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중독-Reading/문학*문사철300

절망의 구

gowooni1 2009. 9. 1. 22:35

  

 

 

절망의 구

저자 김이환  
출판사 예담   발간일 2009.08.13
책소개 어느 날, 사람들을 흡수하는 정체불명의 구가 나타났다!2009년 제1회 '멀티 문학상'을 수상한 김...

소설을 읽는 자는 책을 고르면서 적어도 두 가지 정도는 기대한다. 재미가 있거나 감동을 주거나. 재미도 있고 감동도 주는 소설을 만나면 금상첨화겠지만 이 세상에 그렇게 멋진 소설은 의외로 적다. 재미만 있어도 우리는 보통 소설을 즐긴다. 재미에도 여러 종류의 재미가 있는데 웃기거나 긴장감을 주거나 지적 유희를 안겨주거나 하면 우리는 그 소설을 재미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재미와 감동에는 어떤 관계가 성립한다. 여러 종류의 재미가 혼합된 다음에 그것으로부터 어떤 위대한 감동이 도출되기는 가능하지만 감동을 주는데에도 재미가 없는 소설은 별로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감동과 재미를 다이어그램으로 표현하자면 감동이 재미를 감싸안고 있을거다.

 

'절망의 구'는 긴박감이라는 재미를 가지고 요리한 이야기다. 긴박감을 조성하는 플롯 중 가장 대표적인 도주의 플롯을 사용했다. 추격자와 쫓기는 자의 치열한 시간싸움은 공포와 긴장을 조성하여 독자를 한 순간 소설의 세계로 끌어당긴다. 이럴 때 보통 독자가 몰입하게 되는 심리는 쫓기는 자 쪽이며 함께 위급한 순간과 소름끼치는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는 사람들은 보통 이런 순간에 맞닥뜨리는 일이 없으므로 주인공이 겪는 긴박감을 함께 느끼며 즐기는 것이다.


절망의 구는 전형적인 스토리 위주의 보여주기식 소설이다. 스토리가 전부이다시피 한 이런 류의 소설에서 줄거리를 요약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아무 것도 알지 못한 백지 상태에서 읽어 들어가야 온전히 감상할 수 있는 소설이지만, 허용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이렇다할 것은 없지만 스스로는 평균이상이라고 생각하는 자의식 덩어리의 평범한 서른 두살의 남자 주인공은(이런 성격의 주인공은 절대 독자를 매혹할 수 있는 힘이 없다. 다만 스토리를 작가의 생각대로 끌고 나갈 수 있는 역할을 할 뿐이다) 담배를 사러 편의점에 다녀오는 길에 지름 이미터 가량의 검은 구를 발견한다. 검은 구만 발견한 것이 아니다. 검은 구가 사람을 마치 블랙홀처럼 끌어들여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하는 모습을 최초로 목격한 것이다.


멀쩡한 사람이 검은 구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모습을 본 남자는 공포감에 사로잡히고 곧장 검은 구와 가장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기 위하여 도망을 치기 시작한다. 먼저 자신의 부모가 살고 있는 도시에 가 그들을 구해야겠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생각보다 쉽지 않다. 검은 구는 계속해서 사람을 빨아들이고 증식한다. 통제 불가능한 상태가 된 이 세상은 살해를 당해서 죽은 사람과 검은 구에 빨려들어간 사람으로밖에 나뉘지 않는다. 검은 구는 동물이나 시체는 끌어당기지 않는다. 오직 살아있는 인간만 집어삼킬 뿐이다. 그리하여 결국 이 지구상에는 모든 인간이 사라지고 세계는 멸망했다. 혹시 이 소설을 제대로 읽어보고 싶은 사람이 있을지 모르니 스토리 언급은 여기까지.


미리 말했듯이 이 작가는 단지 보여준다. 자신이 상상한 상황을 살짝 보여주고 그 상황에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을 하는지도 보여준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만약 그런 상황에 닥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생각을 해보도록 유도한다. 가령 이 지구상에 사람들이 없는 상태라면, 그래서 남들과의 관계 속에서 나를 찾는 것이 별로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남들은 다 죽어가는데 나는 살겠는가? 또는 살게 된다면 살아서 무엇을 할 것인가? 등등. 보여주는 상황은 터무니없는 극단적 상황인데 우리는 사회적 인간 존재의 근본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는 것이다.


멀티문학상 수상작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시각적인 측면을 많이 고려한 소설이다. 영상을 쉽게 만들 수 있게끔 눈에 보이도록 구성을 해놓았다. 이건 개인적인 차원의 문제이긴 한데 안타깝게도 감동이 부족하다. 재미는 있지만 감동이 부족한 소설의 전형인데 감동이란 것이 인간과 인간 사이의 믿음과 긍정적 감정을 밑바탕으로 생성되는 것임을 감안하면 절망의 구에서 감동을 느낄 수 없다는 사실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인 듯 하다. 왜냐하면 절망의 구는 인간 심리의 희망적 측면을 그린 것이 아니라 절망적 측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작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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