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상-Daily/영화-MOVIE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

gowooni1 2009. 4. 6. 21:40

케이트 윈슬렛을 특별히 좋아하는 것도 아닌데 우연히 그녀가 나오는 영화만 연속적으로 보게 된 이유는 아무래도 각종 여우주연상을 휩쓸었다는 화려한 간판의 영향이니, 스스로 영화를 고르는 안목이나 나만의 취향이 있다고 우기기에는 지나치게 대중적이 아닌가 싶다.

소설의 원작자는 베른하르트 슐링크로 독일의 법조계에 몸을 담고 있는 현직 판사이자 법대 교수이다. 그리고 그가 이 책을 쓴 것은 1995년 이니 벌써 14년도 더 전이다. 어찌하여 이렇게 뒤늦게 영화화되었는지야 영화를 만든 사람들만이 알 터이다. 케이트 윈슬렛도 이 소설을 이미 6년 도 더 전에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이 소설이 영화화 된단 말이지, 내가 한나 역을 했으면 좋겠다'고.

 

 

그러나 그때 케이트는 임신중이었고 캐스팅은 니콜 키드먼에게로 넘어갔으나, 촬영이 어느 정도 진행된 도중 이번엔 키드먼이 임신하는 바람에 원래 캐스팅 되었던 윈슬렛에게로 역할이 다시 돌아왔다. 이미 그녀는 아이를 낳아 원래대로 몸이 돌아와 있는 상태였고, 그리하여 여러 우여곡절 끝에 이 영화는 탄생되었다.

 

 15살의 소년 마이클은 학교에서 돌아오는 도중 구토를 하며 쓰러지기 직전이고, 이를 발견한 한나는 그의 얼굴을 씻어주며 집까지 데려다준다.

 한나는 마이클보다 21살이나 더 많은 36살. 충분히 엄마뻘이 되고도 남을수 있는 나이다. 후에 병이 다 나은 마이클은 한나에게 꽃을 사들고 감사의 표시를 하러 가게 되지만 옷을 갈아입는 한나에게 십대 소년의 성욕 등이 섞인 묘한 감정을 느끼게 되고 그 자리를 도망치게 된다.

 그러나 한나에 대한 생각이 잊혀지지 않던 마이클은 다시 그녀에게로 돌아오게 되고 둘은 그날로 성적인 관계를 갖는다. 당황해하는 마이클에게 한나는 '이렇고 싶어서 온 거 아니냐'고 묻는다. 성숙한 여인인 한나와 달리 처음으로 이성과 깊은 관계를 갖는 마이클은 언제나 그녀에게 육체적으로나 감정적으로 끌리며 매달리는 쪽이 되어버리지만 그녀가 냉정하게 나오면 나올수록 더욱 그런 그녀에게 끌릴수밖에 없다.

그들에게 책이 끼어들면서 한나는 그들이 관계를 갖기 전에 먼저 책을 읽어줄 것을 요구한다. 그리하여 그들의 관계는 책-목욕-사랑 의 순서로 정립된다.

 그러던 어느날 마이클은 부활절이 낀 주에 여행을 하자고 제안을 하며 계획에 대해 의논하려 한다.

 하지만 한나는 계획같은 것은 마이클에게 세우라고 하면서 마이클이 보여주려는 책이나 지도같은 것에 관심을 전혀 두지 않는다. 

그들은 그렇게 자전거 여행을 떠나고 유럽 전원을 배경으로 한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진다. 그러나 그렇게 아름다운 화면을 비롯하여 영화 전반에 걸친 음악은 무척 무거운데 그건 영화의 분위기를 침울하게 이끈다.

 식당 주인에게는 엄마와 아들로 보이는 사이지만 그들은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든 아랑곳하지 않고 그들만의 하이킹을 즐긴다. 중간중간에 지도를 펼쳐보이며 여기가 어딘지 알려주려고 하지만 한나는 그런거 알 필요 없다고 하면서 결사코 알기를 거부한다. 마이클은 단지 그런 한나가 현재를 즐기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던 중 차장으로 일하고 있던 한나는 회사에서 승진제안을 받게 되고, 승진제안을 받은 날 마이클과 마지막 관계를 가진 한나는 갑자기 어디론가 사라진다. 여기까지가 소설로 치면 총 3부 중 1부까지의 줄거리다.

