 있는 쇼핑 카트에 자신의 전재산이자 보물을 싣고 다니는 홈리스 나다니엘의 소원은 매우 소박하다. 자신의 바이올린에 나머지 두 줄을 끼우는 것이 바로 그의 유일한 소원.

 

 

 
나다니엘에게 호기심을 느낀 스티브는 그에 대해 조사를 하게 된다. 여러가지 흥미로운 정보를 얻게 되는데, 비록 졸업을 하지는 못했지만 나다니엘은 줄리어드 음대에 입학한 적이 있다는 사실이다. 신동으로 각광받고 줄리어드 음대에까지 입학한 나다니엘이 졸업도 하지 못한채 노숙자로 LA 거리를 누비며 하늘 아래서 연주를 하고 다니는 이유가 궁금해진 스티브. 그 이유는 금방 밝혀졌다. 나다니엘에겐 정신적인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스티브의 칼럼을 읽은 한 노부인이 감동을 받고 보내준 첼로로 스티브는 나다니엘을 유인한다. 지금처럼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위험한 거리에서 살아갈 것이 아니라 노숙자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보호하는 센터에 들어가는 것이 나다니엘이 첼로를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조건. 갇힌 공간에 대해 공포 가까운 감정까지 가지고 있는 나다니엘에게 센터란 곳은 인간답게 살기를 포기하는 곳이나 다름 없었다. 하지만 첼로를 가지고 싶어하는 마음이 더 컸고 결국 나다니엘은 센터로 들어간다. 그리고 나다니엘의 마음 속에서 스티브는 오직 하나뿐인 신과 같은 존재로 점점 커져만 간다.

 

 

 
나다니엘에게 동정심을 가지고 제대로 된 인생으로 인도하겠다던 스티브의 마음은 나다니엘이 자신에게 보내오는 감정의 강도가 점점 커질수록 부담으로 변한다. 스티브는 칼럼을 써서 홈리스와 장애를 가진 사회의 아웃사이더들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시장으로부터 경제적 지원까지 끌어내는 등 자신의 커리어를 높이지만 나다니엘의 인생에 대한 자신의 역할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한다. 본인은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 해도 나다니엘은 분명히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었으며, 스티브는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나다니엘에게 법적 보호자를 세우기로 마음 먹는다. 그리고 그에게 정신 분열증 환자로서 법적 보호자를 인정하는 서류에 사인 청구를 하는 날 둘은 크게 싸운다.

 

 

 
솔로이스트가 지나치게 실화에 충실했다는 점은 영화의 마지막에서 알 수 있다. 기존의 영화에 익숙해졌던 우리들은 마지막 즈음에는 반전이 일어나 나다니엘이 드디어 정신적인 장애를 딛고서 많은 사람들 앞에서 성공적인 첼로 연주를 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반전의 신은 인색하기 그지없다. 나다니엘은 여전히 정신 분열증을 앓고 사람들 앞에서 연주를 하지 못하며 그에게 지나친 것들을 강요할수 없는 사람으로 남는다. 약간의 진전이 있다면 나다니엘이 드디어 자신의 병을 인정하고 동생을 자신의 법적 보호자로서 인정한 것, 그리고 스티브와 화해를 한 것 정도다. 스티브와 나다니엘의 개인적인 관계를 뛰어넘어 사회적 측면에서 진전이 있다면 LA에 거주하고 있는 사회적 약자들의 현실을 전면에 부각시킬수 있었다는 점이며 그로 인해 사람들의 관심과 보호가 증가할 수 있었다는 점이겠지만, 그것이 솔로이스트가 말하고자 하는 바인지는 애매하다. 그리고 그게 바로 실화에 충실한 영화의 허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