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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후에 오는 것들(츠지 히토나리)

gowooni1 2009. 12. 8. 18:32

 

 

 

사랑 후에 오는 것들(츠지 히토나리)

저자 츠지 히토나리  역자 김훈아  
출판사 소담출판사   발간일 2005.12.20
책소개 섬세한 문장으로 공감대를 형성하는 작가 공지영과 냉정과 열정사이의 작가 츠지 히토나리가 공동집필한 ...

 

 

츠지 히토나리는 소설을 쓰면서 연애를 하는 사람이다(적어도 내게는 그리 보인다). 십여년 전 청아한 단어를 사용하는 에쿠니 가오리와 섬세한 단어를 사용하는 츠지 히토나리의 '냉정과 열정사이'를 읽은 이후 나라는 한 개인의 머릿속에는 그런 이미지가 각인되었다. 그는 바람둥이다. 잠깐 한국 최고 여류 작가 공지영과 '사랑 후에 오는 것들'로 외유를 하더니 얼마전에는 '좌안과 우안:큐이야기'로 다시 에쿠니에게 돌아갔다. 노벨리스트라는 직업을 이용하여 공개적으로 연애도 하고 바람도 피우니, 참 수완도 좋은 작가다.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은 2005년 한일교류의 해를 맞아 공지영과 츠지 히토나리가 함께 기획하고 출판한 연애소설이다. 가깝지만 서로 먼 나라인 한국과 일본, 그리고 그 나라를 대표하는 작가들이 일종의 사명감을 가지고, 무엇보다 가장 친숙하지만 또 가장 혐오의 감정으로 변할 수 있는 연애라는 정서를 이용하여 대중소설을 썼다. 공지영은 한국 여자 '최홍'이 되어, 그리고 츠지 히토나리는 일본 남자 '준고'가 되어 대륙 끝에 붙어 있는 나라 여자의 정서와 섬나라 남자의 정서를 '제법' 실감나게 표현했다.

 

'제법'이라는 수식어를 쓴 이유가 있다. 최홍과 준고가 벌이는 감정의 교류와 다툼을, 단순히 한 여자와 남자의 사랑싸움이라고 보면 크게 문제가 없었을거다. 하지만 그들이 서로의 나라에 작품을 번역하고 출간한다는 목적 하에서 썼다면 스케일이 달라진다. '최홍'이라는 여자는 자연스럽게 '한국 여자'를 대표하는 캐릭터가 되어버리고 '준고' 역시 보편적 일본 남자를 대표하는 인물로 독자들은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 입장에서는 준고를 보며 '아니, 일본 남자들은 다 이래?'라는 생각을 할수 있고, 자연스럽게 그쪽 입장에서는 '한국 여자들은 다 이런 식인가?'라고 여겨질 가능성이 커진다.

 

문제 1. 최홍은 카톨릭 신자다.

여기서 준고는 이렇게 받아들인다. '한국인들은 대부분 종교를 가지고 있어, 종교적 신앙이 거의 없는 일본인들을 이해하기 힘든가보다.' 하지만 이건 명백한 오류다. 우리나라 사람이 일본인에 비해 확실히 신앙을 가진 사람이 많긴 하지만, 한국인도 신앙을 갖지 않거나 혹은 있다 해도 크게 거기에 좌우되지 않는 사람이 엄청 많다. 한국인 역시 부처님오신날에는 절에 가고 크리스마스에는 캐롤을 듣고 성탄절을 즐긴다. 최홍이 카톨릭 신자로 나오는 것은 순전히 공지영 개인의 종교가 투영되었을 뿐이다.

 

문제 2. 일본 남자들은 전부 미안하다는 말을 잘 못하고 소극적이다.

이 소설 속의 주인공 준고는 냉정과 열정사이의 남자 주인공과 그 성격이 꽤 오버랩된다. 좋아하는 여자가 떠나지 않고 자신과 함께 있을 때에는 사랑을 나누지만, 자신을 떠나가버리면 한번 붙잡지도 못하고 그저 폐인이 되어 속앓이만 끙끙하고 있는 소심한 남자. 준고 역시 최홍이 자신의 집에 눌러앉아 살면서 함께 아침을 맞이하던 일년 동안은 그녀를 사랑했지만 최홍이 그를 떠나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단 한번도 그녀를 잡지도 못하고 (7년간 그녀를 잊지 못하고 다른 사랑도 하지 못했으면서도) 한국에 찾아온 적도 없다. 적극성 제로, 행동력 20%. 여기서 행동력을 그나마 20% 매긴 이유는 7년동안 최홍을 잊지 않고 그녀와의 추억을 소설로 담아낸 준고의 노력 + 마지막에 결국 한국에 와서 그녀를 만나기 위해 애를 쓴 5일간의 노력을 높이 샀기 때문이다.

 

명백히 최홍은 공지영 작가의 성격이 반영되었고, 준고는 츠지 히토나리의 성격이 반영되었을거다. 개인의 성격 문제를 한 국가의 여성 남성이 지난 성향으로 과대판단하여 읽지만 않는다면 충분히 국적이 다른 두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즐기며 읽을 수 있다. 제목 그대로 사랑 후에 오는 것들, 후회감, 질투, 자신감 결여, 극복과정 등이 잘 나타나 있으며 끊임없이 과거를 회상하는 방식으로 서술되어 있는 이 작품은 마치 한 남자의 담담한 일기를 읽는 것 같아 즐겁다. 회귀 중에는 일본이 배경으로 현재에는 한국이 배경으로 전개되며 츠지 히토나리의 남자답지 않은 아름다운 단어 선정과 섬세한 문장으로 인해 읽는 사람의 마음마저 정화되는 기분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