 2부 부터는 그로부터 8년이 지나 법대생이 된 마이클이 피고인으로 소송된 한나를 법정에서 보게 되면서 시작한다. 그러나 영화의 스틸컷은 거의 1부밖에 구할수 없어 아쉽다.

 

법정에 소환된 한나의 이야기부터 한나가 나치하의 수용소 감시원이었던 과거 시절부터 문맹이라는 치명적인 사실을 끝까지 들키지 않기 위해 혼자서 죄를 뒤집어쓰고 무기징역을 선고받는 이야기, 그때쯤이면 이미 한나가 문맹이라는 사실을 눈치챈 마이클과 그 치부를 유일하게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코 그녀를 위해 아무것도 해주지 않는 그의 이야기 등이 펼쳐진다. 마이클은 글을 못 읽는 그녀를 위해 책을 녹음하여 그녀가 살고 있는 수용소로 테이프들을 보내주고, 드디어 감옥에서 혼자 조금씩 글을 읽게 된 한나가 마이클에게 짤막한 편지들을 써 보낸다. 너무 늦게 글을 배워서 더 안타까움을 주는 한나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도 답장을 써보낸 적이 없는 마이클에겐 어떤 벽이 있는 걸까. 한나는 가석방되기 일주일 전 찾아온 마이클을 보고 그 벽을 느꼈는지, 석방되기 하루 전 목을 매달아 자살하고 만다.

 

한나는 모든 것이 늦다. 글을 배운 것도 늦고 자살한 것도 늦다. 세상 살면서 치부를 들키지 않기 위해 문맹이라는 것을 철저히 숨기고 싶어 무기징역까지 감수할 마음이었다면 진작 글을 배웠어야 한다. 20년이 넘는 감옥살이를 하다가 외부 세상이 아무도 자기를 반겨주지 않는다고 생각했다면 옥살이 초반에 자살을 했어야 한다. 모든 것이 아쉽고 한발 늦은 그녀의 삶은 그래서 더 안타깝고 슬프게 다가온다.

 

케이트 윈슬렛의 연기력은 계속 감탄스럽다. 레볼루셔너리 로드만큼 개인의 감정을 격정적으로 폭발시켜서 놀라운 것이 아니라 이번에는 그 반대다. 자신의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한나의 억압된 심정을 잘 표현한다. 자신이 그저 예쁘기만 한 배우가 아니라는 것을 그녀도 잘 알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저렇게 일반적이고 평범한 역할들을 맡지는 않을 거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연기할 수 있는 역할이 많아진다는 것과 그럴 기량이 함께 따라와 준다는 것은 배우로서 꽤 괜찮은 삶이다. 

 

영화에 대해 말하자면, 금세기 최고의 로맨스는 사실 과찬이다. 감옥으로 책을 녹음한 테이프를 십수 년 간이나 보내준다는 것은 감동적이지만 그것은 순전히 그녀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어린시절,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주인공의 바람이 더 크게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최고의 로맨스가 되려면 마이클은 그녀에게 답장을 보내야했고 지속적 감정교류를 통해 그녀가 자살할 마음이 들만큼 외롭게 만들어서는 안되는 거였다. 그러나 그런 영화의 결말이 불만이라기 보다는 터무니없는 저 칭찬이 불만이다.

 

한가지 덧붙이자면 마이클은 원래 미하엘이다. 독일어를 배운지 오래되어 기억은 안나나, 아마 마이클과 미하엘의 철자가 같을 것이다. 마이클은 독일이 배경인 이 영화에서 지극히 미국스러운 이름이다. 하지만 영화 자체가 영어로 만들어졌으니 이부분을 논하기에도 좀 우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