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란 자신의 시간을 돈으로 맞바꾸지 않는 사람을 말한다. 생활의 안정을 위해 영혼이 내켜하지도 않는 일을 억지로 하면서, 어느 한 조직에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의 시간을 고스란히 바친 대가로 고정적인 월급을 받는 삶을 견디기 힘들어하는 것이 작가다. 아무것도 가진것이 없을지라도 글을 쓸 수 있는 무한한 시간과 자그마한 책상이 놓여있는 조용한 공간만 있으면 세상 모든 것을 가진듯한 만족감을 느낄수 있는 사람이 바로 진짜 작가인 것이다.
폴 오스터는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글쟁이의 영혼을 가진 사람이다. 그는 평범한 삶과 타협하기를 거부하고 자신의 영혼을 어줍잖은 돈과 맞바꾸지 않기 위해 20대 젊음을 내면의 신조에 따라 살았다. 겉으로 듣기에는 제법 그럴싸하게 들릴지 모르나 겉으로 드러나는 실상은 불안정하고 궁핍하고 때로는 거지보다도 더 못한 배고픔에 허덕여야 했던 삶이었다. 가진 것이라고는 글쓰기에 대한 열정과 젊음 뿐이었던 폴 오스터는 그의 20대를 미국과 파리 등지를 오가며 살았다. 온갖 별볼일 없는 일들로 돈을 벌고 경험을 축적하며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아야 했던 그였지만, 그 어떤 현실적인 어려움도 그의 의지를 꺾을수는 없었다. 그는 굶어 죽을지언정 자신의 영혼을 팔아 적당한 곳에 취직하여 시간을 돈으로 바꾸는 삶은 결코 영위할 수 없었던 것이다.
<빵굽는 타자기>는 그야말로 폴 오스터가 젊은 날 닥치는 대로 산 삶을, 닥치는 대로 써내려간 글이다. 그의 글을 읽다보면 상반된 감정을 느낄수밖에 없다. 안정된 삶 같은 타인이 높이 평가하는 가치따위엔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자신만이 높이 평가하는 글쓰기에 대한 열정을 쫓아 무작정 살아갈 수 있는 폴 오스터의 무모한 용기에 감탄하면서도, 현재 내가 얼마나 열정보다 안정을 더 추구하고 있는지를 돌이켜보면 씁쓸하고 부끄러워진다. 자신의 전 인생을 걸어 최소한의 생계만 유지하고 끊임없이 시간을 확보하여 글을 쓰지만 끝없이 실패하고 좌절만 해야 하는 폴 오스터의 삶을 읽으면 저렇게 열심히 열정을 쫓아 살고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의 실패가 내게도 오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잖은가 하며 두려워진다. 그는 이 글을 통해 무모한 용기와 함께 밑도 끝도 없는 두려움을 함께 안겨준다.
이 소설은 소설이라는 느낌보다는 폴 오스터의 20대의 자화상이라는 편이 더 어울린다. 그리고 안정만을 추구하는 젊은이들에게 진짜 젊은이의 인생이란 이러한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하나의 의욕촉구제의 역할도 어울릴법하다. 스토리의 구성이 치밀하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그가 진짜 치밀한 플롯을 구성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진짜 인생이 픽션보다 훨씬 치밀하고 치열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읽다보면 때로는 정신이 산만할 때도 있지만 그의 세련된 스토리텔링 방식은 사실을 그대로 묘사하는데서 오는 그러한 단점을 충분히 커버하여, 폴 오스터가 생각하는 삶에 대한 사고방식이 옳다고 여기며 계속해서 페이지를 넘기게 만드는 몰입의 경지에 독자를 이끌어들이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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