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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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도날에 대해 이야기 하기에 앞서, 내가 그동안 한번도 서머싯 몸의 작품을 읽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고백해야겠다. 서머싯 몸이라고 하면 우리나라에도 이미 인간의 굴레에서나 달과 6펜스 같은 그의 대표적 장편소설들이 세계문학의 반열에 올라 여러권으로 번역되어 알려져 있으니 그에게 관심만 있었다면 충분히 전작품을 읽고도 남았을 일이다. 그 같은 책들을 읽지 않았다는 것은 지금껏 서머싯 몸이라는 작가에게 전혀 관심이 없었다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이게 꼭 나쁜 일은 아니다. 기존 작품의 아우라에 전혀 영향을 받지도 않고, 잘나갔던 작가의 3대 작품이라는 대외적 평판에 좌우되지 않은채 순수히 작품에만 몰입하여 감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1874-1965년간 아흔 한 해를 살았던 몸이 면도날을 출판한 것은 1944년, 그러니까 때는 그의 나이 이미 일흔이었던 해이고 세계2차 대전이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다. 그 당시 그는 이미 사회적으로 성공한 작가였으므로 물질적인 풍요로움을 누리고 있었다. 또 거장의 반열에 올라선 그는 평론가들의 지껄임에도 충분히 초연해졌으니 아무것도 꺼릴것 없이 더욱 수준 높은 작품을 쓸 수 있었다. 이 면도날은 그런 노련함이 한껏 묻어난다. 이 작품은 작가 자신이 직접 소설 속의 인물로 등장하여 자신이 보고 듣은 것들을 회고하며 비교적 객관적인 자세로 담담히 풀어놓는 방식으로 전개되어 이야기의 진실성마저 더해준다.
서머싯 몸 (1874-1965)
1919년, 작가로서 사회적 성공을 거둔 그가 세계를 돌아다니며 상류층 사회 인사들의 초청을 받고 사교계에 드나들던 중 미국의 시카고에서 한 무리의 젊은이들과 인연을 맺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미리 말해두지만 몸은 스스로도 속물이라고 말한다. 자신이 스스로 거두고 있는 사회적 성공을 충분히 즐기고, 아름다운 여성을 보면 시각적 즐거움 때문에 함께 이야기하는 것을 즐기는 인물이다. 그러므로 상류층의 지독한 속물근성에 대해 회의적 시각으로 바라보기 보다는 오히려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으로 생각한다. 아직 사회에서 성공을 크게 거두지 못했을 젊은 시절에 만난 사교계 유명 인사 앨리엇이 초창기 자신을 '별볼일 없는 사람'으로 판단하고 무시하는 태도를 보인것 마저도 크게 개의치 않을 정도다.
면도날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앨리엇, 래리, 이사벨, 그레이, 등등 각자 추구하는 가치가 다른 인물들이다. 앨리엇은 사교계에서의 성공을 그 무엇보다 우선시한 속물중의 속물이지만 그 반면 자신의 몇 안되는 친지들에게는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줄수 있는 피붙이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지닌 인물이다. 또 남에게 베풀기를 즐기는 성격이기도 한데, 그 뒤에 무언가 치밀한 계산이 되었든 아니든 어쨌든 그는 있는자로서 베푸는 것을 좋아하고 그럼으로서 자신이 남들보다 나은 위치에 있음을 즐긴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 죽는 그 순간까지도 자신이 파티에 초대받지 못한 사실을 분개하며 스스로가 한물 간 인물임을 결코 인정할 수 없는, 뼛속까지 속물인 불쌍한 영혼이다.
