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중독-Reading/관심가는책200+

떠도는 삶을 택한 어느 예술가의 편지

gowooni1 2009. 7. 20. 19:08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

저자 김영하  
출판사 랜덤하우스코리아   발간일 2009.01.21
책소개 비우고 버리는 동안 내가 잃어버린 것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소설가 김영하의 내밀한 고백과 성찰 ...

 

예전 무라카미 하루키의 먼 북소리를 읽고 '나도 언젠가 결혼해서 남편과 함께 지중해에 떠 있는 수많은 섬들 위에서 오랫동안 상주하는 여행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걱정이 몇가지 되었는데, 만약 결혼한 사람이 그런 생활을 별로 하고 싶지 않다고 하면 어떡하나 하는 아직 염려하지 않아도 될 부분에서부터 내가 지중해 섬으로 이사갔을 때 그 섬들이 문명의 혜택을 받아 급속도로 발전하여 전혀 시골스럽지 않으면 어떡하나 하는 말도 안되는 걱정들 뿐이었다.

 

두달 동안 로마의 시칠리아 섬에서 상주하는 여행을 했던 김영하의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를 읽어보고 제일 마지막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 적잖이 안심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긴 하지만 그리스나 로마 등도 도시와 떨어진 시골들은 10년이 지나든 20년이 지나든 크게 발전이 되지 않는 모양이다. 국토균형발전이라는 행정학적 측면에서 봤을 때 기뻐할만한 일은 아니긴 하지만. 무라카미 하루키가 그리스의 어느 섬에서 노르웨이의 숲 등을 쓰며 3년간 유럽 여행도 겸하고 있을 때가 1980년대 후반이었고 김영하가 이번에 두달간 여행을 한 때는 2008년이다. 거의 20년간의 시간적 거리가 있었는데 독자의 입장에서는 무라카미 하루키도 엊그제 여행을 다녀온 것 같고, 김영하도 엊그제 여행을 다녀온 것 같다.

 

몽고인에게 가장 모욕적인 말은 '평생 한 군데만 머물러 살아라'라고 어느 책에서 읽은 기억이 난다. 일생을 유목하며 사는 그들에게 있어 어느 한 곳에 머문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는 거니 저 말을 우리 식으로 직역하자면 죽어라 라는 정도가 되는 것 같다. 머무름이 곧 죽음이라는 말은 머물러 사는 것이 너무 자연스럽게 된 우리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준다. 우리 사회의 많은 사람들은 평생 머물러 살기 위해 죽도록 공부하고 시험을 본다. 평생 같은 직장을 다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공기업은 신이 내린 직장이고 공무원은 일등 신랑신붓감이다.

 

다랑어는 평생을 바다에서 헤엄쳐 다니고 자는 때에도 끊임없이 움직이는데 일생에 딱 한번 헤엄치지 않을 때가 있다. 그건 바로 죽을 때이다. 살아있기 위해서는 평생을 헤엄쳐 살아야 하는 것이 어찌보면 고단하고 힘들어보일 수도 있지만 매순간 살아있다는 느낌은 생생하게 받을테니 행복할 것이다. 다랑어 같은 삶, 몽고인 같은 유목민적인 삶을 택한 김영하의 용감한 선택을 존경한다. 하지만 그로서는 별로 존경받을만한 선택이 아니었을 거라고도 생각해본다. 그는 그저 그렇게 매 순간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아야만 살 수 있도록 태어났고 그리하여 어쩔 수 없이 살기 위해 선택한 삶이기 때문이다.

 

나이 40에 자신의 인생을 돌이켜보니 그는 모든 것을 가졌더란다. 국립예술대학교의 교수라는 명예와 안정이 보장된 직업, 잘 굴러가는 힘 좋은 차, 자신 명의로 된 서울의 아파트, 아내, 거기다 라디오 방송프로그램도 하나 맡고 있었으니 말 그대로 잘 나가는 사람이었던 거다. 그러나 그는 그런 생활에 회의를 느꼈다. 매일 반복되는 삶, 돈을 위해 돈을 버는 삶, 자신을 들여다보지도 못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예술성이나 묻고 있는 삶, 또는 예술성을 좀 가르쳐보겠다는 삶. 그러나 그건 그의 천성에 맞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는 모든 것을 일시에 정리를 해버리고 훌쩍 시칠리아로 떠나버렸다.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는 제목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겨냥한 목표들은 따로 있다. 현실에 안주하여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이었는지 잃어버리고 그저 쳇바퀴 돌리는 나날로 죽음을 향해 사는 사람들. 그렇다고 모든 사람들이 일시에 일어나 저마다 짐싸들고 지중해의 어느 조용한 섬에 가서 살라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자신이 잃어버린 삶에 대한 기대와 꿈은 무엇이었는지를 한 번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은 충분히 가져볼 수 있지 않을까.