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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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여인, 1668/70년, 피터 얀센스 엘링가]
문자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발명되었고 책은 메시지를 널리 전파하기 위해 발명되었다. 독서라는 행위는 겉보기엔 문자위로 시선을 흘리는 것일 뿐이지만 사실은 그 안에 담긴 메시지를 파악하는 행위이며 좀 더 고상한 표현을 빌리자면 유쾌한 정신적 고립을 추구하는 일이다. 우리는 책읽기에 몰입한 사람을 보면 '그는 지금 이곳에 있으나 이곳에 있는게 아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의 육체는 내 옆에 머물고 있어도 그의 정신은 내가 알지 못하는 저 건너편에 있다. 독서는 자기만의 정신세계를 추구할 수 있는 가장 즉각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이며 독자는 그 안에서 매번 정신적 안락을 누릴수 있다. 책은 그런 의미에서 최고의 휴식처이자 때로는 위험한 물건이 된다.
[독서하는 소녀, 1828년, 구스타프 아돌프 헤니히]
오늘날처럼 여성에게 무제한적인 독서의 기회가 주어진지는 불과 수십년에 지나지 않는다. 아직도 지구상에는 독서가 여성은 물론 일반사람들에게 허용되지 않는 나라가 많으며, 200여년 전만해도 책은 부유한 귀족들이 소유하고 읽을 수 있는 최고의 사치품이었다. 나라의 지도자들은 똑똑한 백성들을 싫어했다. 책을 읽는 사람은 생각을 깊이 하게 되고 생각이 깊은 사람은 자기만의 독자적인 사상을 갖게 된다. 자기만의 사상을 가진 사람은 대열을 벗어나게 되므로 지도자들이 원한건 우매한 백성이지 똑똑한 사상가가 아니었다. 그래서 폭군들은 책을 불태웠고 일반인들이 문자해독능력을 갖게 되는 걸 두려워했다. 그리고 남성들은 여성들이 자신보다 똑똑해지는걸 두려워했으므로 여성들의 독서행위를 '비생산적이고 시간낭비적'인 일이라며 비난하였다.
[퐁파두르 후작 부인, 1756년, 프랑수아 부셰]
이러한 역사적 배경에서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책을 읽는 일반 대중들의 존재도 두려운데, 하물며 안락한 가정을 꾸리고 아이만 잘 낳으면 그만이었던 여성까지 자아를 갖게 되면 위험하지 않을수가 있을까. 기나긴 역사 속에서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고등 유인원일 뿐이었다. 인간으로서의 지능은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전부 사용해서는 안되었다. 생각하는 여자는 반항적이고 반항하는 여자는 여성으로서의 미덕을 갖추지 못한 사람으로 간주되었으며 나아가 쓸모없는 사람이 되었다. 그런 사회풍조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비슷했으며 그래서 여성의 생각은 악덕이었고 여자의 독서는 무용지물보다 나쁜 사회적 해악이었다.
[독서하는 처녀, 1850년, 프란츠 아이블]
그러나 위험스러운 것에는 매력이 있으며 미지의 아름다움이 있다. 많은 사람들은 책 읽는 여자에게 반했고 그녀들의 정신이 속해있는 곳에 자신도 함께 가기를 염원했다. 자신의 육체가 있는 이 세상의 모든 근심 걱정을 잊고 문자 너머의 세상 속에서 정신적 즐거움을 추구하고 있는 여성의 모습은 오랜 세월에 걸쳐 많은 화가들의 뮤즈가 되어 주었다. 화가들은 책 읽는 여성의 모습을 기꺼이 화폭에 옮겨 담았고, 우리는 그런 그림을 통해 시대의 변천에 따른 여성들의 독서 자세를 엿볼수 있다. 독서가 오직 성서를 해독하는 일이었던 암흑의 중세시대부터 대중적 읽을거리가 쏟아져나오는 요즘시대까지 사람들에게 독서가 어떤 위상을 차지하고 있었는지, 그리고 독서하는 여성이 사회적으로 어떤 위상을 차지하고 있었는지 알게된다.
[책 읽는 여인, 1770년,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
슈테판 볼만의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는 이러한 시대적 변화에 따른 여성의 책 읽는 그림을 차례로 보여주며 친절하게 설명한다. 더불어 시대에 따라 책이 의미한 바가 무엇인지, 어찌하여 여성의 독서가 금기시 되었는지 이유도 알 수 있다. 역자 두 사람이 상냥하게도 챕터의 중간중간마다 책과 독서의 역사에 대해 설명하고 있어 그림을 더 깊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렘브란트의 그림에서부터 마릴린 먼로의 사진까지 모든 그림과 사진속에는 책을 손에 들고 있는 여자가 있다. 책을 읽는 것이 금기시 되던 시대의 모델들은 관객인 우리들에게 등을 내보이고 있으며, 책 읽는 것이 미덕이 된 비교적 요즘 시대의 마릴린 먼로는 당당하게 제임스 조이스의 책에 얼굴을 파묻고 있다. 중세부터 근대까지 책 읽는 여자의 변화된 위상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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