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중독-Reading/문학*문사철300

회색 노트

gowooni1 2009. 10. 13. 19:10

 

 

 

회색노트

저자 로제 마르탱 뒤 가르  역자 이휘영  
출판사 문예출판사   발간일 2007.02.25
책소개 노벨문학상 수상작 사랑과 고독의 폭풍 앞에 선 소년의 성장 이야기. 가르의 대하소설 『티보 가의 ...

 

로제 마르탱 뒤 가르는 '레 티보'(우리 나라에서는 '티보 가의 사람들'이라는 이름으로 출판되었다)를 대표작으로 프랑스에서 문학 활동을 한 문인이다. 지드나 샤르트르처럼 문단에서 견고한 위치를 확보할 만큼 대단한 작가였지만 그는 어느 쪽으로도 정치적 성향을 내비치지 않고 비교적 중립적인 위치에서 작가 사이를 우호적으로 연결시켜주는 평화주의자이기도 했다. 그러나 지드가 죽고 나서 '앙드레 지드에 대한 회상'을 발표할 만큼 지드와의 교우 관계는 각별하였다.

 

회색노트는 총 8장으로 구성된 대하 소설 '레 티보' 중 제 1장에 속하는 내용으로 이 긴 대하 드라마의 첫번째 에피소드다. 아직 중학생인 자크와 다니엘이 서로에게 끌리면서 뜨거운 우정을 나누게 된다. 그 둘은 회색 노트인 교환일기를 주고 받으면서 서로에 대한 감정을 확인하며 어린 소년들의 감정적인 애정 교류에 푹 빠지고 만다. 하지만 종교적인 집안에서 태어나 엄격하게 자란 자크가 프로테스탄트라고 알려져 있는 퐁타냉 가의 다니엘과 어울리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다. 마을에서 자크의 아버지 티보는 명망있는 사람이지만 퐁타냉 가의 사람들은 있으니까 마지못해 인사만 하는 그런 자들이었던 거다. 다혈질에 기분이 내키는대로 행동하는 자크는 결국 다니엘을 설득하여 자신들의 우정을 마음껏 교류할 수 있는 곳으로 도망가기로 하고 둘은 함께 가출을 한다.

 

회색 노트를 읽다보면 오버랩되는 소설이 하나 있는데, 그건 바로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다. 어느 한 사람의 입장에서만 서술하지 않고 모든 등장인물의 심리를 한번씩 조명하여 풀어 나가는 방식. 실제로 로제 마르탱 뒤 가르는 톨스토이의 영향을 받아 소설을 창작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고등중학교를 마칠 무렵인 17세 때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읽고 '여러사람의 등장인물과 무수한 삽화를 가진 수명이 긴 소설'을 쓰려는 방향이 결정되었다고, 위키 백과에 검색해보면 나온다. 과연. 회색노트 한 권만 읽어도 그런 작가의 경향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다. 티보의 입장에서 퐁타냉, 자크, 다니엘, 앙투안 등 모든 등장인물이 각 장에서 한번씩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방식이다.

 

제 1장인 회색노트에서 자크는 열 네살의 어린 소년이기 때문에 어른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사춘기 소년의 방황과 고뇌, 감정에 비해 미숙한 자제력 등이 잘 묘사되어 있다. 자크와 다니엘이 주고 받는 회색노트의 서간문만 보아도 이제 막 시 창작의 열의에 빠져 분출하지 않고는 못배기는 어린 소년들의 설익은 문장들이 생생하게 전달된다. 자크를 보며 자신이 아닌 타인과 다른 무엇에 처음으로 빠진 적은, 그래서 그것이 없이는 도저히 하루도 살 수 없었던 적이 언제였던가 하는 생각도 해본다. 분명 우리는 모두 세상과 절대로 타협할 수 없을것 같은 불같은 때를 거쳐오긴 했는데, 그게 언제였고 어떤 식으로 지나쳐 왔는지에 대해서는 잘 기억 못할 때가 많다.

 

로제 마르탱뒤가르 (Roger Martin du Gard, 1881~1958)

 

가르의 문체의 가장 큰 매력은 담담함이다. 지나치게 꾸며 읽는 사람을 질리게 하는 구석도 없고 간결하게 묘사하였는데 그게 바로 가르가 목적한 바이다.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만이 아니라 문학을 즐기지 않는 사람들이라도 재밌게 읽을 수 있는 범문학을 추구한 그는 사람이 살아가면서 보편적으로 겪는 문제들을 다루고자 하였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통용될 수 있는 문학을 완성했다. 그렇지만 그의 문학이 통속적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 내가 굳이 변명할 이유도 없이, 로제 마르탱 뒤 가르는 이 작품으로 1937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