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중독-Reading/문학*문사철300

Bonjour tristesse, 슬픔이여 안녕

gowooni1 2009. 12. 4. 18:10

 

 

 

슬픔이여 안녕

저자 프랑수와즈 사강  역자 김희동  원저자 Sagan, Francoise  
출판사 푸른나무   발간일 2000.09.15
책소개 18세 소녀 세실이 세상에 조금씩 눈 떠 가는 과정과 그 속에서 느끼는 방황과 아픔을 섬세하게 그려...

 

프랑소와즈 사강은 18세라는 이른 나이에 '슬픔이여 안녕'을 발표하여 일약 스타 작가가 되었다. 발표 1년만에 33만부라는 기적적인 수를 기록한 이 책은 베스트셀러는 물론 세계 문학 반열에 올랐고 같은 해 1954년 사강은 문학비평상을 수상하며 부와 명예를 걸머쥐었다. 너무 이른 나이에 찾아온 세속적 영광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그녀 안에 내재된 어쩔 수 없는 천성 때문이었을까? 그녀는 일평생 술과 담배, 도박, 남자라는 자기 파괴적인 취향에 빠져 살면서 문학을 했다. 유복했던 어린 시절도, 성인이 되기도 전에 찾아 온 남부러울 것 없는 삶도 그녀의 고독을 치유해주지 못했다. 그녀 일생 중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아마, 방탕한 일평생을 마치고 한푼도 없는 상태에서 병으로 죽어가면서 후회없는 인생을 살았다고 말하던 순간일지도 모르겠다.

 

 

어디까지가 작가의 경험이 반영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슬픔이여 안녕'에는 분명 사강 자신의 삶이 상당이 녹아 있다. 18살의 어린 소녀 세실은 사강의 불량기를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캐릭터다. 세실은 10년이라는 기간동안 수도원에서 지내다 나온 소녀지만 애초에 수도원 생활은 그녀에게 맞지 않았다. 그녀는 좀 더 방탕한 생활, 술 마시고 담배 피우고 숙취에 골머리를 앓으면서도 이튿 날 오전을 일광욕으로 느긋하게 보내는 자신의 삶의 방식을 마음에 들어한다.

 

세실의 그런 건전치 않은 생활을 방임하는 그녀의 아버지도 범상치 않다. 세실의 아버지 레이몽은 아내가 죽고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홀아비 신세를 즐긴 40살의 중년 남자다. 레이몽은 분명 여자를 사랑하고 책임감도 어느정도는 가지고 있지만 그보다 쾌락 앞에서 무릎을 꿇고 마는 못말리는 바람둥이에 난봉꾼이다. 세실은 그런 아버지를 싫어하지도 기피하지도 않으며 오히려 그런 삶의 방식을 존중하고, 그런 레이몽 역시 자기 딸의 삶의 방식에 미주알 고주알 잔소리를 늘어놓지 않는 친구같은 아버지로 존재한다. 

 

레이몽와 세실, 그리고 레이몽의 일시적인 애인이자 고급 콜걸인 엘자는 여름 휴가를 맞이하여 프랑스 남부 해변에 별장을 빌려 즐거운 한때를 보낸다. 그들의 휴가는 완벽한 것처럼 보인다. 지극히 쾌락적이고 하는 일 없이 인생을 그저 즐기면서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 세명에겐 너무도 자연스럽다. 게다가 세실에게는 이웃 별장에 휴가를 맞이해 놀러온 멋진 남자친구마저 생긴다. 느긋하게 일어나서 아침을 먹고 일광욕을 하다가 오후가 되면 뜨거운 해변으로 나가 수영을 즐기고, 새로 사귄 남자친구와 관능적인 한때를 보내며 이성과의 미묘한 쾌락을 즐기는 이 휴가는 세실의 입장에서는 더 이상 바랄게 없을 정도다. 아니 이 상태를 조금이라도 망치려 드는 자가 나타난다면 저주를 퍼부을 기세다.

 

그러던 중 그들 앞에 전혀 다른 종류의 인간인 안느가 등장한다. 안느는 죽은 세실 어머니의 오래된 친구로 한동안 세실을 보살펴준 적이 있는 여인이다. 세실은 안느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그녀는 엄격하기 때문이다. 쾌락에 쉽게 무릎을 꿇는 자기네 삶의 방식을 경멸하고 질서와 조화, 고요와 자제, 기품과 지성이 겸비된 이 여인을 존경은 하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자신을 경멸하는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을 좋아할 수는 없는 것이다.

 

레이몽의 초대로 3명의 쾌락주의자 앞에 나타난 안느는 여러 사람에게 긴장을 늦출 수 없게 만든다. 지금까지 보아오던 예쁘고 천박한 여자들과 달리 우아하고 이지적인 안느에게 레이몽은 사랑을 느끼고, 그렇게 변해가는 레이몽 때문에 엘자는 가슴을 졸인다. 그뿐만이 아니다. 공부를 해야하는 중요한 시기에 그저 아무 생각없이 놀기만 하고 남자와의 방탕한 관계를 갖는 어린 세실에게 안느는 자제를 요구한다. 그리고 그 나이 또래 아이들이라면 흔히 그렇듯 세실은 자신에게 잔소리를 늘어놓는 안느를 경멸한다. 그녀와 보내는 시간이 하루라도 빨리 단축되기를 바라게 된다. 수를 써서라도 안느를 내쫓든, 여름 휴가가 끝나 빨리 파리로 돌아가게 되든 말이다.

 

하지만 그녀와의 관계가 쉽게 끝나지 않게 되었다. 레이몽이 안느를 사랑하게 되었고 둘은 파리로 돌아가 결혼을 하기로 약속을 했기 때문이다. 즉 세실은 안느를 미래의 어머니로 받아들여야 할 상황에 처했다. 세실은 공부도 하지 않고 머리에 든 것도 많지 않지만 영악하다. 그리하여 머리를 쓰는데, 엘자와 자신의 남자친구를 이용하여 레이몽의 질투를 불러 일으키고 레이몽과 안느가 결국 헤어지게 되는 상황을 연출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이 모든 과정, 세실의 심리 계산이 맞아떨어지는 상황, 반대로 점점 안느와 그녀가 불어들인 조화롭고 평화로운 건전한 삶에 익숙해지는 세실, 그러나 결국 레이몽이 난봉꾼 기질을 버리지 못하고 엘자를 찾아가는 상황과 배신당한 안느가 떠나가는 상황을 절묘하게 묘사한 사강의 문장은 '과연 이게 정말 18살의 어린 소녀가 쓴 것이 맞는가'하는 놀라움을 자아낸다. 세심함은 말할것도 없고 그녀가 묘사를 위해 선택한 단어들의 수준은 프랑소아즈 사강의 '천재 작가'라는 타이틀을 무색하지 않게 해준다. 평범해 보이는 상황들에서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모든 감정들을 놓치지 않고 의식의 흐름과 상황의 설명을 자연스럽게 엮어 보여준 사강의 18세 당시 내공이 대단하다. 

 

참고로 '슬픔이여 안녕!'의 원제는 Bonjour tristesse로, 슬픔과 헤어지겠다는 의미가 아닌, 기꺼이 슬픔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겠다는 뜻이다. 왜 세실이 슬픔을 인생의 한부분으로 받아들여야만 했을까? 그 이유는 작품을 읽어보면 알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