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중독-Reading/문학*문사철300

자기만의 방(A Room of One's Own)

gowooni1 2009. 11. 17. 20:43

 

 

 

자기만의 방

저자 버지니아 울프  역자 손영도  
출판사 고려대학교출판부   발간일 2008.02.25
책소개 실험적인 소설 형식을 시도해 독창적인 작품들을 발표한 여류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 대표작. 원어의 ...

 

영국의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는 천부적 재능을 소유한 문인이지만, 그녀가 선구적 페미니스트라는 별칭을 얻게 된 데에는 그 재능을 넘어 시대를 제대로 타고났기 때문이다. 만약 그녀가 1882년보다 훨씬 옛날인 중세, 아마 귀족을 제외한 평민 남녀 모두가 문맹이었을 그 옛날에 태어났다면 그녀의 정신은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다른 여자들처럼 깨어나지도 못한채 묻혔을 것이고, 그보다 훨씬 나중인 요즘같은 여성 사회적 활동이 이미 활성화된 시대에 태어났다면 특별히 페미니즘을 이끈 여성이 되기엔 늦었을테니 말이다. 물론 그녀는 천재이므로 한 시대의 획을 긋는 문인이 되었을 것에는 의심하지 않는다.

 

버지니아 울프(Adeline Virginia Woolf)

1882년 1월 25일 ~ 1941년 3월 28일

 

울프는 1928년 즈음엔 이미 사회적 명성을 확고히 했던 중년의 여성이었다. 선구적 페미니스트라는 명성때문에 여러 대학에 출강하며 또 소설가로서 인정을 받은 그녀는 '여성과 픽션'이라는 주제로 인해 강의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그리하여 탄생한 것이 바로 그녀의 대표작 중 하나인 '자기만의 방'이다. 자기만의 방을 독서하려면 비교적 짧은 텍스트임에도 불구하고 약간의 집중이 필요하다. 이유는 그녀가 강의를 하던 말을 그대로 옮겼기 때문에 글을 위한 글은 아니기도 하고 또 무엇보다 그녀가 즐겨 사용한 '의식의 흐름'의 기법이 나타나있기 때문이다. 나와 전혀 별개의 사람의 의식의 흐름에 집중을 한다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독자와 저자의 의식 흐름 패턴은 결코 같을 수 없기 때문이다.

 

버지니아 울프의 정신병력은 그녀가 결혼 직후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나서 '또 한 번' 실패한 자살 기도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다. 하지만 과연 그녀가 아이를 가질수 있었다면 그녀가 문학적 성공을 거두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그녀 역시 브론테 자매와 엘리엇, 오스틴 같은 여성 작가의 예를 들며 그들의 공통점이 바로 아이들이 없었다는 점에 주목한다. 하지만 그녀가 여성이 픽션을 쓰는데 있어 반드시 아이가 없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건 우연히 찾아낸 극히 일부의 공통점에 불과하며 무엇보다 울프가 주목한 것은 책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는 것처럼 '자기만의 방'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였다.

 

여성들에게는 옛부터 자기 고유만의 방은 커녕 돈도 없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는 울프는, 과연 여성들에게 각자의 방이 있었고, 또 부모나 남편에게 기대지 않아도 좋을만큼의 충분한 돈이 있었더라면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지를 묻는다. 제인 오스틴은 공동의 거실에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방해를 받으며 몰래 몰래 작업을 하여 겨우 '오만과 편견'을 만들어냈다. 샬롯 브론테의 '제인 에어'에서는 작가의 생각의 흐름이 갑자기 멈추고 상황을 설명하는 다소 어색한 부분들이 존재한다. 이는 그녀가 제인 에어를 쓰고 있는 중에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방해를 받았을 것을 암시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 오랜 역사 중 여성 문인으로 이름을 남긴 사람이 고작해서 다섯 손가락을 오가는 상황인데다 그나마 작품을 남긴 여성들마저도 그처럼 불완전한 소설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던 것을, 울프는 '방'과 '돈'의 문제로 결론지은 것이다.

 

 

다소 유복한 가정에서 자란 울프에게 어릴 때부터 '방'이라는 조건은 충족되었을 거다. 하지만 '돈'의 문제는 달랐다. 그녀는 그녀와 이름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얼굴도 잘 모르는 숙모가 낙마하여 죽은 뒤 남긴 연간 오백 프랑이라는, 소박하지만 그래도 생활 유지는 가능한 유산을 받고나서야 생계를 위한 노력에서 겨우 벗어날 수 있었다. 그전까지 신문사에 구걸을 하여 시시껄렁한 기사를 쓰며 돈을 벌긴 했지만 생활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던 울프는 '남들에게는 보잘것 없는 재능일지라도 그 자신에게는 그것을 묻혀두며 사는' 삶이 얼마나 무의미한 일인가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연간 오백 프랑만 있으면(먹고 사는 데 지장만 없는 정도) 사람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수 있는데에도 어찌하여 그보다 더 많은 돈을 원하는 사람이 많은가에 대해 의문스러워 한다.

 

하지만 그건 주제에서 벗어난 일이다. 다시 돌아와 주제에 집중을 해보자면 역시 가장 중요한 건 어느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을 수 있는 조그마한 방과 자신의 몸 하나를 지구상에서 유지할 수 있는 돈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이토록 '돈'의 문제를 강조하는 것이 지나치게 속물적으로 비치지는 않을까 하며 청중들에게 우려를 표하긴 했지만 그것만은 절대적인 조건이라고 다시한번 강조한다. 주제가 여성과 픽션이었고, 즉 여성이 픽션을 쓰기 위해 필요한 것을 말한 책이었으니 어쩌면 글을 쓰려는 목적이 없는 여성에게는 별 필요없는 내용이 아닐까 하는, 그런 우려는 필요없다. 글을 쓴다는 행위를 진정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로 치환해서 생각해보면 이 21C 지구를 사는 모든 여성들에게 적용되는 정신이기 때문이다. 아니, 아마 여성은 물론 남성에게도 적용되는 정신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