래리는 앨리엇과 확실히 대조되는 인물이다. 상류층 집안에서 부유하게 자란 래리는 사교계 유력 인사로서, 부자로서,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여성 이사벨의 남편으로서 보장된 그 모든 것들을 버리고 훌쩍 파리로 떠난다. 그 이유는 '아무것도 하지 않기 위해서'. 하지만 미국 사회에서, 그것도 상류층의 유망한 인물이 되어야 하는 사회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말은 개인으로서는 물론 미국 남자로서의 삶을 뿌리치겠다는 말 밖에 되지 않는다. 지독한 속물 앨리엇을 삼촌으로 둔 이사벨 역시 지독한 속물이며,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래리를 이해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이사벨에게 있어 삶이란, 호화로운 대저택에서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걸친채 각종 파티에서 자신의 매력을 발산하는 생활, 사회적으로 힘이 있는 남성과 성대한 결혼을 하고 앞으로 또 상류층에서 한 가락 할 아이들을 낳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사벨은 결국 래리와의 약혼을 파기하고 자신이 상상하는 모든 삶을 완벽하게 채워줄 남자 그레이와 결혼한다.
저자가 직접 말하고 있지만 만약 래리가 없었다면 이 책은 쓰여지지 않았을 거다. 래리와 그가 함께 이야기를 나눈 시간들이 몸에게 면도날을 쓰게 만든 것임은 확실하다. 래리는 다른 평범한 미국 젊은이들과는 전혀 다른 삶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래리에게 있어 삶이란 물질적인 만족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만족, 조금 더 깊이 들어가자면 자기만의 신을 찾는 생활이다. 상류층이었던 래리는 다행히 국가로부터 약간의 돈이 나왔고 그는 그 돈을 이용하여 세계의 각국을 돌아다닌다. 아무것도 하지 않기 위해서 미국을 떠났지만 래리는 단 한순간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적이 없다. 끊임없이 책을 읽고 공부를 하며 여행을 하고 생각을 하고 자신만의 종교를 추구했다. 그렇게 세상을 떠돌아 인도에서 몇년간을 명상과 구도를 하며 보내고 파리로 돌아왔을때 그는 또래의 이사벨이나 그레이에 비해 훨씬 앳되었고 다시 한번 이사벨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레이와 결혼하여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이사벨 부부는 1929년 뉴욕증시 대폭락 사태 때문에 완전히 파산하고 만다. 피붙이들에게만큼은 끔찍한 앨리엇은 자신의 조카를 그대로 두고 볼 수 없어 파리의 자기 아파트에 그들 가족을 살게 해준다. 한푼 없는 그레이와의 결혼생활은 그럭저럭 할만하다. 국가에서 이사벨 앞으로 매년 2800달러의 연금이 나오고 파리의 삼촌 아파트는 상류층의 거주지 치고는 괜찮기 때문이다. 몸이 이사벨에게 '래리와 결혼하지 않은걸 후회하냐'고 물었을 때 그녀는 '그레이는 최고의 남편이에요'라고 얼버무리지만 자신이 진심으로 사랑했고 여전히 사랑하고 있는 사람은 래리뿐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그런 그들에게 몸은 이렇게 말한다. '너희들 사이에는 열정이 빠져있었던 거야. 열정은 어떠한 파괴도 두려워하지 않지. 그러나 너희는 어느 쪽도 자신을 희생시키려고 하지 않았어.' 그리고 나중에 이사벨에게 '너는 래리보다 모피코트를 택한거야'라고 말했을 때 자신의 치부를 들킨 이사벨은 몸에게 빵과 버터를 담은 접시를 던진다.
소설적 결말로 보면 면도날은 해피엔딩이다. 등장인물 각자가 자신이 원하던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래리는 돈 한 푼 없이 정신적 만족을 추구하는 삶을 살았고, 이사벨과 그레이는 사회적 부와 명성을 얻은 삶을 살았으며, 앨리엇은 사교계에서 가장 힘있던 인사로 군림하다 죽었다. 누구의 삶이 바르다고 할 수 없는 이유는 면도날의 등장인물들처럼 각자 추구하는 가치가 너무도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각자 자신에게 솔직하여 스스로 무게를 둔 가치에 맞는 삶을 살았고 그 부분에서 만족할만한 성과를 얻었다면 그것으로 된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각자가 좀 더 중요시 생각하는 가치에 맞는 삶을 산 인물에게 더 정을 주고 동조하며 읽으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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