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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조의 경지에 이른 하루키의 달리기

gowooni1 2009. 8. 3. 22:09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저자 무라카미 하루키  역자 임홍빈  
출판사 문학사상   발간일 2009.01.05
책소개 하루키를 세계적 작가로 키운 건 마라톤이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축으로 한 문학과 인생의 ...

 

내가 생각하는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런 사람이다.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그러니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자신이 하고자 한 일이 있다면 지구가 반으로 쪼개지지 않는 이상 꼭 해내고야 마는 사람. 요령보다는 우직함으로 승부를 거는 사람. 달콤한 케이크 같은 사람이 아니라 항상 먹어도 물리지 않는 밥같은 사람. 이번 그의 회고록 달리기를 말할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도 그 특유의 문체가 뚝뚝 묻어 나온다. 이 사람은 어쩜 이렇게 문체가 바뀌지 않을까 하다가도 그게 어쩌면 그의 매력이 아닐까 하고 생각된다. 아니면 내가 미묘하게 바뀌는 그 차이를 모를 수도 있다.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자기가 하고자 한 일을 일정한 시간 거쳐 반복하다보면 관조가 생긴다고 그는 말하고 있다. 서른이 넘어 본격적으로 장편소설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건강을 위해 시작한 달리기는 그에게 있어 하나의 일상이 되었다. 달리기를 할 때 무슨 생각을 하냐는 물음에 가장 솔직한 대답은 아무 생각이 없다고 하는 하루키는 이를 어쩌면 관조의 경지라고도 말한다. 사람이 매일 어떤 일을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반복하다보면 관조의 미가 생기게 된다는 것이다.

 

그에게 있어 인생이든 장편소설이든 마라톤이든 기본적인 것은 같다. 모든 것은 길게 보고 승부를 내는 것이고 다른 사람과 경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하는 것이며 내일을 위해 오늘의 힘을 어느 정도는 비축해 두어야 하는 것이다. 그는 그러한 방식이 자신과 잘 어울린다고 말한다. 그래서 요절한 천재들처럼 일생의 에너지를 빠른 시간안에 방출해버리고 죽기보다는 자신에게 주어진 에너지를 적절히 나눠 분배하여 오랜 인생에 걸쳐 사용하는 것이 그가 생각하는 자신만의 삶의 방식이다.

 

자신은 결코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대가다운 겸손함을 보이고 있지만 그가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는 독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에게 가장 배우고 싶은 점은 바로 언제나 한결같은 겸손함이다. 주변 환경의 변화나 자신의 위상이 급상한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처음같은 매력을 잃지 않는 하루키. 그에게 있어 소설은 잘 팔리기 위한 글이라기 보다는 자신의 인생을 건 필생의 사업일 뿐이다. 그래서 자신이 세계적인 작가가 되었다 해도 그의 글은 언제나 겸손하다. 어쩌면 그는 겸손한게 아니라 변하지 않은 것일 뿐일지도 모른다. 단순히 외부적인 조건 때문에 변하지 않은 그를 주위에서 겸손한 사람으로 보는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관된다는 자체가 사람의 크기를 나타내는 것임을 감안할 때 그는 진정 대가의 그릇을 지녔다.

 

그의 인생이 결코 고행의 길은 아니었지만 언제나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에서는 수행자의 느낌도 난다. 자신이 한번 결심한 일에는 목숨을 걸고서라도 이루어내는 모습이나 큰 목표를 두기보다 그 과정을 즐기기 위해 살아가는 그의 인생을 보면 나도 어느 하나쯤은 관조의 경지에 이를 수 있는 무언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게 꼭 하루키처럼 장편소설 쓰기나 달리기는 아닐지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