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중독-Reading/문학*문사철300

사르트르가 생각하는 문학이란

gowooni1 2009. 12. 16. 18:28

 

 

 

 

문학이란 무엇인가(세계문학전집 9)

저자 장 폴 사르트르  역자 정명환  원저자 Sartre, Jean-Paul  
출판사 민음사   발간일 1998.08.05
책소개 문학의 본질에 대해 놀라운 통찰력으로 더없이 명료하고 경쾌하게 서술한 사르트르의 명저. 실존주의라는...

 

장 폴 사르트르는 실존주의니 참여문학이니 하면서 생존 당시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은 작가다. 다른 사람들은 못 받아서 안달인 노벨문학상을 수상거부 할정도로 오만하지만, 또 그만큼 자기만의 인생철학과 작가로서의 철학이 확고했던 20세기 프랑스 대표 지성 사르트르. 그는 우렁찬 갈채와 함께 엄청난 돌맹이를 한꺼번에 받는 사람 중 하나였는데 그도 인간이었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대는데 하물며 사르트르가 가만히 있을수야. 참여문학으로 대표되는 사르트르의 문학세계는 그가 공인인만큼, 많은 이들이 논리도 없는 맹목적인 공격을 퍼붓는 대상이었고 이를 참다못한 사르트르는 드디어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썼다. 자신만의 문학철학과 작품세계의 논리정연함을 만천하에 드러내, 문학의 쥐뿔도 모르는 작자들이 더이상 찍소리도 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과연 그래서 그럴까. 사르트르의 '문학이란 무엇인가'는 상당히 공격적임과 동시에 방어적이고 자기 중심적이며 또 치밀하다. 다른 사람들이 공격하니 나도 공격한다는 식으로 그를 비판하던 어중이 떠중이들을 일격에 걸러낼수 있었을 거라 짐작 가능하다. 확실히 자신을 향한 저급한 공격의 질을 한 층 높일 수 있었을것 같기는 하지만, 고급화 된 공격을 할 수 있는 사르트르와 동등하거나 그 이상의 지성을 가진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얘기가 달라진다. 그들은 문학이란 무엇인가에서 사르트르가 보여준 그만의 논리 속에 있는 헛점을 간파할 수 있었을테고 더욱 날카로운 공격을 할 수 있었을거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사르트르는 또 다른 식으로 얼마든지 자신을 변호할 수 있었을 것이고 또 그것이 바로 참여정신이라고 말했을 사람인것을.

 

그런 의미에서, '문학은 참여가 아니다'라는 전제로 문학을 읽고 쓰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어떤 식으로 접근해도 사르트르의 문학철학은 자신의 것이 아닐 것이다. 예를 들어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사람같은 사람에게는 더욱 그러할 거다. 하지만 그러든 말든, 사르트르가 구축해낸 자신만의 문학 철학이 무엇인지 궁금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책을 읽음으로서 그가 생각한 진정한 문학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당대 최고의 지성이 구축해낸 철학이니 쉽게 읽을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겠지. 글이란 문체는 가능한 한 없어야 하는 대신 사상이 뒤따라와야 한다고 말하던 사르트르지만, 분명 그의 글 속에도 자신만의 논리를 엮을수 있게 만든 문체가 존재하고 독자는 그의 사상을 뒤따라가야 가면서 이해해야하므로 그리 쉽게 읽히지는 않는다. 그의 텍스트를 읽다보면 사람이 어떻게 이런 짧은 문장들 속에 이렇게나 많은 생각들을 농축해낼 수 있는지 놀랄때도 많다.

 

그가 생각한 작가로서의 의무는 언어를 이용하여 사상을 전개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와 시인은 다르다. 작가는 산문가이고 시인은 운문가라는 표면적인 이유때문이 아니라, 시인은 언어를 이용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화가에게 있어 그림은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자신이 받은 영감을 그저 보여주는 것 뿐인것처럼, 시인에게 있어 언어 역시 그저 보여질 수밖에 없는거다. 사르트르는 작가와 시인을 철저하게 분리하며, 시인과 화가와 음악가를 예술가의 범주에 놓는 대신 작가는 감히 예술의 경지에 접근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인식한다. 작가에게 있어 언어란 우리 신체의 팔과 다리같이 이용할 수 있는 것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일 뿐이고, 그것을 통해서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표현해 내'야 한다. 직관은 침묵이지만 직관에서 그치지 않는 것이 바로 작가가 해야할 일이고, 반드시 표현해 내어 타인에게 전달할 수 있는 매개체를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단지 매개화 된 텍스트를 만들어 내었다 해서 작가라고 생각하지는 않는 듯하다. 독자가 없다면 그것들은 단순히 종이에 흐트러진 검은 잉크 자국들일 뿐이고 언젠가는 썩어 없어지면 그만인 거름이나 마찬가지다. 작가가 나열한 문장들은 이미 작가의 머리 속에서도 벗어났기 때문에 그것이 다시 재현되려면 반드시 그 글을 읽는 독자가 존재해야 한다. 독자가 텍스트를 따라 가면서 자신의 머릿속으로 작가의 메시지를 형상화 하였다면 그 글은 드디어 (최소한의)효용성을 발휘한 것이다. 여기서 사르트르의 참여 정신의 기본이 나온다. 그에게 있어 작가란 독자가 있어야 비로소 완성될 수 있으며 형상화 된 메시지는 전달되어야만 그 역할을 다하게 된다. 그러므로 사르트르는 사후의 명예란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조소했으며 현재 자신이 살고있는 시대의 사람들과 소통하고 참여하는 문학이 더 가치가 있는 것이라 생각했던 게 아닐까 싶다.

 

 

P.S 그의 엄청난 생각의 홍수에 빠져보고 싶으면 꼭 읽어보시길.(차마 요약할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