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을 두 명이나 선출한 보르자 가문의 체사레 보르자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모델인 만큼 선한 사람은 아니다. 군주론을 읽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마키아벨리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군주란 권모술수에 능하고 기본적으로 악하며 속된말로 주변사람들의 등을 치는데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에게 성인聖人의 기품을 발견할수는 없다. 실제로 그는 근친상간이나 음모 같은 온갖 좋지 않은 것들을 통해 가문의 악명을 휘날린 사람이다.
거울아 거울아는 이런 중세 이탈리아의 실제 가문을 등장시켜 이야기의 현실성을 높이고 있다. 현실성을 높이는 측면에서 유명했던 가문을 끌어들이는 기법은 자주 등장하는 문학적 장치다. 하지만 이를 통해 작가가 원하던 효과를 충분히 얻을 수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작품이 백설공주 이야기를 패러디한 것이고, 원작의 메시지인 권선징악과는 전혀 다른 메시지를 남기려 한 듯 하지만 과연 이 실존 인물과 허구 인물의 결합을 통하여 말하고자 한 것은 무엇인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단순한 패러디 문학인가?
이야기는 중세의 이탈리아 몬테피오레를 배경으로 한다. 낭만적인 이탈리아의 단어들과 눈에 보일듯한 묘사는 아름답게 비쳐질듯 하다가도 그렇지 않다. 보르자 가의 체사레와 루크레치아라는 두 인물이 작품의 분위기를 한껏 어둡게 끌어나간다. 미신을 즐기는 체사레는 몬테피오레의 영주인 비첸테 데 네바다에게 무언가를 찾아오라고 여행을 보내지만 그건 쫓아내는 거나 다름없다. 실질적인 통치는 루크레치아가 전담하게 되고 비첸테의 하나뿐인 딸 비안카는 유모와 수사의 손에 자라게 된다. 여기까지의 이야기가 거의 절반을 차지할 만큼 지지부진한 이야기 구성에도 회의감이 느껴진다. 만약 이 부분에서 뭔가 메시지가 있었으면 좋을텐데 그런 부분도 잘 모르겠거니와 만약 백설공주를 패러디한 소설이라면 기본적인 구성이 비슷할 것이라는 독자의 기대감을 충족시켜줘야 할텐데 그렇지도 않다. 기승전결에서 기 부분이 지나치게 길다는 느낌이 든다.
세월은 흐르고 흘러 비안카는 아름다운 소녀로 자란다. 근친상간을 일삼던 체사레는 권력을 잃고 몬테피오레로 피신을 와서 비안카를 범하려 든다. 하지만 체사레의 누이동생이가 근친상간의 상대인 아름다운 루크레치아는 그 모습을 보고 격분하여 비안카를 죽이려 한다. 사냥꾼에게 비안카를 숲속으로 데리고 들어가 죽인 후 뜨끈뜨끈한 피가 흐르는 심장을 꺼내 오면 사냥꾼의 어머니인 비안카의 유모의 인생의 안전을 책임져주겠다는 달콤한 협박으로 설득에 성공한 루크레치아. 사냥꾼이 가져온 어린 사슴의 심장이 비안카의 심장이라 믿은 루크레치아는 안심을 하지만 그녀에게는 생사를 확인할 수 있는 결정적인 증거물이 존재한다. 진실만을 말하는 거울이 그것이다.
비안카의 생부 비첸테가 그의 반생을 걸고 겨우 찾아온 지혜의 열매 사과는 루크레치아 손에 들어가 독이 발린 사과로 변해버리고 결국 그 사과에 의해 비안카는 목숨을 잃는다. 멋진 왕자가 나타나 입술에 키스를 하여 깨어난 비안카는 왕자와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하는 결말은 없다. 물론 비안카에게 마지막에 나타나는 사람은 있기는 하다. 궁금한 사람은 직접 읽어보시길. 여기서 이야기의 결말이 허망하다거나 뜻밖의 반전이라거나 작가의 메시지가 무엇이라거나 하는 말은 하지 않겠다. 왜냐하면 이 작가의 작품에 익숙하지 못한 나로서는 판단을 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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