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자는 혼자다'
참 외롭고도 잔인한 말 아닌가?
승자는 오직 한 명 뿐이고, 그 자리에 올라선 사람들은 뼈에 사무치는 외로움을 느끼게 되며, 한 번 오른 그자리를 사수하기 위해서 끝없이 홀로 그 길을 걸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외로운 승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지 결코 덜 외로운 패자가 되려하지는 않는다.
이전의 파울루 코엘료의 분위기를 기대했다면 오산이다. 슬픈 현실을 보여주는 제목과 같이 소설의 내용 역시 인간사 허망함을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그러니까 평소 그의 저서를 즐겨읽던 독자라면 으레 그러하던 것처럼 '그래도 뭔가 가슴 따듯한 메시지가 있을거야'라는 기대는 하지 말라는 뜻이다. 이번에는 자아의 신화를 이루라는 저자의 자애로운 다독임을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두종류로 분류된다. 슈퍼클래스(승자)인 자들과 아닌자. 물론 아닌 자들은 슈퍼클래스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전 재산을 걸고 한 번의 기회를 만들기 위해 눈물겨운 노력을 하고 속은 텅텅 비어있으면서도 있는 척 허세를 부려야 한다. 하지만 속이 비어있는 건 승자를 쫓는 그들만이 아니다. 이미 모든 것을 가진 슈퍼클래스 역시 내면적 허망함을 감추기 위해 더욱 화려한 생활을 영위해야 한다. 그들은 억지로 명랑한 척 해야하고 바쁜 척 해야하며 끊임없이 자신이 잘 나간다는 사실을 만인에게 각인시켜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여기서 '승자는 혼자다'가 어찌하여 고독한 책인지 드러난다. 사람들이 만들어 낸 환상 속의 승자가 되기 위한 사람들도, 그 환상 속의 승자들도 모두 진정한 자신이 되지 못한 채 허황된 삶을 좇기 때문이다. 아무도 진정한 자아의 신화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 자신을 버린 아내를 되찾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는 사이코패스 이고르도, 다른 남자와 결혼을 했지만 결국 남자에게서만 자신의 인생을 찾아보려 한 아내 에바도, 그리고 기타 다른 등장인물들도 전부 내면이 충만한 자들이 아니다. 하긴 자본주의와 승자독식사회가 만들어낸 거짓 풍요에 진정으로 내면적 충만을 이루려 노력하는 사람들이 이 사회에 얼마나 될까. 여기서 저자의 시니컬한 시선이 드러나는 것이다. 그는 이런 사람들을 등장인물로 선택함으로서 우리들의 현실을 제법 날카롭게 지적하였지만, 그래서 이 소설은 제목만큼이나 시니컬하고 우울하게 되어버렸다.
외로운 승자가 되지 말라는 말도, 그렇다고 외롭지 않은 패자가 되라는 말도 하지 않는다. 그저 행복하게 보이기만 했던 슈퍼클래스들도 그 누구보다 허망하기 그지없는 삶을 영위하고 있다는 것을 통해, 아직 승자가 되지 못한 자들에게는 어떤 식으로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야 할지 생각해보게 한다. 그리고 이미 슈퍼클래스인 자들이 이 책을 읽고 씁쓸하지만 이게 현실이지, 하고 생각했다면 헛살은 거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덮으면서 다소 실망할 수는 있어도(미리 말했지만 이전의 저작들과는 다르니) 실망에서 끝나버리는 것도 헛읽은 거다. 적어도 내가 이미 슈퍼클래스라면 무엇을 추구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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